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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게 만드는 북플!






















-버찌와 운하와 브리안차

길게 이어진 두 산맥 사이, 남쪽으로 흐르는 코모 호수의 그 지류는 산의 들고 나옴에 따라 모두 크고 작은 만을 이루다가 갑자기 좁아져서 오른편의 갑과 왼편의 넓은 해안 사이에서 강의 형태를 이루는데…*

이것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유명한 작품 『약혼자들』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이다. 코모 호는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5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호수의 남쪽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서쪽 지류 끝에 코모라는 도시가 있다.  - P115

밀라노를 꼭짓점으로 두고 코모와 레코를 잇는 선을 밑변 삼아 역삼각형을 이루는 지방을 ‘브리안차‘라고 하는데, 이곳은 옛날부터 밀라노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경을 넘어 경외심까지 자아내던 지역이다.
 만초니가 태어났고 그의 소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왕년에는 밀라노의 귀족들이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코모의 명주실로 재미를 본 실업가들이 앞다투어 영지를 개척한 곳이기 때문이다.
 브리안차는 수많은 서민이 언젠가 주인으로(하인이나 소작인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고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밀라노 북쪽에 완만한 기복을 거듭하며 펼쳐진 이 일대는 롬바르디아 지방답지 않게 토양이 척박해서 이렇다 할 작물이 나지 않는다. 밀라노의 서쪽, 동쪽, 남쪽 모두 이탈리아에서 손꼽힐 만큼 풍요로운 수전지대인 데 반해 태양빛에불그레한 맨땅을 드러낸 브리안차의 풍경은 명백히 불모지로 보인다.  - P116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만초니의 사람들]을 번역하면서 나는 그런 브리안차에 대한 기억을 천천히 되살렸다. 이 책은 만초니가 생전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한, 모리 오가이가 쓴 사전과 비슷한 형식의 수작이다. 만초니는 일본으로 치면 메이지유신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통일 시대의 건국사상을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생애가 필요이상으로 신화화되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신화를 집과 학교에서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 P118

현대 시인 움베르토 사바는 베네치아 인근 트리에스테를 "꽃을 바치기에는 너무/거친손의..... 소년"이라고 노래했는데, 중부 유럽의 영향이 짙은 이 북쪽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비해 브리안차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도시다. 트리에스테가 성마른 소년이라면 브리안차는 사람 좋고 부끄럼 많은 청년일 것이다. 두뇌회전은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조직 내에서는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롬바르디아 출신에 대한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의 평이다.
롬바르디아 북서부를 대표하는 브리안차 사람들은 다름아닌 그런 근면성실함과 우직함 덕에, 세계에 내로라하는 견직산업을 가내수공업에서 근대적인 기업 규모로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P130

-마리아 보토니의 긴 여행

오래된 사진 한 장.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제노바 기념묘지의 하얀 대리석 계단 위에서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내가 흰색투피스를 입고 희미하게 웃고 있다. 흑백사진이라 하얀 주랑 뒤로 사이프러스 몇 그루가 검게 솟아 있다. 일본을 떠난 지 사십일째인 1953년 8월 10일 아침, 이탈리아에 막 상륙한 참이었다.
비에 씻긴 제노바 부두로 나를 마중나온 사람은 초면의 마리아 보토니였다. 나와 안면이 있는 일본의 지인에게서 부탁을 받아 제노바를 경유해 파리로 가는 나를 역까지 안내해줄 예정이었다.
At-su-ko? 돌제 부두에 정박한 배를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보며 묻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 P133

그날 밤 제노바 역에서 헤어진 후 파리에서 불안한 유학생활을 시작한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도 종종 소식을 전했다. 엽서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의 근황이나 내가 모르는 자기 친구 이야기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유럽인의 필적에 익숙지 않아 모르는 부분은 친구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어느새 나까지 그녀의 친구 몇몇을 알게 된 기분마저 들었다. - P134

내가 알지도 못하는 친구 얘기는 자세히 쓰면서 마리아는 자기나 가족에 대해서는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산다는 것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이상은 모르고 지냈다.

