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7일 토요일, 런던 공습 시작되다!
런던 시민들은 일상을 지속함으로써 공습에 대항했다.
44장 조용하고 푸르른 날에
날은 무덥고 고요했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위로 하늘이 푸르렀다. 오후 기온은 런던 날씨로는 드물게 3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이드 파크로 몰려들었고 서펜타인 호수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일광욕을 즐겼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피카딜리의 상점도 쇼핑객들로 가득했다. 머리 위에 떠있는 탄막풍선이 거리에 거대한 그림자를드리웠다.
런던에 정말로 폭탄이 처음 떨어졌던 8월의 공습 이후 런던은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꿈속에 다시 빠졌지만, 간혹 울리는 허위경보가 그 꿈을 깨우곤 했다. 처음에는 무섭고 낯선 경험이었지만 폭격기가 나타나지 않자 경보도 시들해졌다.
늦여름 더위가 나른한 안도감을 더해주었다. 웨스트엔드의 극장가에선 24개의 작품이 공연되었는데 그중에는 연극 <레베카Rebecca >도 있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 Daphnedu Maurier 의 소설을 작가가 직접 각색한 연극이었다.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와 조운 폰테인 Joan Fontaine 이 주연한 알프레드 히치콕AlfredHitchcock 의 영화 버전도 상영 중이었고, 그 외에 <그림자 없는 남자TheThin Man)와 장기 상영 중인 <가스등Gaslight>도 있었다.
상쾌한 초록의 시골에서 보내기 좋은 날씨였다. - P303
같은 토요일 아침 베를린에서 요제프 괴벨스는 부관들에게 그날이 끝날 즈음에 벌어질 일을 대비하도록 일러두었다. 곧 닥칠 런던의파멸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그 공격을 독일의 민간인을 노린 영국의 폭격에 대한 응당한 대응으로 포장하여 세계의 비난을 잠재울 생각이었지만, 사실 전날 밤 폭격을포함하여 그때까지 이루어진 영국의 폭격은 그런 대규모 보복을 정당화시킬 만큼의 사상자와 피해를 내지 못했다. - P304
루프트바페는 티타임에 왔다.
폭격기는 3차례로 나눠 파상 공격을 했다. 첫 번째는 폭격기348 대와 전투기 617 대로 이루어진 편대였다. 특수 장비를 갖춘 KGr 100 ‘파트핀더(패스파인더)‘ 비행대의 힝켈 폭격기 8대가 표준형 고폭탄과 소이탄과 지연 도화선으로 작동하는 폭탄을 투하해가며 길을 안내했다. 지연 도화선은 소방대원들의 진화 재업을 방해하기 위한 장치였다. 대낮이고 날씨도 맑았지만 그들은 X-빔 시스템을 사용했다.
오후 4시43군, 런던에 첫 사이렌이 울렸다. - P306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RAF 전투기들은 적의 실제 목표물이 런던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즉시 독일 침략군을 향해 집결하기 시작했다. 침략자를 발견한 RAF 조종사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항공기는 본 적이 없다." 그는 그렇게 썼다. "약 5,000미터 상공까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안개를 뚫고 나갔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밀려오는 독일 항공기들뿐이었다.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지상에서 바라본 광경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18세의 콜린 페리 Colin Perry 는 자전거를 탄 채 첫 번째 파도가 머리 위를 지나는 모습을 보았다. "굉장하고 인상적인,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페리는 나중에 그렇게 썼다. "머리 바로 위에 문자 그대로 수백대의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독일 비행기였다! 독일 비행기가 온통 하늘을 덮고 있었다." 전투기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있었다. "여왕벌주변을 지키는 벌떼같았다." 그는 그렇게 회상했다. - P307
강인했다. 그렇다. 하지만 처칠은 참담한 모습과 사람들의 놀라운 복원력에 압도되어 남들이 보는 데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한손에 든 커다란 흰 손수건으로 눈을 닦았고 다른 손으로는 지팡이 손잡이를 잡았다. "봐요. 그가 우리를 걱정해줘요. 울고 있다고요." 나이 든 여성이 소리쳤다.
낙담한 얼굴로 집에 남은 것들이 없는지 살펴보는 사람들을 찾았을 때 한 여성이 소리쳤다. "베를린은 언제 폭격할 건가요. 위니?" 처칠은 몸을 획 돌리더니 주먹을 흔들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호령했다. "나한테 맡겨요!"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바뀌었다. 새뮤얼 배터스비samuel Battersby 라는 공무원은 이렇게 썼다. "갑자기 사기가 충천했다. 사람들은 흡족해했고 안심했다." 그 순간에 더없이 완벽한 답변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총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못나게 부적절하지도 않았고 노골적으로 위험하지도 않았다. 배터스비가 보기에 그것은 처칠이라는 예측할수 없는 특이한 마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답변이었다.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재난을 궁극적인 승리를 향해 나아갈 굳건하고 확실한 디딤돌로 바꿔놓은 그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P315
그날 밤과 그다음 날인 9월 9일 월요일에 폭격기들이 런던에 다시나타났다.
폭탄 하나가 블룸스베리에 있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Woolf의 집에 떨어졌다. 그곳은 그녀의 출판사 ‘호가드프레스 HogarthPress‘의 본사이기도 했다. 두 번째 폭탄도 집을 강타했지만 그 자리에서폭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폭탄은 일주일 후에 폭발했고 집은 완전히 주저앉았다. - P321
독일의 야간 공습으로 런던의 생활은 낮의 몇 시간으로 압축되었고, 가을이 깊어지고 도시의 위도가 높기 때문에 그 낮 시간도 무서울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공습은 역설을 낳았다. 어떤 사람이 하룻밤사이에 죽을 확률은 희박하지만 런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죽을 확률은 100퍼센트였다. 안전은 오로지 운에 달린 문제였다. 한 어린 소년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온 답은 소방관이나 조종사같은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고 싶어요."
주민들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밤이 되면 두려움도 같이 시작됐지만 낮에는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생활이 이어졌다. 피카딜리와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상점들은 여전히 손님들이 가득했고 하이드 파크에는 곳곳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땅거미가 질 때가 되어야 독일 폭격기가 머리 위에 나타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마이라 헤스Myra Hess 는 야간 공습을 피해 매일 점심시간에 트라팔가 광장을 바라보는 내셔널갤러리 National Gallery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홀은 만원이었고 참석자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방독면을 들고 바닥에 앉았다. 관객들은 "엄청나고 감동적인" 박수갈채와함께 눈물을 글썽였다고 <뉴요커>의 기고가 몰리 팬터-다운스는 썼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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