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천천히 차를 몰며 어떤 생각을 곱씹었다. 간밤에 나는 차고를 살펴보지않았다. 가이거의 시신이 사라졌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시신을 처리하는 좋은 방법은 일단 차고로 끌고 가서 가이거의 차에 싣고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널린 호젓한 골짜기에 내다버리는 것이다. 며칠 또는 몇주 동안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가이거의 차 열쇠가 있어야 하고 범인이 두 명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색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시신이 사라졌을 때 가이거의 열쇠는 모두 내 주머니 속에 있었으니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미처 차고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차고는 문을 내리고 맹꽁이자물쇠를 채워놓은데다, 내가 차고 앞을 지나는 순간 울타리너머에서 뭔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 P78

나는 브로디에게 다가가서 자동권총을 그의 옆구리에 들이대고 그의 주머니에서 콜트 권총을 끄집어냈다. 이제 밖으로 드러난 권총은 모두 내가 차지했다. 전부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브로디에게 한 손을내밀었다.
"내놔."
그가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겁먹은 눈빛이다. 그는윗주머니에서 두꺼운 봉투를 꺼내 건넸다. 봉투 안에는 현상한 원판과유광사진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정말 이게 다야?"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봉투를 윗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 P107

누군가가 말했다. "브로디?"
브로디가 대답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두 발의 총성이빠르게 이어졌는데 소리가 좀 답답했다. 총구를 브로디의 몸에 들이대고 쏴버린 모양이다. 그가 앞으로 쓰러지며 문짝에 부딪쳤고 그의 체중때문에 문이 쿵 닫혀버렸다. 그는 문짝 가장자리를 따라 스르르 미끄러졌다. 그의 두 발이 카펫을 뒤로 밀어냈다. 왼손이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팔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머리는 여전히 문틈에 낀 상태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아직도 콜트 권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 P117

"싸움은 관두는게 좋을걸. 넌 쓸데없이 힘만 낭비해서 탈이야."
그래도 그는 싸우고 싶어했다. 사출기로 쏘아올린 전투기처럼 돌진하여 다이빙
태클로 내 무릎을 노렸다. 나는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그의 목을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가 발에 힘을 주고 힘차게 땅을 긁으면서 두 손으로 내 급소를 공격했다. 나는 그의 몸을 빙글 돌리며 더 높이 들어올렸다.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오른쪽 골반을 그에게 밀어붙이며 잠시나마 무게 균형을 유지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뒤엉킨 채 길바닥을 긁어대고 헐떡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우리 모습은 마치 기괴한 두 마리 짐승 같았다. - P122

가이거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사라졌던 중국 태피스트리 두 점을 엑스자 모양으로 겹쳐 피투성이 중국풍 상의를 가려놓았다. 엑스자밑에는 검은색 파자마를 입은 두 다리가 가지런히 놓인 채 뻣뻣하게굳어 있었다. 두 발에는 두툼한 펠트 밑창이 달린 중국식 슬리퍼를 신겼다. 엑스자 위로는 두 팔을 올려 손목을 교차시킨 후 손바닥이 아래로 가도록 두 손을 어깨에 걸쳐두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입은 다물었는데 찰리 채 콧수염이 가짜 수염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두 눈을 감겼지만 완전히 감기지는 않은 상태였다. 유리 의안이 불빛을받아 희미하게 반짝거리며 나에게 윙크를 던지는 듯했다.
나는 시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보나마나얼음처럼 차갑고 널빤지처럼 뻣뻣하겠지. - P125

이튿날 아침, 달걀과 베이컨을 먹으며 조간신문 세 부를 모두 읽어보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는 여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실에 접근했다. 화성과 토성 사이의 거리랄까. 셋 중 어떤 신문도 ‘리도잔교 자동차 자살 사건‘의 운전자 오웬 테일러를 ‘로럴 캐니언 이국풍방갈로 살인사건‘에 결부시키지 않았다. 어떤 신문도 스턴우드 가족이나 버니 올즈나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웬 테일러는 ‘어느 부잣집 운전사‘였다. 할리우드 경찰서의 크론재거 반장이 관할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두 건을 해결한 공로를 독차지했는데, 두 사건의 발단은 가이거라는 사람이 할리우드 대로에 위치한 서점 뒷방에서 통신사업을 하다가 수익금을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로디가 가이거를 사살했고 그 보복으로 캐럴 런드그런이 브로디를 사살했다. 경찰이 캐럴 런드그런을 구금했다. 런드그런은 범행을 자백했다. - P144

그것으로 용건이 끝났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웃 커피숍 냄새가 검댕과 함께 날아들었지만 시장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실에 둔 술병을 꺼내 한 잔 마시며 자긍심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 P154

이제 나만 남았다. 나는 살인 사건을 덮어두고 스물네 시간 동안 증거물을 은닉했지만 체포되지 않았고 머지않아 오백 달러짜리 수표지 받게 되었다. 이럴 때는 그저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고 이 모든 난장판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제일 현명한 행동이련만 뜬금없이 에디 마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때 라스올린다스에 들를 테니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현명한 놈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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