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차례야, 어서와." 내가 시디 케이스를 열지 못하고 있으니까옆에 서 있던 언니가 "내가 가져다줄게" 하고시디를 가지고 갔어. "아이고, 이건 내가 가지고 가지." 그 옆에 있던 아저씨가 한숨인지 놀라움인지모를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 선물을 가지고 갔어. "어!" 오빠와 난 그렇게 마주 섰어. 우리 사이에 어느누구도. 그 어떤 것도 없이, 그렇게 마주하게 된거야. 열심히 사인을 하는 오빠의 모습이 꿈을 꾸는 듯, 영화를 보는 듯 그랬어. 고개를 들고 내게 사인한 시디 재킷을 건네면서 웃어주는 오빠에게 나는 불쑥 손을 내밀었어. 근데 그만 손이 부딪혀 재킷이 떨어져 버렸어. 앗!!! 악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디 재킷을 받는것도 잊어버린거야. 어쩜 좋아. 근데 고개를 든 오빠는 더욱더 환하게, 크게 웃고 있었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아줬어. 내 손을... - P42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경호원들이 나타나더니 눈이 부시게 하얀 슈트를 갖춰 입은 꺼거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사람 등뒤에서 빛이 난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 알았다.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그 뽀얗고 환한 후광이 실제로존재한다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꺼거가 입은 흰 슈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말 그대로 콩깍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꺄악!" - P50
수업이 끝나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무리에 섞여 밖으로 나왔다. 봄을 맞은 베이징의 하늘은 맑았고 봄바람이 따스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아이들을 밀쳐내며 신문과 잡지를 파는 가판대로 향했다. 그런데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난히 검은색이 많이 칠해진 신문의 헤드라인.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장국영‘ 세 글자가엄청난 크기로 클로즈업됐다.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장국영, 이 이름 하나로 그해 참 많은 사람이 울었다. - P65
주룽에서 홍콩섬으로 넘어오는 페리에서 저 멀리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이 보일 때면, 이제는 적응을할 만도 한데 여지없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곤 했다. 아무렇지 않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도 불쑥불쑥 예고 없이 호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나도모르게 흠칫 놀라게 된다. 하루는 큰맘 먹고 만다린오리엔탈호텔 피트니스센터가 있는 24층으로 올라갔다. 터질 것처럼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24층에 도착했지만, 차마엘리베이터 앞에서 두어발 이상을 내딛지 못하고그저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다 다시 내려왔다. 아직은..… 어쩔 수 없나 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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