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의 113 스피킹 해빗 - 영어회화에 날개를 달아주는 말하기 습관
이보영 지음 / 에듀박스(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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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며 그 장면을 영어로 묘사할 수 있는 훈련을 위한 책이다. 묘사에 필요한 주요 패턴을 학습하거나 즉각적으로 영어로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기에 적합하다. 3문장을 합쳐 한 번에 말할 수 있도록 정리한다면 1분 정도의 말하기는 물론 토익 리스닝 Part1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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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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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확인해보니 작년 4월에 한번 읽었던 책이다. 그때는 밑줄만 그어 놓아서 다시 한번 정리하는 차원에서 재독(再讀)을 하였다. 역시 <보다>를 재독할 때와 마찬가지로 책이라는 것이 읽을 때마다 그때의 내 상황과 생각과 기분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임을 느낀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문장들에 눈길이 갔다.

저자가 강연을 하거나 인터뷰를 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으며, 예전에 했던 것들에 대한 재탕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사느니 TED나 세바시, 힐링캠프를 검색하여 저자의 강연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을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는 것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리 아까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저자는 소설을 통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며 소설과 소통하다가 그것이 완성되면, 그때에는 소설과 독자들의 새로운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며, 작가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니 저자가 기획하고 있는 이 3부작의 산문은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특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내면을 지켜라', '예술가로 살아라', ' 엉뚱한 곳에 도착하라', '기억 없이 기억하라'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해라'체로 구성하였다. 아무래도 '말하다'라는 제목이다보니 저자가 하려 했던 말을 이런 투로 표현한 것 같다. 아무래도 강연과 인터뷰의 편집이다보니 각 부마다 제목에 꼭 맞는 내용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1부에서는 독서라는 탐침을 통하여 자기 내면을 지켜나가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근육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자기해방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2부에서는 유용성을 결여한 그 자체로의 예술을 추구할 필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소설가라는 예술가가 된 저자 자신의 예(서재, 할머니의 벌집)를 일부 소개한다. '나를 작가로 만든 것들'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제목은 4부에 있다.

1, 2부가 주로 독자나 청중에게 글을 읽고 쓰도록 권하는 이야기라면, 3, 4부는 소설과 문학이라는 조금 더 넓은 차원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2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감소되었는데, 중간중간에 끼워놓은 인터뷰에서는 저자가 썼던 소설들에 대한 Q&A가 있어,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에 대한 기억이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장점은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삶의 방식과 지향, 작가인 동시에 독자로서 문학(특히 소설)을 대하는 태도, 글쓰기와 독서의 의미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야만성을 향해 다가간 우리 사회의 퇴화, 압박면접이라는 사디스트적 행위 속에 감추어진 관계의 심리는 크게 공감이 갔다. 부모가 제시하는 조건부 혹은 유보적인 성취와 자신의 의지를 교환하지 않은 개인적 경험이나, 실패로 얼룩진 소설을 통하여 인생의 보험을 찾을 수 있다는 조언, 불필요한 관계에 휩싸이지 말고 그 시간에 내 취향과 영혼에 도움이 될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제안들은 청년이라고 보기엔 다소 나이가 든 내게도 유용한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근육, 자기해방의 글쓰기는 책을 읽고 난 후 공감이 간다고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도 계속 머리와 가슴에 새겨두어야겠다.


