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순이삼촌> 중 [소드방 놀이]
소드방은 ‘소댕‘의 제주도 방언이고, 소댕은 ‘솥뚜껑‘을 뜻한다. 

기민창의 색리 윤관영은 사또의 사주를 받아 사창미 이백석을 작전하라는 명을 받아 시행하였으나 이는 사또의 농간이었을터.. 결국 환곡미를 이백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고 대회군민하여 효수...(후덜덜하다. 대신 죽으라는 말씀. 사또는 관리감독 잘못한 죄만 있다는 뜻)하라는 금부의 명에 따라 부형을 대신 받게 된 것이었다. [소드방 놀이]는 조선후기 만연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사또의 비호가 없었다면 감히 색리 따위가 무슨 수로 환곡미 이백석에 손을 댈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잠깐!
그렇다고 윤관영이 죄가 없느냐
그건 또 아니다. 먹고 죽을래도 먹을게 없어서 보릿고개란 말도 어이없는 마당인걸 사또보다 더 잘아는 게 윤관영이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지 아마 젤 잘 알 놈일 것이다. 그런데 환곡미를 거둘때 어찌 했던가.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미를 안냈다고 솥단지꺼정 떼간 놈이고 씻나락 오쟁이꺼정 훑어가고 농민들 농간쳐서 더 떼어먹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동안 쌓인 원한과 미움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물론 이건 새발의 피로 칠수 있다. 양반님네와 작은 관직이라도 얻은 양반님네부터 권문세가들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바와 같이 어마무시한 수탈을 일삼았지. 하지만아는 놈이 그러는게 더 얄밉고 미운거다. 거기다 나와 비슷한 놈이니까 맘껏 미워할수 있었을 것이다. 사또님은 너무멀리 계시는 분. 그러니 진휼이랍시고 모아놓고 꼴랑 죽 한사발 주는데 추워죽것구만 그도 오랜시간 기다리게 하니 화가 안나겠는가. 돌 맞아죽을 수밖에..
사또놈만 노났네

*색리: 감영이나 군아에서 곡물을 출납하고 간수하는 일을 맡아하던 구슬아치. 조선후기 색리의 지배구조상 최하층 천인에 비할바 없었으니 사또의 명을 어찌 받잡지 않을 수 있으리오.

*부형: 커다란 가마솥에 찜쪄 죽이는...윽!
이지만 실제로는 큰 솥 위에 뚜껑을 걸쳐 놓고 죽는 시늉만 하면서 죽은척 위장하는 것을 소드방 놀이라고 말한다. 형을 받은 색리는 이미 죽은 것이니까 그 고을에 살수 없으니 다른 마을로 도망을 가서 살면 된다나..허 참내
환곡의 폐해와 연결된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네...?!

읽다보니 지금의 우리 현실과 맞닿아있어서 누군가가 자꾸 생각난다. 전씨도 그렇고 이씨?도 생각나고.. 또 이씨도 생각나고.
너무 큰 도둑은 도둑이 아닌 것이여. 그건 그러니까 백성들의 상상을 훨씬 능가하는 어떤 것.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추상이고 그건 너무너무너무 지체높은 권세인 것이다.

˝큰 부정일수록 이렇게 환골하고 탈태하여 나라 경영의 대종을 이루었던 것이다.˝(28)

작가님 말씀이 확 와닿는다.
아직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뭐라 코멘트하긴 그렇지만... 국민을 위해 엄청난 이익을 낸 사업이라니..! 난 한푼도 받은거 없는데.
전씨야 뭐... 추징금만 4천억이 넘었지 않나.. 이건 뭐 너~~~무 많아서 도저히 감도 안온다.
우리집을 몇 채나 살수 있으려나 진짜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


[소드방놀이]
큰 흉년이던 계축년 3월, 정의고을에 진휼이 실시되어 기민에게죽사발을 돌리던 날, 같은 시같은 곳에서 기창 색리 윤관영이 부형(刑)을 받았다. - P8

