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을지...
평생의 반쪽이었던 남편을 보내고 홀로 남아 남편을 추억하는 50편의 글을 연재하는 동안 원없이 추억을 되살려 볼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을 거 같다. 아직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아직 그리움이 남아 있을 때 마음 속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추억할 수 있다는건 좋은 일인것 같다.

시한부의 삶을 선고 받았으니까 분명 얼마남지 않았다는걸 알지만, 그리고 점점 힘들어하고 쇠약해져 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남은 시간은 너무 짧고 한정적이어서 마음의 준비란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수 있다.
깊이 사랑했던 두 작가의 삶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보여서 가슴이 아팠는데, 내 맘 속에선 오래 전 우리곁을 먼저 떠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어서 눈물났다.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사소한 일로 후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바지의 허리 고무줄. 너무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 가볍게 웃어넘겨도 되는일로 이렇게 후회가 된다.
후회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바지를 발견한 며칠 뒤,서재 정리를 하다가 책상 위의 부적 마스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하고 조그만 플라스틱 상자 안에, 신사에서파는 복주머니 부적과 강아지 인형이 들어 있는 마스코트다. 암세포가 림프절(림프샘)까지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를시작할 무렵, 남편이 문구점에서 자신과 나를 위해 샀던 ‘건강 부적‘이었다. - P158

사서 원하는 곳에 두면 끝인줄알았는데, 상자 뒤에 설명서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복주머니 속 카드에소원을 적어 넣고, 늘 지니고 다니세요."
복주머니 안에 카드가 들어 있을 줄이야.... 쭈뼛쭈뼛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춰 버렸다. 반으로 접힌 조그만 흰색 카드에, 남편의 글씨로, 나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 P158

시간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흘러간다. 그제 밤에는 올 들어 처음으로 올빼미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떴고, 숲속 여기저기 울어 대는 올빼미 소리에문득 아득해지는 현실감을 느낀다. 시간과 함께 그와의 기억이 흐려지기를 바라는 걸까. 그때 그대로 생생하기를 바라는 걸까. 도통 알 수가 없어, 무심코 하늘만 올려다본다. - P159

맑고 푸른하늘. 초록으로 물든 숲.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람에 흔들리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 소리와 평화로운 새소리뿐. 이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날을 만나면, 다시 한 번 그에게도 보여 주고 싶고 느끼게해 주고 싶다.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해 주고 싶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아프기 전에는 요란법석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헤어지자고 진심으로 말한 적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헤어지지 않았다. 그도, 나도,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었던 거다.
부부애,궁합의 좋고나쁨, 이런 것과는 무관한 이야기
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었다. - P211

반쪽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나는 절반으로 남았지만, 이연재를 통해 상실의 슬픔에 진정으로 공감해 주는 수많은독자와 연결될 수 있었다. 좀처럼 얻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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