이렇게 읽다보니, 소설 속에 숨겨진 작가의 뜻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쓴 작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말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는 단순히 소설의 숨겨진 의미나 해석 차원의 도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와 그 소설과 독자와의 사적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확인하는 차원의 도움을 말한다. 이 소설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면서 읽을 수도 있고, 재미와 즐거움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도 소설을 소비할 수 있겠으나, 읽고 배우며 그것을 체화한다는 의미에서는 매개체가 아닌 완성품으로서의 소설과 그것을 제조한 장인으로서의 작가를 분리해서 보는 방식은 읽는다는 행위와 읽는 대상에 대한 보다 명정한 이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변화라면, 예전보다 사회가 가진 희망의 총량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이제는 희망을 품는 것은 고사하고 다들 자기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도 지키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문명보다는 야만을 향해 조금 더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 문명이라면 그 반대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 같다는 거죠. - 11쪽

예를 들면 그런 게 있더라고요, 압박면접이라고 하나요? 그 무슨 사디스트적인 행동인지 모르겠어요. 취업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거잖아요. 정확히 그건 나쁜 부모가 하는 행동이거든요. "너는 모자라다, 너는 왜 이렇게 부족해"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모욕을 주고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모습이 똑같아요. 그런데도 지원자는 웃어야 되잖아요.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자기는 모든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처신해야 하고요. 심지어 실수로라도 반항하지 않도록 강자의 논리로 자기를 설득하잖아요. ‘경쟁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이런 걸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고 받아들이는 거죠. 나쁜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아이와 비슷한 거죠. - 12, 13쪽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했지만 저는 분명하게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못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하나 낳아라, 그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 17, 18쪽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안하지만, 여러분 앞에는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나는 작가라 여러분에게 성공하는 법 같은 것은 가르쳐줄 수가 없다.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세계명작들을 보라. 성공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기껏 고생해서 커다란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상어들에게 다 뜯기고 뼈만 끌고 돌아온다.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와 <마담 보바리>의 보바리 부인은 자살하고 만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옛사랑을 얻기는커녕 엉뚱한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젊은 생을 마감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 20, 21쪽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 22, 23쪽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에요. - 38, 39쪽

인간만 존재하는 세상에선 인간의 본질을 생각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동물과 함께 있으니까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신화인데, 신화는 계속해서 동물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 47, 48쪽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파괴된 사람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 56, 57쪽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플로베르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연결한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앞에 쓴 문장에 이어 말이 되도록 다음 문장을 쓰는 것이죠. - 69, 70쪽

제가 미친듯이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예술가의 악마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악마는 여러분이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돼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예술가가 되는 것입니다. - 76쪽

그럼으로써 서재는 자아가 확장해가는 공간인데,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자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는 자기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욕망들을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 속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통해서 자아가 확장되는 거죠. 작은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거대해질 수 있는 확장성이 있습니다. - 80, 81쪽

아마도 칼 세이건의 말일 텐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었어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생애에 우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 저와 소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전 세계의 소설에 역사가 있잖아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소설들이 있고, 제가 쓰는 건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죠. 앞으로 남은 생애 안에 제가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밤하늘의 어떤 흔적도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 세계의 일부라는 것, 내가 그 작가들 중 한 명이라는 것, 그게 어떤 기쁨을 줄 때가 있어요. 내가 그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라는 사실이 말이에요. 소설의 세계는 너무 거대해서 저는 어떤 파문도 일으키지 못할 거에요. 그게 기쁠 때가 있어요. 광대무변한 이 우주와 나. - 89, 90쪽

계속 떠돌면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런 거에요. 낯선 곳에 엉뚱하게 던져진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자기도 잘 모르는 낯선 곳에 엉뚱하게 던져져서 여기가 어딘가를 어리둥절해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99쪽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에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해방감. - 136쪽

예전에 토니 모리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서가를 둘러보고 거기에 없는 책을 쓴다." 또 어떤 작가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쓴다고 말했죠. 다 비슷한 말입니다. 내가 읽고 싶거나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거지요. 저는 토니 모리슨의 말을 더 좋아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서가를 둘러본다는 거에요. 서가를 둘러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쓰인 책을 다 검토한다는 거죠. 작가에게 독서는 그런 의미에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읽어보고 중요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지요. 내가 정말 알고 싶었거나 답변을 듣고 싶었으나 지금껏 누구에게서 듣지 못했던 것이 있는가? 그것을 나는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런 문제들을 고민하기 위해서 작가는 늘 서가를 둘러보고 그 안에 넣고 싶은 책을 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작가로서 그런 야심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 139, 140쪽

