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를 그 전해에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낯선 사람 같았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내 세상의 많은 부분과 무관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두려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명-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 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오빠와 언니가 어땠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던 당혹감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족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 뒤로 나는 더더욱 두려워졌다. - P194
지금의 내 남편은 시카고 교외에서 자랐다. 그도 극심한 가난속에서 자랐다. 이따금 집안에서도 코트를 입어야 할 정도로 집이 무척 추웠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엄마는미쳐 있었어." 남편이 내게 말한다. "엄마는 우리 중 누구도 사랑했던 것 같지 않아. 엄마한텐 그게 불가능했을 거야." 그는 학년때 친구의 첼로를 쳤고, 그뒤로 첼로에 뛰어난 지능을 보였다. 내 남편은 어른이 된 뒤로 줄곧 전문 첼로 연주자로 활동해왔고지금은 이 도시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그의 옷은큼지막하고 호탕하다. 그는 내가 만드는 음식은 뭐든 좋아한다. - P201
엄마는 그날 병원에서 내가 오빠나 언니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 ・・・・・・ 원하는걸 이뤘잖아." 그 말은 아마 내가 이미 냉혹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말은 아마 진심이었겠지만, 엄마가 진짜 무슨 뜻으로한 말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 P205
블루밍데일이 우리에게 집과 같은 이유는 이것이다. 아이들이자란 집을 떠나온 뒤로 나는 아파트를 옮길 때마다 아이들이 와서 지낼 별도의 침실을 꼭 꾸며두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딸들은 내 집에 와서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캐시 나이슬리도 나처럼 했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절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다른 여자들의 경우를 봐도, 아이들이 그들의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절대 비난하지 않고 내 아이들도 비난하지 않지만, 가슴 미어진다. - P210
어느 늦은 여름날, 내가 아이들 아빠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출근한 뒤였고, 나는 늘 제 아빠 곁에 머물렀던 베카를 보러 갔다. 그가 우리의 딸들을 병원으로 데려온, 그리고 자기 자식이 없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나는 모퉁이 가게에갔다가 이른 아침이었다 계산대 위쪽의 작은 텔레비전으로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들이받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얼른 아파트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켰고, 베카는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내가 사온 것을 내려놓으려고 부엌으로 갔을 때 베카가 "엄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번째 비행기가 두번째빌딩을 들이받고 있었고, 베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달려갔을 때 아이는 완전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 P214
나는 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생각 한다. 그 아이의 유년기가 끝난 건그때였다고. 죽은 사람들, 연기, 이 도시와 이 나라에 가득 퍼진공포, 그 이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참혹한 사건들. 하지만 나는그날에 대해 떠올릴때내 딸만 생각한다. 그전에도, 그후에도그 아이가 그런 목소리로 외친 것은 들은 적이 없다. 엄마. - P215
요즘 나는 가을에 우리의 작은 집을 둘러싼농장에서 해가 지던 장면을 이따금 떠올린다. 어디를 봐도 지평선이 보여, 내가한 바퀴 빙 돌면 지평선도한 바퀴 원을 그렸다. 해는 등뒤에서지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그 아름다운 변신을 멈출 수 없다는듯 은은한 분홍빛을 자아내다 슬며시 푸른 기운을 띤다. 이윽고지는 해에 가장 가까운 땅이 한 줄 오렌지색 선을 그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어두워지다 거의 컴컴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면 땅은 여전히 부드러운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내며 몇 그루 나무와흙을 갈아엎고 간작 식물을 심은 고요한 들판을 보여주고, 하늘은 머뭇거리다, 머뭇거리다 마침내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도 조용히 지켜볼 것만 같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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