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에는 산사나무 향기가 짙게 풍기고 있었다. 울타리는 임시 제단 위에 쌓아 놓은 산더미 같은 산사 꽃들로 칸막이가 보이지 않는, 쭉 늘어서 있는 노천 제단 같은 모습이었다.
*또는 산사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높이 3~6미터로 꽃은 5월에 피고 흰색이 주를 이루나 드물게 분홍색 꽃도 핀다. 5월에 꽃이 피므로 유럽에서는 ‘5월의 꽃‘이라고도 한다.(역주) - P243
그러나 산사나무 앞에 걸음을 멈추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고정된 향기를 들이마시며 내 생각 앞에 내밀어 보아도, 내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 향기를 잃어버리거나 되찾거나 하면서, 산사나무가 젊음의 기쁨과 더불어 여기저기 어떤 음정의 차이처럼 예기치 않은 간격을 두며 곳곳에 꽃을 뿌리는 그 리듬과 일체가 되어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산사 꽃은 무한히 고갈되지 않는 풍요로움과 더불어 똑같은 매력을 주기는 했지만, 마치 백 번이나 연이어 되풀이 연주되어도 더 이상 그 비밀에 접근하지 못하는 멜로디처럼, 내게 그매력이 무엇인지 더 깊이 알도록 해 주지 않았다. - P244
그런 다음 잠시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면 보다 더 잘감상하게 되는 걸작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나는 다시 산사나무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로지 산사 꽃만을 눈앞에 두려고제아무리 두 손으로 차단막을 만들고 집중해 봐야 소용없었다. 꽃이 내게 불러일으킨 감정은 내게서 떨어져 나가 꽃에 가서 들러붙으려 했지만 헛수고였고, 그리하여 그 감정은 여전히 모호하고 막연한 채로 남아 있었다. 산사 꽃들은 내가 느낀감정을 해명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다른 꽃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 P245
"넌 산사 꽃을 좋아하지 않느냐. 이 분홍색 산사 꽃을 좀 보려무나. 정말 예쁘지 않으냐." 사실 그것은 산사 꽃이었다. 그러나 흰색 산사 꽃보다 더 아름다운 분홍색이었다. - P246
가지 꼭대기에는마치 레이스 종이로 싼 수많은 작은 화분에 감추어져 대축일이면 제단 위에서 그 가느다랗게 접힌 종이가 반짝거리는 장미나무처럼, 더 희미한 빛깔의 꽃봉오리로 무수히 넘쳐 났고, 봉우리가 열릴 때는 분홍 대리석 술잔 바닥같이 붉은 핏빛이살짝 보였는데, 마치 산사나무가 싹트고 꽃 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분홍색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활짝 핀 꽃보다 더 산사꽃의 특이하고도 매력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프루스트의 화자는 산사나무를 대단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수 있는 문장들이 장장 네페이지에 걸쳐 펼쳐져 있다. 산사나무가 흔히 보이는 나무는 아니어서 상상이 잘 안되지만 우리나라의 찔레나무와 비슷한 느낌인 듯하다. 찔레보다는 꽃잎이 보다 조밀하고 풍성하며 분홍색 산사나무는 농원에서 쉽게 구입도 할수 있다. - P247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모습이 단지 우리 시선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깊은 지각을 요하면서 우리 존재 전부를 사로잡은 것이다. 붉은빛 도는 금발머리 소녀가 지금 막 산책에서 돌아온 길인 듯,손에 정원용 삽을 들고 분홍색 주근깨투성이 얼굴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당시에는 어떤 강렬한 인상을 객관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 후에도 배운 적이 없었으며, 또는 눈 빛깔에 대한 개념을 추출하기에도 충분한 ‘관찰력‘이 없었으므로,오랫동안 그녀를 생각할 때면 그 눈의 광채에 대한 추억은, 그녀 머리가 금발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선명한 하늘빛 광채로 떠올랐다. 따라서 만약 그녀 눈동자가 그토록 검지 않았다면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특히 내가 파란색이라고 생각하며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프루스트의 화자는 상상 속에서 질베르트의 눈동자가 파랗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실제로는 검은색이다. 그렇지만 그 검은색이 그토록 강렬하지 않았다면, 그가 파란색 이라고 생각하며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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