독자와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오직 제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제가 창조한 세계에서 그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사건들을 함께 겪어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저는 나오는 거죠. 이제 그 공간에는 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소설과 독자 간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거기 제 자리는 없습니다. 이처럼 소통이란 게 상당히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 교과서에는 어떤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는 것 말이죠. 저는 제 인물들과 소통을 하고 나면, 퇴장을 하는 사람이에요. 독자는 작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죠. - 162, 163쪽

그러니 서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는 바람둥이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책을 만나거나, 혹은 과거에 읽었으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책을 다시 읽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는 혼자 즐거워합니다. 이런 즐거움은 가장 가까운 친구와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이 은밀한 기쁨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심지어 그 책을 쓴 작가와도 독서의 감상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작가 역시 그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한 사람의 독자와 마찬가지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수백 번을 더 읽은 독자라는 점에서 일반 독자보다는 작품에 대해 잘 기억하겠지만, 그 기억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가면서 다른 독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됩니다. - 179, 180쪽

한 권의 책과 그것을 읽은 경험은 독자 개인에게만 고유한 어떤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독서를 왜 할까요?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바로 그점 때문입니다. (...) 모든 것이 ‘털리는’ 시대. 그러나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 180,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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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29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니 모리슨의 말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저는 알라딘에 나오지 않는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이 알라딘 서재 활동 관련 장기계획입니다. 인용문을 보면서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붉은눈 2016-09-07 11:20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까지도 눈이 가고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는지라 책을 선별하는 능력은 많이 떨어집니다. 뻔한 독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cyrus님 서재를 더 많이 참고해야겠네요. ^^
 
침묵의 거리에서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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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장면을 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왕따가 된다는 건 저런 일을 당하는 것이다. 주변이 모두 재미난 구경거리처럼 바라본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고독 속에서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다. 만일 자신이 저 입장에 처한다면...
도모미는 더욱 우울해졌다. 중학생에게는 집과 학교가 세상 전부다. 그러니 너무나 쉽게 궁지에 몰리는 것이다. - 33쪽

부모는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 - 237, 238쪽

"그리고 배가 침몰할 때 가장 먼저 달아는 사람은 되지 말래."
"호오."
"텔레비전에서 타이타닉을 보고 한 소리지만."
"으하하."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겐타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한 적이 없다. 들은 말은 거의 거짓말하지 마라, 약속은 꼭 지켜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등 당연한 소리뿐이다. 정색하고 설교를 들은 적도 없다. 그래서 에이스케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 243쪽