윤관영은 겁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앞을 트자 다섯말들이 큰 가마솥 열개가 꺼멓게 드러났다.
가마솥을 보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럴 수가 있나! 솔뚜껑놀이 한다고 해놓고선 가마솥을 갖다놓다니. 어찌 된 일인가?
설마 나를 저 끓는 물에 처넣어 증살시킬 요량은 아닐 테지. 뻘겋게 웃통 벗은 관노 세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있었다. 그런데 호방 임춘일은 웬일로 나와서 뒷짐 지고 부뚜막 주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일까? 형방 관속이 아닌 호방이 미리나와서 설치는 게 이상스럽다. 더군다나 알 수 없는 일은 증살형이라면 가마솥 하나면 충분할 텐데 솥 열개에 모두 불을 때고 있는것이었다. 끓는 물에 찜 쪄 죽일 죄인이 나 말고 또 있는가? 윤관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자 다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놈 보게 뻔뻔스레 얻다 낯짝 돌려?"
"어찌 된 셈판이여? 저 윤가놈을 죽인다는 거여, 안 죽인다는 거여? 칼춤 추는 망나니도 없고・・・・・・ "
"글씨, 저 가마솥에 집어넣어 찜 쪄 죽일랑가?"
"저건 진휼솔이랑께. 솥 열개에 모두 죽을 끓인단 말여, 자넨 죽사발 갖고 나오란 말도 못 들었당가?"
이 말에 윤관영은 귀가 번쩍 뜨였다. 죄인을 쪄 죽일 물을 끓이는 게 아니라 진휼죽을 쑨다지 않는가. - P11

환곡미 이백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고 대회군민하여 효수하라. 만약 범포자가 있음에도 불문에 부친 수령은 금부로 하여금 나문정죄토록 하여 엄
중히 다스리겠노라. 삼남지방에 어사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더니 바로 닷새 전에 이런 공문이 벼락같이 떨어진 것이었다. 예감이 어째 불길했다. 삼남지방에 민란이 속출하고 있는 때인 만큼 이번엔 아무래도 유야무야 끝날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야 무슨 죄가 있나, 사또가 사창미를 팔아 작전(錢)해달라기에 그 명을 좋았을 뿐인데, 이렇게자위해보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창고란 창고는 모두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장부상에는환곡 이백가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른바 허록(虛錄)일 따름이었다.  - P18

 사또는 잠시 연죽만 풀썩풀썩 빨며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하여간 큰일이여. 어사가 들이닥치기전에 먼저 선수 쳐서 죄인을 다스려놔야지, 어명을 거행하지 않고어물어물하고 있다간 큰 봉변을 당한다는구먼. 감사영감께서 한시바삐 죄인을 징치하라고 성화가 득달같으셔." 환곡미 횡령죄인이바로 사또 자신인데 누가 누구를 징치하란 말인가? 혹시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이 아닐까? 그러자 펀뜻 문제의 공문 내용이 머리에 떠올랐다. 환곡미 이백석 이상 범포한 자를 적발하고 대회군민하여 효수하라. 만약 범포자가 있음에도 불문에 부친 수령은 금부로 하여금 나문정죄토록 하여 엄중히 다스리겠노라. 역시그렇구나! 공문에는 수령 자신이 범포자가 되는 경우를 슬쩍 빠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감독 불찰의 책임만 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일이 터지면 매양 당하는 건 아전붙이들뿐이었다.  - P27

그렇지만 어디 가서 발명하고 누구에게 고변하랴. 저들의 허물은 서로 감추어 체통을 세워주는 것이 사대부의 미덕이라던가 심지어는 재야의 사림에서도 세도척신이나 지방 방백, 수령보다는아전의 작폐가 더 혹심하다고 지탄의 소리가 높았다. 환정의 문란은 전적으로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층의 농간 때문이고, 환정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농민의 양곡을 가지고 도로 그 농민들을 상대로 장리놀이를 해먹는 이 조직적인 수탈 방법이 훌륭한 제도라는 것이었다. 원래환자란 참새나 쥐가 축낸 자연 소모량을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조금씩 걷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근래에 와서 작은 참새나 쥐가 식성 좋은 사람 쥐로 둔갑하여 막대한 양의 곡식을 축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환곡 업무에 편승하여 횡령하거나 장를 주어 부당이익을 취하며 떼돈을 만지는 수령보다 그 밑에 빌붙어잔전 부스러기나 얻어먹는 아전의 폐막이 더 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 P28

