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십 년 만에 연락을 해왔다는 이유로 정은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때 혜수는 정확히 같은 이유로 지갑을 연 것이었다. 정은은 그런 혜수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건 혜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금 서비스를 받아서 빌려줬다니 제정신이야? 너야말로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정은은 혜수와 오래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보다 서로자주 만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중고 시절 이미평생의 우정을 모두 나누었기 때문이라고도 그 시절에 서로의 아주 깊은 데까지 보았기 때문에 이후로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런 나약한 말들> - P136
"그 부장이라는 사람도 그래. 당연히 회사 비품인 줄 알았겠지. 그 돈이 충분하냐고? 너무 과하게 준 거 같은데. 사진들 좀 없어진게 대수야? 부장도 알고 있어? 그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네가 스토킹하던 사람이라는 거." "뭐? 스토킹?" "일방적이었잖아. 너 혼자 좋아한 거고." "뭐? 나랑 선생님은 진짜 친했어. 너도 잘 알잖아." "애들은 다 수군거렸어. 정은이 걘 아직도 선생님 쫓아다니냐고, 중딩도 아니고 왜그러냐고, 친구없어서 선생님이 챙겨주던시절은 그만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고. 난 차라리 잘됐다 싶어. 그사진들이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 의미도 없지. 너 혼자 과도하게부여한 의미밖에 없지. 그건 진작에 버렸어야했어. 네 손으로 직접 삭제했어야 했다고. 끝을 냈어야 했어. 근데 이젠 그럴 수도 없으니 영영 청승 떨겠지." <그런 나약한 말들> - P138
정은은 더는 화를 참지 못했다. 정은의 말에 벙찐 표정을 짓던혜수가 "맞아, 난 널 잘 모르지" 하고 시인했을 때, 정은은 혜수가그렇지 않다고 자신에게 맞서 소리쳐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았다. 난 너를 알아, 내가 왜 몰라?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 라고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혜수는 자신을 잘 모른다고 말했고 정은은 마치 이세상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사실을 처음 깨달은 사람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 나약한 말들> - P143
승호가 애써주었지만 이번에도 잘해볼 수가 없었다. 나는 신청일 기준으로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버려 더는 만 삼십오 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담당자를 붙들고 공고일 기준이 아니었느냐고 거의울다시피 물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여튼 쉬운게 없었다. 그래도 식당은 계획대로 열기로 했다. <마음에 없는 소리> - P163
내가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아빠는 "남들 하는 것 좀 봐봐라. 사람이어떻게 저 좋은 것만 하고 살겠노?"라고 했다. 그런 게 삶인가? 모욕을 견디는 것......그렇다면 나는 이제야 겨우 살아가는 흉내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 <마음에 없는 소리>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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