중학생은 세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두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몸이 반응해 생각 없이 따라가는. - 288,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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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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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읽지 않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었다. 중학생들의 '왕따'라는 소재를 택한 면에서는 얼마 전 읽었던 <우아한 거짓말>과 유사한 면이 있었으나, <우아한 거짓말>이 학생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에 보다 많은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학교 내 남학생들의 힘의 권력관계나 중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구조적 측면에 대하여 더 많은 할애를 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라, 100퍼센터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소설의 흐름은 나구라 유이치라는 소년의 실족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변인들의 상황을 다면적인 관점에서 묘사함으로써 한 사건의 원인은 어느 한 편이 절대적인 잘못이나 기여를 한 것으로 단순화 할 수 없으며, 복합적인 관련성과 각자 나름의 관점이 있기 마련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왕따를 당한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싼 이들의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학생들 사이에서의 관점이다. (1) 오해를 받을지언정 끝까지 침묵을 지키려는 소년들, (2) 자신의 과오를 숨기려는 소년들, (3) 소년의 왕따를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에서의 관점이다. (1) 유가족과 가해 학생들, 그리고 그 외의 학생들의 입장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교장 이하 학교 교직원들, (2) 자기 자식은 절대 가해학생일리가 없다고 믿으며 끝까지 대응하는 학부모, (3) 하나뿐인 외아들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그래도 죽음에 이르게 된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유가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학교와 학생들을 둘러싼 지역 사회의 관점이다. (1) 학교폭력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사건에 매달리는 경찰과 경찰과 협력하여 진실을 파해치려는 검찰, (2) 작은 마을 내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입장 정리가 어려운 지역 사회, (3)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되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도록 보도하려는 언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점들을 보고 있노라면 각각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내가 이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가족의 절망과 가해자 가족의 결백이라는 대립 구조에서는, 진실을 알기 위해 과도한 요구를 하는 유가족의 입장도, 이를 우선적으로 수용하려는 학교측도, 이에 반대하여 가해학생이 아닌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학부모들도, 뚜렷한 증거 없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해자 가족의 입장도 잘 드러나 있다. 누구라도 이 중 어느 입장이라도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최선의 선택이고 최적의 태도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사망한 학생인 나구라 유이치를 순진하거나 선한 이미지로 묘사하여 흑백을 강렬히 대비한 것이 아니라, 힘 없고 나약하여 비굴한 면모를 보이는 한편 더 약한 자에게는 힘을 행사하거나, 남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집안의 부(富)를 과시하거나, 눈치 없이 비밀을 폭로하여 친구들이 곤경을 겪게하면서도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이 왕따를 당하면서도 딱히 힘들어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해 흑백을 여러차례 혼재시키고 있다. 비록 순간적으로나마 '저러니까 따 당하지', '저러면 맞을만 하지', '우리 때도 저랬지' 라며 폭력을 정당화 하며 책을 읽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내 안에 아직도 깃들어 있는 폭력과 그에 대한 정당성은 지금껏 관성적으로 대해왔던 이 사회에서의 왕따나 폭력에 대해 다른 시선도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결론부분에서는 딱히 놀랄만한 반전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반전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여백 속에 감추어져 있던 추가적인 사실들을 통하여 이 소년의 죽음에는 많은 원인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조망한다. 마치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과연 누구를 비난하며 누구를 옹호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덧1: 왜 작가는 제목에 '町'자를 썼을까. 그리고 번역자는 '밭두렁' 혹은 '경계'라는 뜻을 왜 '거리'로 번역했을까?


덧2: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 소설의 경우 일관되게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성(이치가와)을 어떤 때는 이름(겐타)을 쓰기 때문에 유사한 이름이 나오면 곧잘 헷갈리곤 한다. 게다가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데 아이까지 겹치면... 그래서 가끔 이런 식의 관계도를 그려보곤 하는데, 귀찮지만 읽으면서 그때그때 추가를 하고 읽다가 '이 사람이 누구지?'라는 의문이 들면 관계도를 보고 이해할 수 있어서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에는 도움이 된다. 이걸 그리다가 도저히 어려워서 중간에 포기한 책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었는데, 책 어디쯤에 아직 이런 쪽지가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라, 100퍼센터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7쪽(작가의 말)

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은 혼자 서는 과정에서 터지는 고름 같은 것이다. 다들 더는 어른들에게 울면서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끼리 생존 게임을 시작한다. - 70쪽

"어른 이라면 눈을 돌리고 안 보면 그만아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혼자라는 선택지가 없어.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 -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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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3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저도「대망」 읽을 때 관계도 그렸어요.. `마쓰다이라 타케치요`에서 `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이르기까지 1명당 평균 3번은 이름이 바뀌니...ㅜㅜ

붉은눈 2016-08-23 20:12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대망> 조금 읽다가 복잡해서 접어 두었는데 다시 펴볼 엄두는 안나고 시간만 가네요. 이번에 다시 도전할 때는 이런 방식을 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거서 2016-08-23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등장인물 관계도를 그리면서 봐야 하는 책이군요… 아이디어 하나 얻었습니다. ^^

붉은눈 2016-08-23 20:37   좋아요 1 | URL
저는 외국 이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읽다보면 누가 누구였는지 헷갈리더라구요. 그렇다고 대충 대상과 내용을 추측하며 읽고 싶지는 않아서 이렇게 한번 그려봤습니다.

