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첫문장
내가 그 얻기 어려운 이틀간의 휴가를 간신히 따내가지고 고향을 찾아간 것은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 제삿날에 때를 맞춘 것이었다. 할머니 탈상 때 내려가보고 지금까지이니 그동안 팔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바쁜 직장 핑계 대고 조부모 제사에한번도 다녀오지 못했으니 큰아버지나 사촌 길수 형은 편지 글발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무던히도 욕을 하고 있을 터였다. - P42
내게 고향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었다. 관광지니 어쩌니 하지만 그것도 지역 나름이어서 나의 향리인 서촌은 이렇다 할 관광자원도 없고 하늬바람이 몰아쳐 귤농사도 안되는 한촌(寒村)이었다. 적어도 내 상상속에서 나의 향리는 예나 이제나 죽은 마을이었다. 말하자면 삼십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외면하여 살아오길 팔년, 그 유맹(流氓)의 십년 전으로 되찾아가려면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야 하리라. - P43
가족장지 매입에 대한 의논을 끝내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한담을 즐기고 있는데 불현듯 순이順) 삼촌 생각이 났다. 아까부터 그분이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 어릴 때 보면 큰집 제삿날마다 부조로 기주떡 구덕을 들고 오던 분이었다. 촌수는 멀어도 서너집 건너 이웃에 살아서 큰집과는 서로 기제사에 왕래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길수 형과 나는 어려서부터 그분을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무척 따랐다(고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 어서 삼촌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더구나 삼촌은 일년 가까이 서울 우리 집에 올라와 밥을 해주며 고생하다가 불과 두달 전에 내려오셨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퍽 궁금했다. 혹시 몸이 편찮으신 게 아닐까? 나는 길수 형에게 물어보았다. "형, 순이 삼춘이 통 안 보염싱게 무슨 일이 이서?" 그런데 웬일인지 내 말에 사람들은 하던 말을 문득 멈추고 조용해졌다. 길수 형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큰아버지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얼굴을 돌렸다. - P47
"겨를 없어 너한티는 못 알렸져마는 그 삼춘은 며칠 전에 죽어부러시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우꽈? 순이 삼춘이 돌아가셔서 마씸?" 그분이 돌아가시다니, 나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불과 두달 전만 해도 잔병치레 없이 늘 정정하시던 분이 아니던가.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좌중을 휘둘러보았다. 작은당숙이 나에게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도 몰랐는디 형님, 무사(왜) 나헌티는 기별도 안합디가?" 이렇게 고모부가 말해도 큰아버지는 담배만 풀썩풀썩 피워댈 뿐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에 친누이 같이 지내던 사이인지라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 좌중은 한참 침묵이 흘렀다. 싸르락, 싸르락, 창호지창에 싸락눈 흩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P48
그러다가 결국 당신은 국민학교 근처 일주도로변의 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부패한 정도로 봐서 죽은 지 이십일은 좋이 넘어 보였다. 그 밭이 일주도로에서 한밭 건너에 있었음에도 이십일이 넘도록 사람 눈에 안 띈 것은 거기가 후미지고 옴팡진 밭인데다밭담으로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흰옷 아닌 밤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어서 더더욱 눈에 안 띄었을 것이다.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올 때 입었던 밤색 두루마기에 따뜻한 토끼털 목도리까지 두르고 자는 듯 모로 누워 있었다. 머리맡에는 먹다 남은 꿩약 싸이나가 몇 알갱이 흩어져 있고... 그렇게 발견된 것이 불과 여드레 전이라는 것이었다. - P50
