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갑자기 강렬한 빛이 우리를 비추고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지!"
우리 중 한 명이 독일어로 말한다.
"우리는 난민입니다."
오스트리아 국경 경비원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럴 줄 알고 있었소. 따라오시오."
그들은 우리를 마을의 광장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에는 많은 수의 난민들이 있다. 마을의 군수가 도착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우리는 농부의 집에서 묵게 된다. 그들은 매우 친절하다. 그들은 아이를 돌보고 우리에게 먹을 것과 침대를 준다. - P72

흥미로운 것은 내가 그날 밤 일에 대해 가지고있는 기억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마치 꿈속에서 혹은 다른 생에서 일어난 일 같다.
마치 내 기억이 내 삶의 커다란 부분을 잃어버린그 순간을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헝가리에 내 비밀 작문 노트뿐만 아니라처음 쓴 시들도 놓고 왔다. 나는 그곳에 나의 오빠와 남동생을, 부모님을 미리 알려주지도 못하고 잘 있으라거나 또 보자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두고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 P73

*제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로잔에 도착한다. 우리는 축구장 근처,
도시의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막사에서 지낸다. 군인처럼 옷을 입은 젊은 여자들이 안심을 시키려는 듯 미소 지으며 우리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샤워를 하기 위해 두 무리로 나누어진다. 사람들은 우리의 옷을 소독하기 위해 가져간다. - P80

이와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어본 적 있는 우리 중 일부는 겁이 났었다고 나중에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우리는 서로를 다시 만났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잘 먹고 깨끗해진 우리의 아이들을 되찾았을 때 모두 안심한다. 나의 아이는 내 침대 옆 예쁜 요람 안에서, 마치 한 번도 그런 잠자리를 가져본 적 없다는 듯이, 조용히 잠을 잔다. - P80

일주일에 여러 번, 공장 사람들이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다. 친구들, 지인들은 일자리나숙소를 구하고 주소를 남긴 채 떠난다.
로잔에서의 한 달이 지난 후, 우리는 한 달 정도더 취리히의 숲 속에 위치한 학교에 머물며 지낸다. 언어교육을 제공해주지만 나는 어린 딸 때문에 거의 참석하지 못한다. - P81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 P82

*사막
공장에서는 모두들 우리를 친절히 대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웃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 - P89

어떻게 그에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짧은 프랑스어로, 그의 아름다운 나라가 우리 난민들에게는 사막, 사람들이
‘통합‘이라든지 ‘동화‘라고 부르는 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만 하는 사막에 불과하다는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어떤 이들은 끝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 P91

 *우리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어느 11월의 오후, 내가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은 다른 출판사 주소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즈음이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사람은 쇠유 출판사의 질 카르팡티에다. 그는 내 원고를 지금 읽었고, 몇 년 동안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내 소설을 한 번 읽은 이후 다시 한 번 전체를 읽었고, 이것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

 그는 나에게 몇 주 후에 전화하겠다고 말한다. 일주일 후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계약서를 준비할게요"라고 말한다.

3년 후, 나는 나의 번역가 에리카 토포벤과 함께베를린의 거리를 걷는다. 우리는 서점들 앞에서멈춰 선다. 서점들의 진열창 안쪽으로 나의 두 번째 소설이 보인다. 우리 집의 선반 위에는 열여덟개 국어로 번역된 <비밀 노트 Le Grand Cahier》가 있다. - P103

베를린에서 어느 저녁, 우리는 낭독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러 내 이야기를 들으러 나에게 질문하러 올것이다. 나의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 P103

*문맹
몇 번의 수업 이후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프랑스어를 아주 잘하는데 왜 초급반에 있어요?"
나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쓸 줄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몰라요. 전문맹이에요."
그는 웃는다.
"그걸 앞으로 살펴보죠."
2년 후,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수료증을 받는다.

나는 읽을 수 있다. 다시 읽을 수 있다.  - P111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
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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