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 형사실은 일층 복도 맨 끝이었다. 담당 형사는 피부색이 검고 어깨가 다부졌다. 목이 굵고 주먹이 컸다. 강력계 형사라면 무술솜씨도 대단할 것이었다. 그에게 잡히던 순간의 철호의 모습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_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일로 뵙게 되어서 유감입니다만, 경찰관의 직무를 이해해주십시오. 나는 형사와 마주앉았다. 내키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아도 좋다고 형사는 나에게 일러주었다. 나의 진술은 철호의 범죄 사건기록에 첨부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의 배경과 범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서 형사정책연구원에 제출된다고 형사는 말했다. -<손> 중에서 - P51
나는 사내에게 목례를 보냈다. 사내의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크고 흐린 눈이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서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내 눈도 겁에 질려 있을 것이었다. 나는 얼굴의 화장이들뜨는 느낌이었다. 사내는 철호가 강간한 여자아이의 아버지였다. 그 사내도 나처럼 참고인으로 불려온 참이었다. 나는 두시까지, 그리고 그 사내는 세시까지 출두해서 강간범의 어머니와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마주치지 않도록 형사는 시간을배려했는데, 내가 화장을 고치느라고 늦고, 그 사내는 조금 일찍도착해서 결국은 형사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 P53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철호가 구속돼 재판을 받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고, 편지도 쓰지 않았다. 철호의 생애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나는 그럴 방법이 없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러서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이사올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철호와 살았던 시간과 공간이 이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P62
겨울에 큰 개 한 마리가 수월천 얼음 위를 건너다가 얼음이떠내려갔다. 개는 땅에 닿지 못했다. 개는 저녁 불빛이 돋아나는 마을을 향해 울부짖으면서 바다 쪽으로 떠내려갔다. 나는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얼음조각에 실려서 떠내려가는개를 보았다. 하늘에는 초저녁 반달이 떠 있었다. 개의 비명은물과 달 사이에 가득찼는데,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개는 천지간에 홀로 울부짖었다. - P68
강물에 떨어진 연옥이의 몸이 하구쪽으로 떠내려가는 환영이 물 위에서 보였다. 환영 속에서 연옥이의 긴 머리카락이 물결에 너울거렸다. 나는 연옥이가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살아서 물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내망상 속에서 철호의 정자도 죽지 않고 연옥이의 몸에 들러붙어서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다. 남쪽 항구도시에서 살 때 수월천의 얼음조각에 실려서 바다로 떠내려가던 개의 비명소리가 대교 밑의 물길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때 수월천에 달이 비치었고, 물과 달 사이에는개의 비명소리뿐이었다. - P79
목수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하나? 이름을 물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연옥이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는 당신의 말이 맞다고 말해줄까. 아마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목수는 아직도 그 하얀 개를 데리고 있을까. -<손> 중에서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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