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7 시간 수면을 좀 지켜볼까 싶어 새벽 1시 전에 자리에 누웠는데 오히려 6시도 전에 자꾸 눈이 떠지고 정신은 말똥말똥 맑아지면서 잠이 안온다.
눈 떠진 김에 이석원의 <나를 위한 노래> 주르륵 좀 읽고 나니 책 내용이 재밌어서 그랬나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얇은 책이라 금방 다 읽을수 있지만...
아꼈다 밤에 읽어야지!
어제 120여 페이지 읽고 그쳐... 그만 읽자!
머리도 좀 쉬어야지 하면서 모바일 게임 좀 하다가..
릴렉스 릴렉스~~ ~~~
오늘 시작은 좋지않다.
6월17일, 그러니까 처칠이 수상이 된 5월10일로부터 한 달 보름 정도의 날.
기어코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제 독일 공군 루프트 바페는 비행대를 영국과 가까운 해안쪽 기지로 옮길 것이다. 독일에서 출격할 때보다 비행거리가 짧아진만큼 보다 더 많은 포탄을 싣고 공격해 올 것이다. 공습은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6월 17일 월요일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프랑스가 함락된 것이다. 처칠의 내각은 오전 11시에 소집되었고 곧이어 레노의 후임으로 프랑스를 이끌게 된 필립 페팅Philippe Pétain 원수가 프랑스군에게전투 중지를 명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처칠은 다우닝가 10번지의 정원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등 뒤로 돌려깍지 낀 채 천천히 걸음을옮겼다. 풀이 죽거나 겁먹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깊은 생각에 잠긴 것같았다. "프랑스 함대와 공군과 식민지를 구해낼 방도를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콜빌은 그렇게 썼다. "그분은 확신하건대 절대 굴하지않을 것이다." - P133
* 그날 오후에는 안 좋은 소식이 더 많이 들어왔다. 적막이 흐르는다우닝가 10번지 각료회의실에 앉아있던 처칠은 병력 수송선으로 차출된 대형선박회사인 큐나드Cunard 사의 여객선 랑카스트리아호 Lancastria가 6,700 명이 넘는 영국 병사와 항공기 승무원과 민간인을 태운 채 독일 항공기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폭탄 3발이 배에 명중했고 곧이어 불이 붙었다. 랑카스트리아호는 20분 만에 침몰하면서 최소4,000 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타이타닉호Titanic 와 루시타니아호 Lusitania 를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였다. - P135
회의실에는 해군의 최고책임자 두명이 먼저 와있었다. 해군장관A. V. 알렉산더 A. V. Alexander와 그의 작전참모인 제1 해군경 더들리 파운드 경 Sir Dudley Pound이었다. 방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프랑스 함대의처리 문제는 히틀러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함대를 강탈할 것인지 여부를 정하는 양단 간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영국 해군은 "접근 가능한 모든 프랑스 함대에 대해 동시적으로 압류하거나 통제하거나 무력화시킬" 계획을 당장 실행할 수 있었다. - P176
시간이 촉박했다. 언제든지 출항할 수 있는 이 배들이 독일의 통제를 받게 되면 바다, 특히 지중해에서 힘의 균형은 달라질 것이다. 히틀러가 전쟁을 치르는 중에 프랑스 함대를 그냥 두고 놀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가지 불길한 사실도해군부의 두려움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영국 정보부는 독일군이프랑스 해군의 암호를 손에 넣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단 캐터펄트 작전이 개시되었을 때 프랑스군이 자진해서 그들의 배를 포기하거나 무력화시키지 않는 한 작전을 맡은 영국 지휘관은무력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처칠은 생각했다.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은 부제독 J. F. 소머빌 경Sir J. F. Somerville 이었다.
*캐터펄트 작전: "접근 가능한 모든 프랑스 함대에 대해 동시적으로 압류하거나 통제하거나 무력화시킬" 계획을 말한다. - P177
지금까지 그는 영국 정벌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가 함락되고 덩케르크 이후 영국군이 혼란에 빠졌을 때 히틀러는 영국이 기회를 보아 전쟁에서 발을 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돼야하고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영국은 서부전선의 마지막 장애물이었지만, 히틀러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련 침공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영국이라는 장애물을 걷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전선을 둘로 나눠야 한다. 신조어를 만드는 독일인들의 능력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츠바이프론텐크리크Zweifrontenkrieg (양면전), 히틀러는 제아무리 처칠이라도 계속 자신에게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인정할 것이라고믿었다.
히틀러가 보기에 서부전선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은가망이 없소." 히틀러는 육군총참모장 프란츠 할더 General Franz Halder에게 그렇게 말했다. "전쟁은 우리가 이겼소. 이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오." 히틀러는 영국이 협상에 응할 것이라 확신하여 그의 군대의 25퍼렌트에 해당하는 국방군wehrmacht 40개 사단을 해산시켰다.
그러나 처칠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 P180
전략적으로 이 공격은 프랑스 해군을 일부 무력화시키는 눈에 보이는 이득을 안겨주었지만 처칠에게는 그것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더 중요한 효과가 있었다. 그 사건이 보내는 신호였다. 이때까지도 수많은 방관자들은 프랑스와 폴란드와 노르웨이와 그 밖의 많은 나라가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간 이상 영국도 히틀러와 휴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영국이 항복할 의사가없음을 알려주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증거였다. 그것은 루스벨트에게보여주는 증거이자 히틀러에게 보내는 확실한 통고였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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