그의 속삭이는 말로는 순이 삼촌은 심한 신경쇠약 환자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환청 증세까지 있어 시골에 있을 때도, 한 적이 없는 말을 들었노라고, 보지도 않은 흉을 봤다고 따지고 들기를 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밥 많이 먹는 식모‘라는 것도, 우리에게 품은 오해도 모두 환청 때문에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역시 그랬었구나, 옆에서 얘기를 듣던 아내는 방정맞게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었다. 당신의 신경쇠약은 지독한 결벽증과도 서로 얽힌 것인데 이런 증세는 꽤나 해묵은 것이라고 했다. 그건 사오년 전 콩두말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얻은 병이었다. 하루는 이웃집에서 길에 멍석을 펴고 내다 넌 메주콩 두말이 감쪽같이 없어졌는데 그 혐의를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순이 삼촌에게 씌워놓았다. 두집은 서로 했느니 안했느니 하면서 옥신각신 다투다가 그집 여편네가 파출소에 가서 따지자고 당신의 팔을 잡아끌었던 모양인데 파출소 가자는 말에 당신은 대번에 기가 죽으면서 거기는 못 간다고 주저앉아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당신이 콩을 훔친 것으로 소문나버릴밖에. 당신이 그전서부터 파출소를 피해 다니는 이상한 기피증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일단 씌워진 누명을 벗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P58
왜 고향엔 유별나게 싸락눈이 많을까? 바람 많이 부는 기상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언제나 고구마, 조팝을 상식하는 고향 사람들에게 내리는 산디쌀일 것이다. 모처럼 제삿날에나 먹어보던 ‘곤밥‘. 왜 ‘곤밥‘이라고 했을까? ‘곤밥‘은 ‘고운밥‘에서 왔을 것이고, 쌀밥은 빛깔이 고우니까. 어린 시절에도 파제 후 곤밥을 몇숟갈 얻어먹어보려고 길수 형과 나는 어른들 등 뒤에서 이렇게 모로 누워 새우잠을 자곤 했다. 제상마저 소각 때 태워먹고 송진내 물씬 나는 날송판때기 위에다 제물이라곤 마른생선 하나에 메밀묵 한쟁반, 고사리, 무채 각각 한보시기밖에 진설할 것이 없던 그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메는 꼭 산디쌀밥이었다. - P60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집 저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뒤를 따랐다. 아,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위(位)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그러나 철부지 우리 어린것들은 이 골목저 골목 흔해진 죽은 돼지 오줌통을 가져다가 오줌 지린내를 참으며 보릿짚대로 바람을 탱탱하게 불어넣어 축구공 삼아 신나게 차고 놀곤 했다. 우리는 한밤중의 그 지긋지긋한 곡소리가 딱 질색이었다. - P60
그리고 파제 후 이집 저집 지붕 위에 던져올린 퇴줏그릇의 세숟갈 밥을 먹으러 날 새자마자 날아드는 까마귀들도 기분 나빴다. 까마귀가 죽은 귀신의 혼령이라든가 저승차사라고 하는 것 때문이아니라, 그 광택 있는 검은 날갯빛이 마을 어른들을 잡으러 오던 서청(西) 순경들의 옷빛하고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얕보던 까마귀들, 사람이 다가가도, 우여우여 소리쳐도 달아날 줄 몰랐다. 그것들은 시체가 널린 보리밭을 까맣게 뒤덮고 파먹다가 심심하면 겨울 하늘로 떼 지어 날아오르며 세찬 날갯짓으로 하늬바람 타기를 잘했다.
그 당시 일주도로변에 있는 순이 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섯개에는 죽은 시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에도, 먹구슬나무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까마귀들.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시체를 뜯어 먹고 다리 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사람 시체를 파먹어 미쳐버린 이 개들은 나중에 경찰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 많던 까마귀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 P61
"순이 아지망은 죽어도 발에 죽을 사람이여. 받을 에워싸고 베락같이 총질해댔는디 그 아지망만 살 한점 안 상하고 살아나시니 참 신통한 일이랐쥬." "아마도 사격 직전에 기절해 쓰러진 모양입디다. 깨난 보니 자기 우에 죽은 사람이 여럿이 포개져 덮연 있었댄 허는 걸 보민...... 그때 발써 그 아지망은 정신이 어긋나버린 거라 마씸" 하고 작은당숙어른이 말을 받았다. "해필 그 밭이 순이 아지망네 밭이어시니." "그 밭이서 죽은 사름들이 몽창몽창 썩어 거름 되연 이듬해엔 감저(고구마)농사는 참 잘되어서. 감저가 목침 덩어리만씩 큼직큼직해시니까." "그핸 숭년이라 보릿겨범벅 먹던 때랐지만 그 아지망네 밭에서 난 감저는 사람 죽은 밭엣거라고 사름들이 사 먹질 안했쥬." "그 아지망이 필경엔 바로 그 밭이서 죽고 말아시니, 쯧쯧."
어른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야릇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순이 삼촌은 한달 보름 전에 죽은 게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 그날 그 밭에서 죽은 게 아닐까 하고. - P62
이런 북새통에 별안간 군중 속에서 날카로운 부르짖음 소리가났다. "불났져! 마을에 불났져!"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학교 돌담 울타리를 기어올랐다. "불이여, 불!" "불났져, 불났져!" "아이고, 아이고!" 운동장 사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나 하늘을 찔렀다. 울타리까지 갈 것 없이 마을 동편 하늘에 까맣게 불티가 날고 있는게 내 눈에도 역력히 보였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차츰 바람에 밀려왔다. 그때 서편 울타리 돌담이 여기저기서 매달린 사람들의 체중에 못 이겨 와르르 무너졌다.
