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맞닿았다. 테레즈는 상자를 열다가 고개를 들었고, 때마침 여인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시선이 부딪쳤다. 여인은 늘씬한 몸매에 금발이었으며 넉넉한 모피 코트를 걸친 모습이 우
아했다. - P54

 한 손을 허리에 대고있어서 모피 코트 앞섶이 벌어졌다. 눈동자는 회색으로 무채색이나 불꽃이 일듯 강렬했다. 눈동자에 붙들린 테레즈는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앞에 있는 손님이 재차 묻는 소리가들렸지만 테레즈는 가만히 선 채 벙어리가 되었다. 여인은 딴데 정신이 팔린 표정으로 테레즈를 쳐다보았다. 백화점에서사야 할 물건이 머릿속 절반을 차지한 것 같았다. 주변에는판매 여직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테레즈는 저 여인이 분명자기에게 올 것임을 직감했다. 여인이 서서히 카운터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테레즈의 심장은 멈춰 섰던 순간을 만회하려는 듯 쿵쾅거렸다. 여인이 점점 다가오자 테레즈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순간
- P55

"일요일엔 뭐해요?" 캐롤이 물었다.
"글쎄요. 특별한 일은 없어요. 그쪽은요?"
"나도 그래요. 요즘에는요. 괜찮으면 나중에 우리 집에놀러 와요. 언제든 환영이니까. 그래도 집 근처엔 자연이라도 있으니까요. 괜찮으면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 집에 올래요?" 회색 눈동자가 테레즈를 직시했다. 처음으로 테레즈가캐롤과 눈을 맞추었다. 두 눈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다른것도 보였다. 호기심, 그리고 도발도 있었다.
"그럴게요." 테레즈가 대답했다.
"정말 특이한 여자군요."
"왜요?"
"별에서 온 사람 같아요." 캐롤이 말했다. - P75

캐롤은 테레즈가 같이 여행 가려고 무대 디자인 일자리를 거절할 리 없다고 확신하고 묻는 듯했다. 가보지 못한 미국구석구석을 같이 다니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밤이 되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게 될 여행이었다. 캐롤이 이런식으로 물으면 테레즈는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캐롤은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테레즈는 캐롤에게 조롱당한 기분이 들었다. 배신당해 씁쓸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분노는 다시는 캐롤을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캐롤을 쳐다보았다. 캐롤은 테레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본심을 반쯤 숨겼으나 무시하는 모습이 은연중에 비추었다. 테레즈가 거절해도 캐롤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리라. - P199

리처드가 말을 꺼냈다.
"그 여자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날 저녁 테레즈는 리처드와의 데이트 약속을 깼다. 캐롤이 혹시나 들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캐롤은 오지 않았고, 대신 리처드가 찾아왔다. 11시 5분, 렉싱턴 가의 분홍색 벽지로 꾸며진 넓은 카페테리아에서 테레즈가 먼저 얘기를 꺼내려던 참에 리처드가 선수를 쳤다.
"같이 있으면 좋아. 얘기하는 것도 좋고, 난 누구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좋더라." 테레즈는 캐롤에게 쓰고도 부치지 않은 편지가 떠올랐다. 리처드가 묻는 질문에 대답이 될것 같았다. 
‘두 손을 쫙 펼치고 사막에 서 있으면 당신이 비처럼 내게 내리네요.
"그 여자한테 푹 빠졌군." 리처드는 되짚어주듯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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