오거서 2016-08-23 20:41   좋아요 1 | URL
저도 외국이름 난맥이 심합니다. 앞으로는 붉은눈 님의 아이디어를 빌어 저도 대충 읽지 않고 관계도를 그리면서 제대로 읽어볼 수 있겠습니다. ^^

가오리 2016-08-24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추리소설 좋아하는데..처음엔 단순히 이름 기억을 위해(부부이 성이 같으니 정말 헷갈렸어요.이건 번역가들이 조금 신경써주셨으면 좋겠던데...) 그린 관계도가 나중엔 정말 관계를 알고 흐름을 알수있는 맵이 되더라고요.
모방범다시 도전해보세요 이정도의 열정이라면!!

붉은눈 2016-08-24 21:21   좋아요 0 | URL
아, 이미 이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맞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부부는 물론 아이의 성까지도 같은데다가, 단순히 공식적인 관계에서만 성을 쓰면서 ~씨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윗사람이 아랫사람 대할 때나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 혹은 거리를 두고자 할 때는 성을 쓰고, 친한 친구들이나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끼리는 이름을 부르니 인물이 많아지면서 혼란이 거듭되더라구요. 막상 이 책을 읽고 모방범을 떠올리기는 했는데, 그 두꺼운 책 3권을 이렇게 다시 읽으려니 엄두가 안나긴 하네요. ^^
 
인생 독해 -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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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저자의 책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를 읽은 후, 나와는 안맞는 것 같아서 앞으로 그의 책은 다시 읽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옆에 놓인 <인생 독해>라는 제목을 보고는 매우 신기한 생각이 들어 책장에서 책을 뽑았다. 경험상 '인생' 운운하는 제목이 달린 책치고 제대로 된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영문 독해'가 아닌 '인생 독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이번에는 또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가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첫 장을 펴니 책 날개에 적힌 자기소개가 이렇다.


"앵무새처럼 배운 대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거부하며 유아독존으로 버티던 시절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책이었으며, 지금까지도 유일한 취미는 책읽기다. 삶이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에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잠수를 탄다. 주입식 독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대로 읽고 이해하고 현실에 접목하고 응용하는 실전형 책읽기를 추구한다. (...) 길들여지지 않은 자의 시선으로 책을 읽고, 그 내용과 인물들을 흡수함으로써 삶에 대한 통찰과 다양한 전략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학습한다." (이하 ""는 모두 이 책에서 인용한 부분임)

이런 자기소개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그의 이전 책에서 나는 단 한 페이지도 20대들에게 '책을 읽어라'라고 조언했던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독하게 살아남기 위하여 어떻게 정신적인 무장을 하고 어떻게 질러버려야 할 것인가를 설파했을 뿐이다. 그런데 원래 책읽기가 자기의 취미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는 것을 추구한단다. 내가 얼마전 읽은 저자의 책이 2008년 출간된 것이었고, 이 책이 2015년 출간되었으니, 7년 사이에 무슨 큰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의 삶의 궤적을 잘 추적하지 못한 과문함 때문에 그를 잘 모르는 것일까. 어쨌든 이 책을 보니 유수연은 어느덧 이지성이 되어 돌아온 것 같다.

"만약 당신이 혁신과 창업을 꿈꾸고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길 꿈꾸고 있다면
지금 당장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영어 공부나 자격증 취득이 아니라,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다."