두번째로 마리아를 만난 것은 이듬해 부활절 휴가를 이용한 학생 단체여행에 참가해 로마로 갔을 때였다. 그 무렵 로마에서 일하던 마리아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단체 일정이 비는 시간에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짜주었다. 그중 하루는 친구집에 초대받았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당시 우리는 피차 외국어인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a friend라는 말에 나는 어떤 친구냐고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그날 약속 장소로 나갔다.  - P135

 이탈리아에 사는 동안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자국에서는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을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고귀한 이의 저택 문이 아마도 흔치 않은 일본인 손님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또는 설명해도 내가 알아듣지 못한 상황에 별안간 눈앞에서열리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직 일본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페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건축 잡지에 나올 법한 세련된 펜트하우스에 사는 어느 귀족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미국인 제트족과 동석했을 때도 그랬고, 저명한 프랑스 학자의 연로한 미망인이 핀초 언덕 앞에 있는 미술관 같은 집으로 데려가줬을 때도 그랬다. - P136

그날도 마리아는 별다른 설명 없이 우리를 초대해준 사람은 보르게세 공작의 딸 카바차 후작부인이라고만 했다. 간명한 말투 때문에 나는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상상도 못하고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갔다. 로마의 유서깊은 지구에 있는 보르게세 궁전으로 가서 바티칸 궁전에서나 보던 거대한 문을 스탠드 칼라에 화려한 줄무늬 제복 차림의 하인이 지키는 광경을 마주하고야 비로소 이 초대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 P136

일본으로 돌아와 몇 년간은 이상하게 생활에 여유가 없었다. 간신히 한숨 돌릴 무렵, 생각지도 않은 마리아의 편지가 왔다.
여전히 깨알 같은 글자로 가득해 읽기 힘든 엽서였다.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갔다가 호주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 호주에서 일본은 세계일주 항공권에 포함되어 있으니 한번 가보고 싶다. 재워줄 수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날 나리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마리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했다. 당신도 나를 위해 제노바 역에 나와주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물망초처럼 파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곧 여든이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세계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 P143

어떻게 하면 마리아가 일본에 오길 잘했다고 여길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 밤, 나는 어쩌다 예의 독일 수용소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들었다. - P144

전쟁 때 마리아는 밀라노의 한 대기업에서 비서로 일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파르티잔 활동이 활발하던 무렵이었다.
어느 날 상사가 그녀를 부르더니, 자네는 혼자 사니까 자기 친구를 좀 재워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당연히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시절에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거라며) 그 사람을 재워주었다.
모르는 남자랑 한집에 지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가물었다. 그 상사를 믿었으니까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 - P144

했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전시에는 이상한 일들이 상식처럼 되어버린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말투였다. 그 남자는 낮 동안은 항상 집에 없었는데 어느 날은 밤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로 갔더니 그 상사가 마리아를 불러서 만약 손님이 집에 남기고 간 게 있으면 몽땅 처분해버리라고 말했다.
 그다음날 또 누군가가 회사에서 그녀를 호출했다. 경찰이었다. 그길로 상사와 함께 산비토레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그녀가 재워준 남자는 파르티잔 대장이었다. 누군가 배신을 했고, 그도 마리아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날 밤 검거된 상태였던 것이다. 감옥독방에 갇혀서야 비로소 마리아는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았다.
무서웠어. 그녀는 말했다.

마리아는 다른 이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독일의 (어쩌면 오스트리아였을지도 모를)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고 마리아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 P145

이런 얘기만으로도 상당히 놀랍지만, 마리아의 긴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폴리 공항에 내리자 관악대가 나와 국가를 연주했다. ‘영웅‘은 이렇게 맞이하는구나 싶어 순간 긴장했지만 물론 그녀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공화국의 대통령이 마침 같은 날 나폴리에 도착했던 것이다. 대통령 이름을 듣고 마리아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페루초 파리, 밀라노 레지스탕스 지도자이자 그녀와 산비토레 감옥에서알고 지낸 사이였다(여기서도 마리아는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비행기에서 내린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달려와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마리아는 대통령이 보내준 군용기를 타고 로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생애 최고의 날이었겠네요. 내가 말하자 마리아는 정말 근사했지. 하며 뺨을 붉혔다. 그렇게 로마로 가서 카바차 후작부인이 속한 그룹에서 일하게 되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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