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들을 중심으로 작가가 들려주는 젊은시절의 나날들을 읽고 있자니, 그와 가까워진듯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그런데 문장 하나하나가 왜 이리 사무치는지...
나이가 더 들어 읽어서 더 좋은가보다.
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지금에서야 알게 된 감정들을 어떻게 작가는 그 젊은 나이에 다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싶어서 마음이 아려온다.
그래서 이 작가는 나에게 끝없이 작품으로 말을 걸수 있는 거겠지.

암튼 나와 코드가 잘 맞는다니까......!^^

할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나는 하루종일 뒹굴뒹굴 책이나 읽으면서 보내는 일이 많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책을읽다보면 하루가 저물었다. 아무리 책을 천천히 읽어도 언제나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느릿느릿 책을 읽었는데도, 그렇게 많은책을 읽었는데도 창 밖을 보면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으니 그게너무나 신기했다. 그 당시에도 신기했고 지금도 신기하기만 하다. 흐르지 않는다면 세월이 흐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으로하루종일 시간을 두고 책을 읽기만 했었다.
- P80


 ‘君不見‘  이라는 그 세 마디는 결국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사실이 보이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아이처럼 두 주먹 불끈 쥐고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얘기였지만,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君不見‘  세 마디로 시작한 장진주는 ‘만고수‘ 세 마디로 끝난다. 한꺼번에 3백 잔의 술을 마시고 이백이 잊고자 한 ‘만고의 시름‘은 누구도 하늘이 낸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지 않는다는점이었다. ‘君不見 ‘君不見‘  아무리 소리쳐도 그 사실은 변하지않는다. 한꺼번에 3백 잔을 들이켤 재주가 없어 동해안까지 가야만 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결국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일은 바로그 일이 아닐까 한다. - P85

그 며칠 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사촌형에게서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죽었다는 얘기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나보다 훨씬더 건강했던 아이였는데…… 육군병원 뒤쪽영안실 마당으로는 비스듬한 아침 햇살이 군데군데 꽂혀 있었다.
더없이 적막한 곳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둘이서만 빈소를지키던 사촌형 부부는 내가 들어가자 나를 부둥켜안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제히 들리는 매미소리보다 훨씬 더 큰 울음소리였다. - P89

우리가 잊고자 애쓰는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도 아직 잊지 못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 속에 쌓아두면서 왜 그때는 그렇게 가혹하게 소리쳐야만 했을까? 그러고 보면 결국 이시바시 히데노가 남긴 많은 하이쿠 중, 이 시가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도 가혹한 일이다. 여섯 살짜리 무남독녀 그 딸아이에게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이 시가 쓰라렸을 텐데. - P91

귀를 울릴 듯 매미소리가 들리다가 일제히 울음을 그치는 그 순간, 앞으로 찾아올 그 모든 슬픔의 시간이 단단하게 압축된, 빈
공간이 찾아온다. 겪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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