어조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전 책에서 웰빙에 물든 20대를 나무라던 그는 매우 놀랍게도 "이제는 우리도 이 느림의 미학과 우회의 원리를 깊이 배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본문에서는 '사토리 세대'를 언급하며, "사토리 세대는 최소한 그들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현대판 이방인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기성의 가치관이나 무의미한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세대이다"라며 긍정적인 시선까지 보낸다. 이에 대한 변(辨)은 프롤로그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읽어봐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깨달음(?)이 그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노력'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버린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책이 사람들에게 자기계발과 성공을 강요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커졌다. 나의 글과 그 안에 담긴 독설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초라한 과거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전진하라는 채찍질어었다. 그런데 그 독설이 나를 넘어 다수를 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어느새 왜 그러한 독설의 언어로 살아왔는가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이 시대의 성공 원리만을 설파하는 상징이 된 것 같다. (...) 나도 다시 태어나 지금의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면 자신이 없다. 그런데 누구에게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너의 노력 끝에는 반드시 달콤한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본문에도 유사한 표현이 있다. 도대체 저자는 얼마나 살벌한 세상을 살아왔기에 여전히 이 세상은 정글이며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곳임을 설파하고 있는 것일까.

"이 정글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헛된 희망의 지푸라기를 붙잡고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더욱 헤어날 수 없는 늪이 될 뿐이다. 누군가는 긍정의 힘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노래하지만, 나는 절망보다 긍정이나 희망이 주는 배신이 더 싫다."

어쨌든 그동안 줄곧 혹독한 노력을 예찬하던 저자의 이러한 극단적인 태도의 변화는 매우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 변화가 일관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 곳곳에서 여전히 예전 자신의 말에 대한 방어기재가 뒤섞여 있는 것을 보는데, "여전히 나는 '노력하라'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희망을 가지라'라는 말은 할 수 없다"라거나 "내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희망이 너무 허황돼 보이기 때문이다. 열에 아홉은 지금의 자신과는 너무나 먼 희망을 말한다. (...) 그들의 희망은 차라리 '욕심'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앞에서는 사회 구조적으로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 감히 노력하면 성공하리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바로 뒷장에서는 노력하라고는 해도 희망을 가지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구조적 문제가 아닌 바로 사람들의 희망은 희망이 아닌 욕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왜 다른 이들의 욕망은 이렇게 허황되고 과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일까?

여섯 페이지 분량의 프롤로그만 읽어도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대로 책을 덮었어야 했는데, 이왕 책을 읽기 시작한 거 자기변명을 늘어놓은 프롤로그가 아닌 고전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2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 1에는 '인생,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제목 하에 <데미안>, <이방인>, <크리스마스 캐럴>, <페스트>, <어린왕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파트 2에서는 <콧수염 아저씨의 똥방귀 먹는 기계>, <배꼽>, <사자와 곰과 여우 이야기>, <인생론>, <전쟁론>,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 <경쟁우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각 파트에 기형도와 이상의 시를 한편씩 넣어주는 섬세한 편집도 잊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는 파트 1에서는 인문학도로 파트 2에서는 경영학도로 변신한다. 파트 2는 고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소비문화, 차별화 마케팅, 소비 욕망, 컨버전스, 그리고 너무 많은 이들이 언급해버린 스티브잡스의 인문정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 


파트 1만 보면, 그가 선정해놓은 것은 독자들이 너무나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고전들 뿐인데, 이런 고전들을 도대체 어떤 다른 시선으로 읽어냈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각 고전에 대한 서술 형식은 이러하다. (1) 고전을 읽게 된 배경이나 자신의 옛 경험을 간략히 언급한다, (2) 고전의 줄거리를 요약한다, (3) 중간중간에 인상 깊었던 대목을 삽입하거나 이 고전을 해설한 다른 저자의 글을 인용한다, (4) 이야기에 자신의 관점을 연결시키며 끝을 맺는다. 그런데 막상 그가 그렇게 강조한 자기만의 방식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결국 저자의 목소리가 들어간 부분은 (1)과 (4)뿐인데, (1)은 책을 보는 관점이 아니라 책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이므로 특별한 것이 없다. 따라서 독자들은 (4)에서 펼쳐지는 서술을 통하여 저자의 차별된 시선을 읽어내야 한다. 