사람들이 그 울타리 터진 데로 몰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지체 없이 총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다시 운동장 복판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무너진 돌담 위에 흰 무명적삼에 갈중이를 입은 노인이 한사람 엎어져 죽은 모양인지 꼼짝하지 않았다. 군인 여남은명이 빠른 동작으로 돌담 위로 뛰어오르더니 아래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조회대 뒤에 늘어서 있던이십여명의 군인들도 앞에 자세로 잽싸게 뛰어나오더니 정면에서 사람들을 포위했다. 단상의 그 장교는 권총을 어깨 위로 빼들고으름장을 놓았다. 그가 강하게 턱을 올려젖히자 철모가 햇빛에 번쩍 빛났다. - P67
"잘 들으라요. 우리레 지금 작전 수행 둥에 있소. 여러분의 집은 작전명령에 따라 소각되는 거이오. 우리의 다음 임무는 여러분을 모두 제주읍으로 소개하는 거니끼니 소개 둥 만약 질서를 안 지키는 자가 있으문 아까와 같이 가차없이 총살할거이니 명심하라우요." 장교의 귀선 이북 사투리가 겁 집어먹은 부락민들의 머리 위에카랑카랑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제주읍으로 소개시킨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군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당장은 자기 집이 불타고 있다는 생각에만 완전히 넋 잃고 절망해야 할 사람들이 다른무엇을 예감하고 두려워하는가? 마을 쪽에서 해풍을 타고 매캐한연기 냄새가 더욱 심하게 밀려오고 불티가 까맣게 뜬 하늘에 불아지랑이가 어른거렸다. 게다가 이따금 총소리가 탕탕 울렸다. - P68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교문을 향해 늘어서기 시작했을때 별안간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레 데려감져" 하는 말이 전류처럼 군중 속을 꿰뚫었다. 그러자 교문 가까이 선두에 섰던 사람들이흩어지며 뒤로 우르르 몰려갔다. 단상의 장교가 권총을 휘두르며뒤로 물러가는 자는 가차 없이 총살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 P68
장대 두개가 서로 번갈아가며 사람들을 몰아갔다. 장대가 머리위로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고 장대에 걸린 사람들은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렸다. 장대 뒤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공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은 장대에 떠밀려 주춤주춤 교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교문 밖에 맞바로 잇닿은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 할머니들,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군인들은 총구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사정없이휘둘렀다. 사람들은 휘둘러대는 개머리판이 무서워 엉금엉금 기어갔다. 가면 죽는 줄 번연히 알면서 어떻게 제 발로 서서 걸어가겠는가.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뒤꿈치에다 대고 총을 쏘아댔다. - P71
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총소리가 콩 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길수 형도 나도 울었다. 우익인사 가족들도 넋 놓고 엉엉 울고 있었다. 우는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외양간에 매인 채 불에 타 죽는 소 울음소리와 말 울음소리도 처절하게 들려왔다. 중낮부터 시작된 이런 아수라장은 저물녘까지 지긋지긋하게 계속되었다. - P71
"겔쎄, 나도 중산간 부락민들을 해안지방으로 소개시키는 데 참가했었쥬마는....… 겔쎄 말이여, 일단 몇날 몇시까지 소개하라고 포고령이 내린 후제도 계속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자는 공비나 공비 동조자로 간주해서 노인 아이 할 거 없이 전부 사살하라는 명령은 있었죠. 사실 작전지역 내의 어떤 부락에 들어서민, 바로 전날에 두집 건너서 하나씩 붙여놔둔 소개하라는 포고문이 발기 발기 찢어젼 바람에 펄럭펄럭하는디, 이건 틀림없이 공비 소굴이구나 하는생각이 팍 들어라. 그런디 이 부락 사건은 소개하라고 사전에 포고령도 없어시니.." - P74
밤에는 부락 출신 공비들이 나타나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이라고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낮에는 함덕리의 순경들이 스리쿼터를 타고 와 도피자 검속을 하니, 결국 마을 남정들은 낮이나 밤이나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순경들이 도피자라고 찾던 폐병쟁이 종철이 형은 공비가 습격해온 밤에 궤 뒤에 숨어 있다가 기침을 몹시 하는 바람에 발각되어 대창에 찔려 죽었고, 헛간 멍석세워둔 틈에 숨어 있다가 역시 비의 대창 맞고 죽은 완식이 아버지도 순경들이 찾던 도피자였다.
