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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모종혁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9월
평점 :
"양꼬치엔 칭따오." 배우 정상훈씨의 유행어다. 정작 예능에선 양꼬치엔 칭다오(靑島) 맥주보다 연태고량주가 어울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중국 국주로 불리는 '마오타이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일탈의 술이다. 신산(神算)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한 바둑 천재 택이 역 박보검이 중국 대국을 마치고 올 때면, 으레 동네 고등학교 친구 무리와 몰래 한 잔 하는 술이다. 여주인공 덕선은 호기롭게 원샷하고는 높은 도수에 자지러졌다. 이과두주와 공부가주는 익숙하다. 웬만한 중국집에선 맛볼 수 있다. 공부가주는 성현 공자 가문의 전통주라 하여 <논어>를 읽은 독자에겐 향취를 더한다.
속칭 바이주(白酒), 혹은 수수로 빚었다 하여 고량주(高粱酒)로 대중에게 유명한 중국술. 실은 대륙이 큰만큼 술도 다양하다. 대륙은 지역이 넓어 기후, 지대 조건이 다르고, 오십 여섯 민족이 살고 있다. 칭다오 맥주뿐 아니라 많은 주종과 고유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품종이 넘친다. 시선 이백과 루쉰처럼 대문호와 얽힌 일화. 제갈량, 조조, 유관장 삼국지 영웅들을 마케팅한 지역주. 황비홍, 엽문의 고향술 '주좡쐉정', 쓰촨·충칭, 중원, 강남, 소수민족 자치구와 실크로드처럼 지역 특색과 풍토에 따라 달라지는 제조법과 술맛. 현대에 이르러 마오쩌뚱을 비롯한 걸출한 지도자들과 국공내전 당시 대장정을 함꼐 한 역사주들이 가득하다. 동네 중국집에서 마시는 이과두주는 베이징 서민술로 명주 반열에 들지도 못한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모종혁 중국 전문 저널리스트가 발로 뛴 중국술과 중국 문화 탐방이다. 지역별로 술 특징, 제조법, 맛에 대한 묘사를 넘어, 지역과 술에 얽힌 역사, 인물전, 문화를 소개한다. 입심의 힘일까. 300여 페이지를 한 자리에서 읽었다. 이백은 천재적인 재기로 늦은 출사에도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치적 풍파로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술을 벗삼아 방랑했다.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실학을 집대성했듯, 시인의 안타까운 삶은 월하독작(月下獨酌)같은 명시를 남겼다. 특히 쓰촨성 주변엔 그의 발자취가 여러 곳에 남겨져 있다.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 촉남죽해는 원래가 죽통주 산지다. 소수민족주는 다채롭다. 장미주, 구기자주, 샹그릴라 '칭커주', 아이돌 차오루, 영화 <동방불패>로 유명한 묘족의 '미주'. 이야기는 끝이 없다.
중국은 지역구, 자치구별로 주류 산업 부흥에 힘쓴다. 앞서 다양한 일화나 인물, 문화를 브랜드화하여 치열한 매출 경쟁을 벌인다. 사회주의 정권 이후 국영 공장으로 통합되기도 했지만,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상품으로 인정받았고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도 민족 술문화는 훼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이주, 황주뿐만 아니다. 중국은 스페인 다음가는 세계 2위의 와인용 포도 재배산지로, 와인소비량은 다섯 번째 국가다. 보리 최대 경작국으로, 북방 중국인이 "노후는 칭다오에 정착해 사는 것이 소원이다."(p.425)라고 칭찬하는 청도의 천혜자연과 만나 '칭다오 맥주'를 생산한다.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지역을 침략할 당시 융성한 맥주 산업이지만, 미국 국제맥주대회, 각종 주류박람회, 주류엑스포에서 수상 실적을 만들었다. 역사의 상처와 천혜자원이 맥주로 거듭난 것이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요리보고 세계보고>,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 애청자였고, 이웃나라 중국 이야기는 특히 즐겨 보는 소재였다. 올밴 유승민이 갔던 윈난성 5부작은 여러 번 돌려 봤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심화편이다. 중국 고대사부터 중국의 현재까지 역사, 문화, 인물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입담에 취한다. 무엇보다 애주가라면 지나칠 수 없다. 술 이야기에 취한다.
중국이 시장 개방 이후로 경제가 활성화되자, 지역구 별로 고급주 전략을 내세워 주류 산업이 흥성하였다. 그러나 현재 국가주석 시진핑이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을 이끄는 바람에 꽌시나 접대문화에 쓰였던 고급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창 우리나라 이슈였던 김영란법이 떠오른다. 중국술은 이렇듯 역사와 문화, 사회 배경을 빼놓고는 다룰 수 없는 장대한 이야깃거리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 책이 두터우면서도 술술 넘어가는 이유다. 입심에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