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란 일종의 보호 장벽인 셈이고, 따라서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예의는 위선이나 악의처럼 느껴져서 불필요한 것이었다. 거칠고 노골적이고 악을 쓰는것이 정상적인 가족 간의 대화였다. - P74
식당과 식품점을 겸한 가게에서 사는 우리는 이 세상, 우리가 손님들이라고 부르는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는 꼴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성당에 가고 부억 한구석에서 씻고 요강에 오줌 싸는 모습까지 보고 들었다. 항상 남에게 노출되어 살다 보니 점잖은 언행을 하고(욕이나 상스런 표현,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질투나 호기심 혹은소문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은 모두 감추게 되었다. 우리는손님들에 대해 많은 것, 예를 들어 그들의 수입, 생활방식 등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에 대해선 가능한 한 적게 아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양말을 얼마에 샀는지 말하거나 배탈이 났다고 불평하거나학교 성적을 자랑 삼아 늘어놓는 일이 금지되었다. - P75
손님이 들어오면 먹던 과자 위에 행주를 덮거나 포도주 병을테이블 밑으로 감추곤 했다. 말다툼을 하고 싶어도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지 않았다간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 P75
완벽한 장사꾼이 되기 위한 행동수칙 중에서 나와 관련된 조항을 꼽아본다면 이렇다. 가게에 드나들 때마다 항상 맑고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것. 어디에서 마주치건 먼저 손님에게 인사할 것. 손님에 대해 아는 것을 떠들고 다니거나 손님이나 다른 상인에 대해 험담하지 말 것. 하루 매상 총액이 얼마인지는 절대 밝히지 말 것. 자만하거나 과시하지 말 것. - P76
이런 규칙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너 때문에 손님을 잃을 거야. 그래서 가게가 망하겠지. - P76
열두 살 시절의 세계의 법칙을 드러내다 보니 꿈속에서 느꼈던 미세한 중압감과 폐쇄감이 슬며시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찾아낸 어휘들은 불투명하고, 요지부동의바윗덩어리이다. 명확한 이미지는 빠져 있는 어휘들, 사전을 찾으면 나오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의미마저도 빠져 있는 어휘들. - P76
그러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사립학교는 그의 최상의기준이었다.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걸 학교에서 본다면 뭐라고 하겠니?" 등등. 그리고 또 한 가지, 학교에서 사람들 눈 밖에 나면 안된다. - P115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싸우지 않는 사람 또는 시내에 갈 때 정장을 차려입는 사람 같은 정상적인 범주에더 이상 포함되지 않았다. 개학일마다 깨끗한 교복을 입고 예쁜 기도서를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서나 1등을 하고 기도문을 줄줄 외웠지만, 나는 더 이상 다른 여학생들과 같지 않았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것이다. - P117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 P117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 P117
그다음 일요일인 6월 22일, 나는 작년처럼 루앙의 기독교 학교 청년 축제에 참가했다. 우리는 늦은 밤 버스에서 내렸고, 마드무아젤 L이 내가 사는 동네까지 학생을데려다주는 일을 맡았다. 새벽 1시경이었다. 나는 식품점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가게에 불이 켜지더니 구겨지고 얼룩덜룩한(오줌을 누고 옷으로 그냥 닦았기 때문에) 속옷 바람으로, 잠이 덜 깨 입을 굳게 다물고머리를 산발한 어머니가 현관 불빛 아래에 나타났다. 마드무아젤 L과 몇몇 학생들이 하던 이야기를 뚝 멈췄다.
어머니가 어물어물 인사말을 건넸지만 아무도 답례하지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사립학교 세계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장면과 아무 상관없는 이 장면이 그것의 연장으로 생각된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이상한 셔츠 사이로 내비친 어머니의 알몸뚱이를 통해 우리의 진면목,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발각된 것처럼 느껴졌다. - P118
그 뒤 여름 내내 있었던 모든 일들은 우리의 천박함을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우리밖에‘없다. - P119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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