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겨울은 건조하지만 아주 드물게 일 년에 한 번이나 될까 싶은 정도로 안개가 끼는 날이 있다. 밤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아. 내가 아는 냄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십 년 넘게 살았던 밀라노의 풍물 중 무엇이 제일 그리우냐고 물으면 나는 곧바로 ‘안개‘라고 답할 것이다.  - P9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내가 살던 무렵만 해도 밀라노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 따위 밀라노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며 자부심이 대단했고, 런던을 잘 아는 이탈리아 친구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11월이 되면 눅진하고 정겨운 잿빛 안개가 찾아든다. 아침에 눈을 떠바깥 차 소리가 어쩐지 먹먹하게 들려오면 아, 안개인가 싶다. 눈 오는 날의 고요한 분위기와도 다르다. 아침이 되면 안개에 젖은 매연이 자동차 몸체에 착 들러붙는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지다보니 겨울에는 아무리 세차를 해도 소용이 없다. 밀라노 차는 더러워서 어디를 가나 금세 알아본다며, 사람들은 그런 일로도 은근히 안개를 자랑한다. - P10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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