우리 종조부님도 사건 석달 전에부락 출신 공비의 대창에 찔려 돌아가셨다. 당시 1구 구장이던 종조부님은 밤중에 내려온 마을 출신 폭도들로부터 식량을 모아달라는 요구에 고개를 흔들었던 것이다. - P75
그러나 대부분의 남정네들은 마을에 그대로 눌러 있었는데, 이들은 폭도에 쫓기고 군경에 쫓겨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할 수 없이 한라산 아래의 목장으로 올라가 마른 냇가의 굴속에 피난했다. 행방을 알 길 없는 남편 때문에 모진 고문을 당하던 순이 삼촌도따라 올라갔다. 이 섬은 워낙 화산지대라 곳곳에 동굴이 뚫려 있어서, 우리 부락처럼 폭도에도 쫓기고 군경에도 쫓긴 양민들이 몰래 숨어 있기 안성맞춤이었다. - P76
하여튼 이렇게 남정네들이 마을을 비우자 군경 측에서는 자연히입산한 것으로 오해하게 되고 그러한 오해가 저 섣달 열여드레의끔찍한 사건의 소지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사건은 마을남정들이 그 냇가 동굴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지 아흐레 만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순이 삼촌은 우리 할머니에게 맡겨두었던 오누이 자식을 데리러 내려와 있다가 그만 화를 당하고만 것이었다. - P77
내 아래 또래의 아이들에게 몰래 양과자를 주어 아버지나 형이숨은 곳을 가르쳐달라고 꾀어내던 서청 출신의 순경들, 철모르는아이들은 대밭에서, 마루 밑에서, 외양간 밑이나 조짚가리 밑을 판굴에서 여러번 제 아버지와 형을 가리켜냈다. 도피자 아들을 찾아내라고 여든살 노인을 닦달하던 어떤 서청 순경은 대답 안한다고어린 손자를 총으로 위협해서 무릎 꿇고 앉은 제 할아버지의 따귀를 때리도록 강요했다. 닭 잡아내라고 공포를 빵빵 쏘아대기도 했다. - P79
그들은 또 여맹이 뭣 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촌처녀들을 붙잡아다가 공연히 여맹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발가벗겨놓고 눈요기를 일삼았다.
순이 삼촌도 그런 식으로 당했다. 지서에 붙들어놓고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닦달 끝에 옷을 벗겼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간밤에 남편이 왔다 갔는지 알아본다는 핑계였는데, 남편이 왔다 갔으면 분명 그짓을 했을 것이고, 아직 거기엔 분명 그 흔적이 남아 있을 테니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날 마당에서 도리깨질하던 순이 삼촌이 남편의 행방을 안 댄다고 빼앗긴 도리깨로 머리가 깨어지도록 얻어맞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이들은 밭에서 혼자 김매는 젊은 여자만 보면 무조건냅다 덮친다는 소문이었으니 나이 찬 딸을 둔 집에서는 이래저래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러니 딸이 겁탈당하기를 기다리느니 미리 선수를 써서 서청 출신 군인에게 시집보낸 우리 할아버지의처사는 백번 잘한 일이었다. - P79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 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 P85
그날밤 사람들은 한기를 피해 모두 한 교실로 몰려들어가 서로붙안고 밤을 지새웠는데, 밤중에 우리들은 두번 호되게 놀랐었다. 한번은 마을에서 대밭이 타면서 마구 터지는 폭죽 소리를 총소리로 잘못 알고 놀랐고, 또 한번은 죽은 줄만 알았던 순이 삼촌이 살아 돌아와 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렸을 때였다. 삼촌은 밤이 이슥해진 그때까지 시체 무더기 속에 파묻혀 까무러쳐 있었던 것이다. 교실 안어 들어선 당신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에게 접근하려 들지 않았다. - P88
그러나 그 누구도 순이 삼촌만큼 후유증이 깊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삼촌네 그 옴팡진 돌짝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은 시체가둘 있었는데 큰아버지의 손을 빌려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았다. 그해 고구마농사는 풍작이었다. 송장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 큼직큼직했다.
더운 여름날 당신은 그 고구마밭에 아기구덕을 지고 가 김을 매었다. 옴팡진 밭이라 바람이 넘나들지 않았다. 고구마 잎줄기는 후출근하게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람 한점 없는 대낮 사위는 언제나 조용했다. 오누이가 묻힌 봉분의 뗏장이 더위 먹어 독한 풀 냄새를 내뿜었다. 돌담 그늘에는 구덕에 아기가 자고 있었다.
당신은 아기구덕에 까마귀가 날아들까봐 힐끗힐끗 눈을 주면서 김을 매었다. 이랑을 타고 아기구덕에서 아득히 멀어졌다가 다시 이랑을 타고 돌아오곤 했다. - P94
그 옴팡밭에 붙박인 인고의 삼십년, 삼십년이라면 그럭저럭 일고 지낼 만한 세월이건만 순이 삼촌은 그러지를 못했다. 흰 뼈와총알이 출토되는 그 옴팡밭에 발이 묶여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당신이 딸네 모르게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온 것도 당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 옴팡밭을 팽개쳐보려는 마지막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오누이가 묻혀 있는 그 옴팡밭은 당신의 숙명이었다. 깊은 소(沼) 물귀신에게 채여가듯 당신은 머리끄덩이를 잡혀 다시 그밭으로 끌리어갔다. 그렇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삼십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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