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러한 열정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 -‘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
겠다ㅡ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
다. - P19

가끔 내 집에 묵으러 오는 아들들에게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감추지 않았다. 그와의
 관계를 수월하게 유지하기 위해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아들들에게도 일러두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에 와도 되는지 알기 위해 미리 전화를 걸어주었고,
A가 온다는 연락이 있으면 집에 있다가도 서둘러 돌아갔다. 이렇게 주변을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불장난 같은 연애사건을 부모에게 숨겼듯이 아이들에게도 이번 일을 비밀로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아이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고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


*<마리 끌레르> 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젊은이들은 이혼했거나 별거 중인 어머니가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가차없이
비난하고 있다. 한 소녀는 원망에 가득찬
말투로 "엄마의 애인은 엄마가 허황된 꿈만 꾸게 만들어요." 라고 주장했다. 하지
만 외로운 엄마에게 그보다 더 위안이 되는
일이 있을까?(원주)

- P22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솔직하고 거리감 없이 열정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말해주었다. 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시켜주었다.


*단순한 열정에 빠진 문학교수는 예전처럼 바흐를 듣거나 사르트르를 읽지
않고 유행가와 영화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부르디외의 견해에 따른다면 문화소외계층이 도무지 진입할 수 없는 취향영역이 음악이다. 다시 말해
신분상승과 더불어 취미, 의상, 입맛 등이 바뀌지만 음악에 대한 감수성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전남편
의 권유로 가까스로 바흐를 듣게 되었지만
연인에게 버림받자 <마태수난곡>보다는 실비 바르탕의 노래에 절감하게 된다.
---(옮긴이의 말 ) 중에서

~~~난 개인적으로 미술이 더 그렇던데...

- P23

그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내게 많은 제약을 강요했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선물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사람이 한가할 때나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불평하지 않았다. - P31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
했다.
- P39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없었다. 온몸이 아팠다.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고통은 도처에 있었다. 차라리방에 강도라도 들어와 나를죽여주었으면 싶었다. 낮 동안에는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다(상실감에 사로잡힌다는 말은 내게우울증에 빠지거나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 P45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A가 떠난 지 두달쯤지난 후부터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A와의 관계에 관련된 것들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 P52

어느덧 4월이다. 이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A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거나 영화를본다거나 외식을 하는 등 ‘일상의 작은 기쁨을 누려보겠다는생각에도 거부감을 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열정의 시간을 살고 있다(잠에서 깨어나도 더이상 A 생각을 하지않는다고 공언하게 될 언젠가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사람이 예전처럼 그렇게 내 일상을 집요하게 차지하고 있지는않다. - P57

전쟁이 터지고 첫번째 맞는 일요일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A의 목소리였다. 잠시 동안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나는 울먹이며 그 사람의 이름만 되풀이해 불렀다. 그 사람도 "나야, 나라고 하는 말만 천천히 반복했다. 그는 당장 나를 만나고 싶다며택시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도착하기 전까지 30분 정도
의 여유가 있었다. - P63

그 사람은 "당신, 나에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그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
나 긴 드례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
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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