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천向의 십삼 킬로미터 유로는 동해에 닿기까지 다섯번을 굽이쳤고, 그 하구에 자리한 어촌마을 이름은 향일포였다. 향일천은 물이 차가워서 언저리가 서늘했고, 흐름이 빨라서 초겨울에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들은 아가미를 왈칵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산맥의 가파른 사면을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를 스치고 굽이치는 자리마다 우뚝한 직벽이 들어섰다. - P12
터미널에서 향일포까지는 해안도로로 팔 킬로미터였다. 마을버스가 다녔지만 이춘개는 그 팔 킬로미터를 걸었다. 버스에서 혹시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마주치게 될 일이난감했다. 이춘개의 기억 속에서 향일포는 오래된 그림처럼 얼룩으로 바래있었고 그 향일포를 다시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 P15
이춘개는 아침 아홉시에 북부 제3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간첩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십사 년을 선고받고 십삼 년을 복역한뒤 삼일절 특사로 잔여 형기 십 개월이 사면되었다. 만기 출소나별 차이 없었다. 두 주일 전 교도소 총무과장한테 불려가서 사면출소 통고를 받았을 때 향일포의 어촌마을과 바다가 천장 벽지의 쥐 오줌 자국처럼 흐리게 떠올랐다. 거기서의 밥과 거기서의인연이 결국은 십삼 년 동안의 징역살이로 이어진 것이었다. - P16
십삼 년 만에 보는 새똥섬은 이춘개의 눈 속으로 뛰어들어올듯이 확실했다. 여기가 거기로구나, 여기가 바로 새똥섬이 있는향일포로구나. 새똥섬을 바라보면서, 이춘개는 마을로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향일포와의 연고는 십삼 년의 복역 중에 모두증발해버린 것이어서 새똥섬의 확실성은 오히려 환각 같았다. - P19
방향은 미리 정해놓지 않았으나 저절로 정해졌다. 피란민 사태는 북쪽에서 밀려내려왔다. 이춘개는 남쪽으로 휩쓸렸다. 어래포구에서는 열자짜리 전마선에까지 피란민들이 매달렸다 전마선엔 엔진도 돛도 없고 노 한 쌍만 달려 있었다. 이춘개는어래호에 가족과 피란민들을 태우고 포구를 떠났다. 피란민들은 이춘개가 골라서 태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배가 시동을 걸고후진으로 출발할 때, 뱃전을 잡으려던 피란민 몇 명이 물에 떨어졌다. 이춘개는 물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널빤지를 던져주고 배를 돌렸다. - P27
이춘개가 조업중에 군사분계선 북쪽 어래진 포구로 흘러들어가 체포되기 전날은 오후에 안개가 끼었고 저녁에 안개가 걷히면서 보름달이 떴다. 겨울 바다에 안개가 끼는 것은 찬물과 더운물이 원양에서 부딪치기 때문이며, 이때 깊이 내려갔던 명태가수면 쪽으로 올라온다고 늙은 어부들은 말했다. 이춘개는 어렸을 때부터 명태와 더불어 살았다. 명태를 잡는 일은 논농사나 밭농사와 같았다. 포구마을과 사람들의 생애는 명태 냄새에 절여졌다. 아이들은 명태를 먹으면서 자랐고 명태를 팔아서 학교에다녔다. 마을의 개들과 갈매기들은 명태 대가리와 내장을 먹어서 발육이 좋았다. 겨우내 명태는 조류처럼 몰려왔다. 어부들은명태잡이를 나갈 때 ‘명태 건지러 간다‘고 말했다. - P30
어래호에서는 어구 취사도구 항해장비 이외의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래호 나포는 정보 가치가 낮은 사건으로 분류되었다. 이춘개 일행은 억류 육 개월 만에 송환되었다. 선원들은공해상에서 남북 경비정 간에 인계되었다. 배는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송환되던 날이춘개 일행은 향일포선착장에서 합동조사단에 인계되어 도청 소재지 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뿐 아니라 여러 정보기관의 수사관들이 번갈아서 심문했다. 수사관들은 월경경위와 해성 조건, 선박상태, 그리고 북쪽에서 무슨 내용을 조사받았고 거기에 뭐라고 진술했는지를 반복해서 물었다. - P36
공작원들은 어래진에서 출발했다. 공작원들은 이춘개가 어래진에서 심문받을 때 그린 향일포 해안의 약도를 들여다보면서새똥섬과 바위들의 위치를 숙지했다고 심문 과정에서 진술했다. 공작원들의 소지품에서 비닐 코팅한 약도의 사본이 나왔다. 수사관들이 약도를 들고 향일포에 와서 현장과 대조했다. 모든시설물들이 약도와 같았고, 새똥섬과 그 주변 바위들의 위치도틀리지 않았다. 이춘개는 송환 후 남쪽에서 조사받을 때, 북쪽에서 약도를 그린 사실을 진술하지 않았다. 수사관들이 약도를 그렸나? 라고 묻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 똑같은 어촌마을의 생김새를 그려 냈다고 여겼다. 수사기관은 이춘개가 지령을 받고 내려와서 공작원의 상륙을 인도한 것이라고 혐의를 설정했다. 이춘개는 체포된 지 한참 후에야 자신에게 다가오는 혐의를 감지할 수 있었다. 혐의는 굳어져갔고, 마련된 결론을 향해 심문은 진행되었다. - P40
흰겨울 산맥이 뼈를 드러내며 이춘개의 화폭 위쪽으로 흘러갔다. 아침 바다는 빛과 어둠이 섞여서 출렁거렸다. 빛 한 가닥이 향일천 물줄기를 거슬러서 상류로 올라가며 고래 그림이 새겨진 바위쪽을 향했다. 화폭에 보이지 않지만, 바위 속의 고래들이 깨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이춘개의 화폭 가장자리에서, 작살을 쥔사내가 고래 등 위에 올라서서 일출의 바다로 나아갔다. 작살은사내의 키보다 크게, 길게 그려져 있었다. 고래떼의 항적이 빛의 궤적을 그리며 길게 이어졌고, 마을이 시간 위로 말갛게 떠오르고 있었다. - P45
이춘개가 죽은 해 겨울에 명태가 많이 잡혔다. 명태는 물결처럼 밀려내려왔다. 먼바다에서 고래들이 솟구치며 연안으로 다가왔다. -<명태와 고래> 중에서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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