야릇하구나, 야릇하구나. 어째서 큰 부정은 죄가
안되고 작은 것만 죄가 되나. 부정이란 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부정의 탈에서 벗어나는가? 그렇다. 도둑도 좀도둑이훨씬 도둑답다. 그것이 대담해져서 명화적쯤 되면 이미 도둑의 탈은 벗겨지는 법. 부정이란 것도 좀스럽고 쩨쩨한 구석이 있어야 진짜 부정이지, 쥐가슴 태우며 훔쳐내는 쌀 한톨, 실 한가닥은 부정이지만 환곡미 이백석 횡령은 이미 부정이 아니었다. 그건 백성들의상상을 훨씬 능가해버린 것.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추상이었다.
그건 이미 부정이 아니라 지체 높은 권세였다. 큰 부정일수록 이렇게 모두 환골하고 탈태하여 나라 경영의 대중을 이루었던 것이다. - P26

물론 윤관영은 자신이 결백하다고 우기고 싶지는 않았다. 항산도 없고 녹봉도 없이 고달픈 대민업무를 맡은 아전직이라먹고살려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먹고살 낙정미(庭)를 농민으로부터 좀 넉넉하게 받아내려고 농간 칠 때도 있고수령의 부정을 도와 잔전 몇푼 얻어먹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문자 그대로 뜰에 떨어진 낙정미만 주워 먹고 살라니 아전 입은사람 입이 아니고 참새 입이던가. 농가 마당에 흘린 낟알이나 쪼아먹고 살라니 말이다. 모름지기 이도(道)의 염치를 확립하려면 무엇보다도 낙정미가 아니라 호구지책이 될 만한 법적 녹봉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P29

 문득 사또와 눈이 마주쳤다. 윤관영은 혼신을 다하여 사또의 눈길에 동동 매달렸다. 제발, 제발・・・・・・ 그러자 즉시 답이 왔다. 사또는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려 보이는 것이었다. 오냐, 오냐.
걱정 말라고 넌지시 전해오는 사또의 고갯짓을 보자, 윤관영은 천야만야 가라앉았던 가슴이 다시금 붕긋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공연히 걱정을 했구먼. 아무러면 사또가 금석의 맹약을 저버릴까. 형 집행을 앞당겨 거행하는 것도 다 나를 위해서 요량한것이 틀림없지. 아무렴 진휼을 다 끝낸 다음에 별도로 격식 차려서거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한 구석이 없지않아. 진휼이 끝나서더이상 얻어먹을 것도 없고 자루를 더 채울 것도 없어지면 혹시 저 사람들이 그때 가서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 매도 먼저맞는 놈이 낫다고, 어서 가자. - P36

복판에는 댕그렇게 윤관영 혼자뿐이었다.
사나운 짐승 목소리로 카랑카랑 울부짖던 사람들은 이제 몰이꾼같이 숟갈로 빈 사발을 두들기고 발을 구르면서 복판의 윤관영을무섭게 몰아붙였다. 장내는 온통 흙먼지에 휩싸여 뿌옇게 들떠올랐다.
문득 사기그릇 하나가 날아들어 목에 걸린 칼 밑동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윤관영이 흠칫 놀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자 뒤미처돌과 사발이 비 오듯 날아들었다. 윤관영이 외마디 비명도 없이 모로 픽 쓰러진 다음에도 돌팔매질은 한참 계속되었다. 솥뚜껑만 혼자 살아서 쩽겅쩽겅 미친 듯 비명을 올리고 있었다. - P38

어라, 이게 웬 떡이여. 숨막히게 되우 놀라 있던 사또는 눈이 더욱 회동그래졌다. 그러면 그렇지, 무지한 것들이 감히 어느 앞이라고 대들 거냐. 제 주인을 무는 개가 어디 있어. 자, 그럼 수창자(唱者)가 따로 있을 턱이 없는 이 우발적인 난동을 어찌 다스린다? 누가 죄인을 허벌했든지 간에 아무튼 일단 끝나버린 일, 공연히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없지. - P38

더구나 저것들이 죄를 뉘우친다고 엎드려대죄하고 있는데… 형 집행권이 잠시 농락당한 것이 서운하다면서운하지만 저 실성한 것들이 그만하면 실컷 화풀이도 됐을 테니오히려 잘된 일이다. 하여튼 죽은 놈만 불쌍하구나. 쯧쯧....
사또는 잠시 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다음, 남은 진휼을 마무리짓기 위해 피 묻은 돌무더기와 윤관영의 시신을 치우라고 명했다. - 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