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봐야 할 작품

맑은 바다를 배경으로 벌거벗은 사람들과 새들, 처음 <해변의 가족>을 마주했을 때는 하얀 물새들이 먼저 보였습니다. 마치 새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술래잡기하는것 같았거든요. 새들의 모습이 신나 보입니다. 그리고 알몸의 가족은 행복하게 뒤엉켜 놀고 있습니다.

*이중섭 ,해변의 가족,1950년대 - P100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에서 이 작품은 꼭 보고 싶었습니다.
미술관 옥상에서는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섶섬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거든요. 제 눈으로 섶섬을 보고서 <섶섬이보이는 풍경> 앞에 서봅니다. 화가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과 비슷한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풍경이 정말 흡사합니다. 신기해서 오랜시간 멍하니 바라보다 왔습니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 - P101

화가들은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시를 바라보는 시대상, 본인이 바라는 이상향, 그리고 작금의 현실이
캔버스에 드러나게 되죠. 그리고 이 
<서귀포의 환상>을 보자면 이중섭 화백은 자신의 감정에 참 솔직했던사람 같습니다. 여러분도 이 작품을 보면 당시 화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나요? 전체적으로 꿈, 환상처럼 몽환적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과일을 따거나 과일을바구니에 담아 나르고 있죠. 어떤 아이는 새를 타고 신나게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화가가 상상한 환상의 나라였을까요….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었나 봅니다. 당시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고단하면서도 행복했던 감정이 직관적으로 전해집니다.

*이중섭, 서귀포의 환상, 1951 - P113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이중섭 화백이 가족과 헤어진 후가족을 그리워하며 편지에 동봉한 그림입니다. 해변에 게들이 모여 있죠. 아들 태현과 태성이 게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부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아이들 옆을 자세히 보면 일본어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부부의 모습에도 ‘엄마‘, ‘아빠‘라고 적혀있죠. 혼자 남겨진 그가 떠올렸던 행복한 제주에서의 삶이 눈물로 뿌옇게흐려진 시야처럼 느껴집니다.

* 이중섭, 그리운 제주 풍경, 1954 - P116

그는 살아생전 소를 참 많이 그렸습니다. 들판의 소를 자세히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그를 증명하죠. 대표작 중 하나인 <흰 소>를 보면 잿빛의 배경에 흰 소가 당당히 서있습니다. 이 그림의 흰 소는 백의민족이었던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색상뿐만 아니라소는 그 우직하고 성실한 면도 한국인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몸을 자세히 보면 피골이 상접해 있지요. 한국전쟁 당시의 생활고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딛고도, 이 그림에서 가장 강렬한 지점은모든 것을 꿰뚫는 눈빛 아닐까요. 소의 눈을 보노라면 참혹한 현실 속에서 뚫고 나가려는 삶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중섭 화백은 끝없는 역경과 고난에 굴하지 않고헤쳐가는 본인의 모습을 소의 형상으로 재현합니다.

*이중섭, 흰 소, 1954
- P119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에서 ‘이중섭 작품전‘이 성황리에열렸습니다. 특히 소 그림이 인기가 좋았는데요. 당시 전시회에 방문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이자 미술 애호가인 아서 맥타가트는 곧바로 이중섭 작품의 가치를 일찍 알아보고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이중섭이라는 위대한 화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서양인이라 불리죠. 그는 소 그림과 유화,그리고 은지화 10여 점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중섭화백의 은지화석점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하죠. 오늘날 그곳에서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 P125

결국 간염이 급격히 악화되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지만 1956년 9월 6일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이중섭은무료 병동에서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만 40세의 나이에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지키는 이 없는 영안실에 이틀 동안 방치되었죠. 그의 시신은 친구들이 장례를 치른 뒤, 일본에 있던 가족에게 뼛가루의 형태로 보내집니다. - P127

나의 상냥한 사람이여 11월28일자 편지는 반가이 받았소.
그동안 서울은 추웠지만 어제부터 봄같이 따사로워졌소.
더 추워져도 끄떡없을 테니 아고리를 굳게, 굳게 믿고 힘내시오. 나는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의 멋진 모든 것을 꽉꽉 포옹해보고 싶소.
길고 긴 입맞춤을 하고 싶소. 나만의 멋진 천사, 다시없는나의 다정한 아내여 건강하게 견디어 냅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긴 뽀뽀를 보내오. 상냥하고 따듯하게 받아주구려.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 中>

*편지 중에 본인을 ‘아고리‘로 부르는 이유에 대하여
--이중섭이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아고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당시 같은반에 이씨가 세명 있었는데, 이중섭은 턱이 길어 일본어로 ‘턱‘이라는 뜻의 ‘아고‘
와 성인 ‘이‘를 합쳐 ‘아고리‘라 불렸다고한다. 종종 편지에 스스로를 ‘아고리‘로 칭하는게 이런 까닭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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