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인권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근대적 개인, 근대적 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과 동시에, 기존 인권 개념의 기준 자체에도전한다. 양성 평등이 누구 중심의 평등인가는 언제나 논쟁거리이다.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양성 평등한 인권은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양성 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 영역‘으로 진출하지않았다. 결국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같음을 의미하는 ‘양성 평등‘ 이념은, 여성들에게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P179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양성 - P179
평등을 "여자도 군대 가라", "숙직해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함의 시각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고, 조건의 평등, 더 나아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남성과 여성의 화장실이 5:5의 비율로 있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회의 평등은 평등이라고 할수 없다. 임신, 생리, 옷 구가 남성과 다르고 유아를 자주 동반하기때문에, 여성의 화장실 사용 시간은 남성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5:8 정도의 비율로 여성 화장실을 넓게, 많이 만드는것이 실질적이고 공정한 평등 정책이다. - P180
이 같은 인권, 평등 개념의 재구성은 성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에게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기 경쟁을 하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의 개념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인권 개념을 문제시,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운동‘ 과정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은 인권 개념의 운동을 낳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은 인권운동을 발전시킨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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