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티 선생님의 파스콜리

프로슈티 선생님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내가 공부할 무렵에는푸른 전원에 둘러싸여 있던 페루자에 수업 내용에 등장하는 19세기 시인들이 즐겨 노래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것도 이들이내 안에 깊은 궤적을 남긴 이유일 터다. 페루자의 언덕을 해원처럼 둘러싼 들판을, 19세기의 문호(그에게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 말의 장대한 울림이 잘 어울린다) 조수에 카르두치의 유명한 서정시에 나오는 뿔이 크게 휜 하얀 소떼가 느긋하게 일구고 있었다. 나중에 로마로 유학 갔을 때 몇 번 움브리아나 토스카나 지방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밭에서 흰 소를 보면 아아, 이탈리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7

토스카나를 노래한 카르두치의 시에 비해 19세기 낭만파 시인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에 나오는 전원 풍경은 움브리아의 풍경에 좀더 가깝다. 레오파르디는 움브리아와 경계를 접한 마르케지방의 레카나티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에는 가본 적 없지만 페루자나 아시시의 언덕에서도 그가 시에서 노래한 굽이치듯 이어지는 첩첩한 산들이 그려내는 경치가 쉽게 상상된다. 레오파르디의 시에는 이 지방에서 매일 흔하게 접하는데도 마음 깊은 곳을움직이는 풍경이 자주 나온다.  - P38

 대학교 점심시간이면 시끌벅적한학생식당을 피해 빵과 햄을 사들고 그런 언덕의 올리브밭에 혼자앉아 있곤 했다. 올리브나무 그늘에는 사료로 쓰이는 콩과 풀이무성했고, 보라색 분홍색 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어느 날 밤친구에게 이끌려 포르타 산탄젤로라는 오래된 성문 바깥에 있는전망대 비슷한 곳에 간 적이 있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이었는데사방에 반딧불이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엄청난 수에 압도되어쫓아갈 엄두도 못 냈던 기억이 난다. "큰곰자리별이 가만히 빛 - P38

나고"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 「추억」에는 창가에 서서 멀리 밭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나 산울타리에 핀 꽃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에 소년 시절을 추억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같은 시에 나오는 표현 "향기로 가득한 가로수길"은 하숙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수길의 보리수 꽃향기와 맞아떨어진다. - P39

파리에서 페루자로 온 날 작은 마을 전체에 떠도는 이 향기를 맡고 목이 멘다는 게 이런 걸까, 생각했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곳에 피어 있던 이 꽃의 향기는 기억 속에서 점점 응축되고 일종의 상징이 되어, 설령 마법을 써서 1954년 6월 30일의 페루자로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음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향기는, 한낮에 역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피오렌초 디로렌초 거리의 캄파나가 앞에 서서 3층 창문으로 내다보는 아주머니에게(당시에는 그때가 이탈리아인들의 낮잠 시간인 줄도 몰랐다) 파리에서 배워온 이탈리아어로 떠듬떠듬 자기소개를 하던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고, 그날 저녁 대학교에 학생 등록을 하러 가던 길에도, 저녁식사 후 스쿠터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설치곤 했던 내침실로 들어갔을 때도 가득 서려 있었다. 이렇게 레오파르디의 "향기로 가득한 가로수길"은 이탈리아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나를 단단히 붙들고 안으로 야금야금 스며들었던 것이다. - P39

하숙하던 캄파나가에서는 가끔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나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곤 했다. 이상하게도 생각나는 것은 오직 달 없는 밤의 광경뿐, 어두운 테라스에서 캄파나 부인, 장남 잔카를로, 로마로 시집간 둘째딸 릴리와 가정부 레티치아가 집안일, 보리와 포도의 올해 작황, 이웃집 얘기 등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알아듣기도 하고 못알아듣기도 하면서 아래층 뜰의 재스민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 P47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언덕 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저멀리 바다 건너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아버지에게 받아 오랫동안 간직했던 엽서의 흑백 풍경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유럽 여행을 하던 아버지가 보내온 것이다. 나와 여동생 앞으로 온데다 한집에 사는 아버지가 엽서를 보냈다니 신기하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에넣어두고 잊고 있다가 다시 찾기를 반복했는데 언젠가부터 아예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버리지는 않았으니 지금도 서랍 어딘가 오래된 편지에 섞여 있을 것이다. 엽서 뒷면에는 아버지의각지고 반듯한 글씨로 큼지막하게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라는말이 있단다"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말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잊어버렸다.
- P53

저녁 무렵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화려한 톨레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나폴리의 코르소였다.
불이 환히 밝혀진 가게들, 오렌지와 무화과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고 등잔과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등롱을 매달아놓은 노점들, 이런 수많은 불빛으로 거리 전체가 마치 별이 뿌려진 커다란 강물처럼 보였다. 거리 양쪽에는 높은 집들이 이어져있고, 창문마다 발코니가 딸려 있었다. 건물 모퉁이를 빙 둘러가며 발코니를 달아놓은 곳도 있었다. 그런 발코니에 남자와 여자들이 서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즐거운 사육제가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여겨질 정도였다. - P57

또 어느 날은 가까스로 도서관에서 일을 마치고 오후 세시가지나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샐러드 재료를 사러 온 나에게 아주머니가 "어머, 아직 점심을 안 먹었어요?" 하고 놀라는 표정으로묻더니 "그럼 우리랑 같이 먹지그래요?"라며 권했다.
 "차린 건별로 없지만, 마침 먹고 있던 참이니 앉아서 한술 뜨고 가요." - P67

아주머니가 가리킨 가게 한구석에서는 그녀의 아들이 나무상자 위에 식기를 늘어놓고 익힌 토마토와 달걀로 만든 간단한 요리를 묵묵히 떠먹고 있었다.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 남이나 다름없는 외국인을 이런 소박한 식탁에 불러준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사양하면서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폴리의 근사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북부 도시에서는 십여 년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환대였다. 밀라노가 현대적이고 나폴리는 전근대적이라는 식의 너무도 안이한 설명은 진짜 모습을 전해주지 못한다.  - P67

학교 일로 바쁘기도 하고 끊임없이 핸드백에 신경써야 하는인파 속에 섞이기가 내키지 않아서 도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뒤에도 나의 나폴리 관광은 지지부진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파카나폴리에는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고색창연한 금세공점과정체 모를 고물상(그리고 기막히게 맛있는 산딸기 타르트를 파 - P69

는 제과점 스카투르키오)들 사이로 유서 깊은 관광지가 많았다.
14세기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일했다는 은행 (지금도 버젓이 영업중이며 내가 나폴리에 도착한 다음날인가 건물 지붕을 뚫고 도둑이 들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나중에 대학교 월급을 받으러 그 은행에 가야 했는데 다행히 동료 교수가 함께 가주어 안심했다)이나 18세기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가 살았던 집 등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었다.  - P68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아버지의 말은 뜻밖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오십 년 전 관광객으로 이 도시를 방문한 아버지의 나이는 나폴리에 일자리를 잡고 반년이나 생활한 내 나이의 딱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도 딸도 각자의 관점에서 이 도시를 이해하고, 이 도시를 사랑하며, 저마다의 ‘나폴리를 보고죽‘을 수 있게 되었다.

귀국이 머지않은 무렵, 한 친구가 아버지의 엽서 속 경치와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그곳에는 사진과 똑같은 소나무가 있었고, 나폴리 만 너머로 베수비오 화산이 특유의 웅장한 산기슭을 펼쳐 보였다. 소나무가 고사하면 다시 똑같은 나무를 구해와 심는다고 그 친구는 말해주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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