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더께가 앉아 책장이 누렇게 변해 버린 그 희랍극선은 내게 오만(傲慢)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神)이 부여한 운명을 거역하고자 하는 인간의 ‘오만(휘브리스)은 큰 죄로 여겨져 엄벌에 처해졌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운명을 거스르고자 시도하고 또 시도하였으며 그 결과 비극(劇)이 탄생하였다는 것을 비극은우매한 인간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이지만 그 통렬함을 통해 인간은 성장해 왔다는 것을. - P172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만이 잘못을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는 ‘자만이다." 얼마 전 로버트케네디 평전 라스트 캠페인』을 읽었을 때, 나는 로버트케네디가 아꼈다는 소포클레스의 이말에 밑줄을 그었다.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인간의 오만을 경고한 소포클레스가 할 법한 말이라 생각하면서. - P177

명료한 지식의 습득만이 아니라, 그런 식의 감지(感知)를 통한 자연스러운 깨침이 대학이라는 공간의 파장 안에있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특권 중 하나였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날 선생님은 어쩌면 그렇게 초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있었을까? 그도 우리 못지않게 지루했을 텐데, 배우자와자식이 있는 직장인이 황금 같은 휴일을 업무를 위해 헌납하는 일이 보통 열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 P180

별빛을 따라 무작정 걸어 아기 예수가 탄생한 구유로인도된 동방박사처럼, 나 역시 코레조의 빛에 이끌려 무작정 책장을 넘기다 진리를 빛으로 여기는 대학이라는 ‘마구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마구간에서 뻗어 나온 길은 결코 곧고 평탄하지 않았다. 장애물과 막다른 골목, 시행착오투성이였다.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재미도 보람도 그래서 생겼다. - P197

나를 울게 두어라! 밤에 에워싸여
끝없는 사막에서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는데,
돈 셈하며 고요히 아르메니아인 깨어 있다.
그러나 나, 그 곁에서 먼먼 길을 헤아리네나를 줄라이카로부터 갈라놓는 길, 되풀이하네
길을 늘이는 미운 굽이굽이들.
나를 울게 두어라! 우는 건 수치가 아니다.
우는 남자들은 선한 사람.
아킬레스도 그의 브리세이스 때문에 울었다!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무적의 대군을 두고도 울었고,
스스로 죽인 사랑하는 젊은이를 두고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울었다.
나를 울게 두어라!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
벌써 푸르러지누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전영애 옮김, <서 · 동시집>(도서출판 길)에서 - P228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독일 명작의 이해‘를 통해 인간은 지향하는 바가 있는 한 방황한다고 배웠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교양인‘의 자세라는 것도 함께 배웠다.
- P229

실망하게 될지라도,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를현실에서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앎은 그런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다. 실재하는 금각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나는 금각 꼭대기의 봉황이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봉황이 서쪽을 꿈꾸는것은 금각을 지은 이가 죽은 후 아미타불이 다스리는 서방정토의 세계에 도달하기를 염원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해보는데, 이는 ‘일본미술사‘ 수업을 들은 덕이다. 그 수업 시간에 뵤도인(平等院)을 비롯,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극락정토를 형상화해 지은 건축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후대의인간이 명명한 한 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그 전 시대의 유행이 무 자르듯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역사라는것은 산술적인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인간의 마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때 사학도였던 영향이 클 것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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