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몰아서 읽어버렸다. 항상 중간이 넘어가기 힘든데... 일단 올해는 책 반납하기 전에 꼭 읽기로 생각했으므로 새해 첫날부터 어길수 없으니 끝까지 읽어야했다.
중간이후부턴 긴장감에 책장이 아주 날개 달린듯 휙휙 넘어간다.
반납을 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곧 다가올 것만 같은 공포스러움이 팽배해 있으니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이 휙휙 할수 밖에 없었다.
끝까지 읽기를 너무 잘했다!
중간쯤 읽었을땐 아...뭐 이런... 말아버릴까 했는데 추천한 이유가 있겄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가보자 한것이 적중한거다.
다음에 읽어도 끝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하지는 않겠다.^^
그날 밤, 대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왜 우리가 바르샤바를 떠나지 않는가 하는 질문으로 끝났고, 우리 모두는 다소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쇼샤를 떠날 수 없었다. 하이들은 셀리아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삼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혼자 달아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로드의 부유한 산업가들 몇몇은 1914년 러시아로 도주했지만 삼 년 후 볼셰비키들에게살해되었다. 하이믈은 나치의 박해보다는 여행하는 데 따르는 번거로움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P348
셀리아는 다음과같은 얘기를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다면 단 하루도 이곳에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내 아버지뿐아니라 어머니와 할머니도 내 나이에 죽었어요. 실제로는 그보다도 더 젊어서 죽었죠. 근데, 나는 무기력이라는 힘으로버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내가 낯선 땅에 가 어떤 호텔 방이나 병원에서 아파 누워 있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어요. 낯선 공동묘지에서 휴식하고 싶지는 않아요 - P348
죽음이 두려웠던 때도 있어요. 누가 내앞에서 그 단어를 말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죠. 신문을 샀을 때에도 부고란은 재빨리 건너뛰었죠.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먹지도, 숨을 쉬지도, 생각을 하지도, 책을 읽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너무도 끔찍해 삶의 그 무엇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그러다가점차 죽음이라는 관념에 대해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되었고, 심지어는 나의 이상이 되기까지했죠. 오늘 신문을가지고 들어온 나는 재빨리 부고란을 펼쳐 보았어요.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으면 그가 부러워요. 내가 자살하지않는 첫 번째 이유는 하이믈 때문이에요. 나는 그와 함께 가고 싶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죽음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포도주와 같아요. 자살하는 사람은 한 번에 죽음으로부터영원히 벗어나고자 하죠. 하지만 그렇게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죽음의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죠." - P349
나는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채 호텔을 나왔다. 룸 서비스를 하는 여직원이 나를 볼 것이고,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나는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나는 일정한 행선지도 없이 길을 걸었다. 내 다리는 나를트레바카가에서 극장 광장으로 데려가 주었다. 이번에도 바르샤바에 머물게 되면 나치의 손에 떨어지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베티의 희곡을 읽고, 그녀와 얘기를 나누느라 피곤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나무랄 수 있는기회를 주었고, 그에 따라 우리의 작별은 덜 근엄할 수 있었다. - P364
그 전까지만 해도 자유의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날 아침에는 인간이 내 손목시계의 태엽장치나 접시의 가장자리에내려앉은 파리만큼의 선택권밖에는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힘이 히틀러와 스탈린, 교황, 구르의 랍비,지구의 중심에 있는 분자 하나, 은하수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성운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힘인가? 아니면 뭔가를 볼 수 있는 힘인가? 그것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사소한 게임을 끝낸 후 죽게끔 운명지어져 있었다. - P366
유대인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프르즈세호드니아 가에 있는 환전소에는 달러에 대한 즐로티의 가치를 고시하고 있었다. 암시장에서는 달러를 환전할 경우 몇 페니를 더 지불해주었다. 유대교 학당에서는 학생들이 탈무드를 공부하고 있었다. 하시디즘 학당에서는 하시디즘의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문득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골목과 건물과 가게와 얼굴들 모두를 기억 속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사람 역시 교수대로 가는 길에 세상을 그런 눈으로 볼 것 같았다. 나는 행상들과 짐꾼들, 시장에서 일하는 여자들, 심지어는 마차에 묶여 있는 말에게까지도 작별을 고했다. 나는그들 각각에게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표정을 보았다. - P367
13년이 지나갔다. 뉴욕에서 나는 이디시어 신문사에서 받는 봉급으로 이천 달러를 저축했다. 영어로 번역될 소설의선인세로 오백 달러도 받았다. 나는 런던과 파리, 그리고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 P375
"이 커피는 구정물 같군. 자네를 못 본 게 얼마나 됐지? 13년? 그래, 구월이면 정확히 13년이 되지. 쇼샤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지?" "우리가 바르샤바를 떠난 이튿날 죽었어요." "죽었다고? 길에서?" "그래요, 라헬[야곱의 두번째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처럼요" - P380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어, 아무것도. 소식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지지 비알리스톡과 빌나에 우편배달부와 심부름꾼이 된 유대인들이 있었어. 그들이 국경을 넘어 아내들에게 편지를 갖다주었지. 하지만 자네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1946년에 자네가 살아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지. 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뮌헨으로 갔는데 누군가가 그곳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주더군. 그것을 펼치자 자네 이름이 있더군. 자네가 뉴욕에 있다고 했어. 뉴욕에는 무슨 수로 가게 되었지?" "상하이를 통해서요." "누가 신원보증을 선 건가?" "베티 기억하죠?" "그럼! 아무도 잊지 않았네." "베티는 기독교인인 미군 중령과 결혼했어요. 그가 신원보증서를 보내줬죠." "그녀 주소를 알고 있었던 건가?" "우연히 알게 되었죠."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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