그가 그나마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 <데미안>과 <어린왕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데미안>을 시작할 때 그가 독설을 하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혼돈의 시간 속에 홀로 버려진 아이가 아무도 주지 않는 답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인문학의 힘이나 고전의 위대함 같은 거창함 이전에 나의 초라한 책읽기에는 '절실함'이 있었다. (...) 그렇게 돌아온 탕자는 모순 덩어리인 이 사회에 가장 최적화된 인물로 스스로를 무장했다. '이상한 나라'의 모든 요구를 불만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렇기에 탕자의 언어는 고울 수가 없었다. 나의 독설은 그렇게 나의 본질적인 시작과 맞물려 있다."


어린 저자가 그렇게 절실하게 책을 읽고 이 이상한 사회의 요구에 맞춤형 인간이 되도록 스스로를 무장했다는 것도 의아하지만, 그렇다고 내심까지 변한 것은 아니어서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곱기만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인가. 자신이 독설을 하게 된 연유가 이것이라고 하기에는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성격'이라고 하면 안되었을까?


"나에게 주어진 불평등, 불행, 모순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플 때에는 피하지 말고 한번 독하게 앓고 나와야 한다. 어설프고 잔인한 희망에 의존하지 말고 차라리 절망 속에서 몸부림쳐보는 것이 더 확실한 길이다. 그 몸부림 끝에 자신을 완전히 붕괴시킨 후 다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살아남는 방법을 몸으로 터득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정제되어 살아남은 진정한 '나'가 전면에 나서야만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수 있다."


저자가 성인으로 성장하여 사회에 나오게 된 배경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독자들도 정말 이런 살벌한 과정을 통해서 자기 인식을 해야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왜 자신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닌건가? 


한편 <어린왕자>는 저자의 속을 '긁어 놓은' 나쁜 고전으로 등장하는데, 어린왕자가 장미에 대한 자신의 집착은 장미에게 물도 주고 그것을 잘 자라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별을 재산으로 여기고 계속 별을 세는 사업가에게서는 별에 도움이 되는 어떠한 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 저자는 매몰찬 비난을 퍼붓는다. 


"어른인 나는 반성하기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듯한 이 대화에 반감이 생긴다. 오히려 어린 왕자가 '별을 세는 게 왜 중요해요?'라고 묻는 순간,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했던 인생의 별이 갑자기 무의미한 것으로 추락하는 취급을 당해 영 못마땅했다. 그 사업가는 숫자를 세는 것이 자긴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범죄가 아닌 이상 누구든 자신이 옳다고 믿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순수하거나 고상하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의 평가에 맞우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어째서 어린왕자가 꽃을 돌보는 것만 중요한 일이겠는가. 사업가가 별을 세는 일도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각자가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달리 볼 일이다. 그런 '다양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면 좋았을텐데, 저자가 생각하는 다양성은 딱 저자 자신까지만을 포용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기성세대는 이렇다.


"만약 우리가 특별한 스펙이나 배경 없이 성실함만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면, 기존의 방식으로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격증을 따고, 인맥을 위해서 회식을 따라다니고, 회사에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몰려다니며 밥을 먹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해서 회사와 상관의 비위를 맞추며 연명하는 들러리로만 남게 될 뿐이다. 물론 우리가 만년 과장으로라도 가늘고 길게 가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성세대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저자가 생텍쥐페리에게 반감을 갖는다면, 나 또한 저자에게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직장인들이 살벌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영어공부 하고, 자격증 따고, 회실 따라다니고, 밥 같이 먹고,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건 왜 나쁜가? 그런 들러리의 삶이어서 안 좋고, 저자가 학원에서 강의하고, 가끔 방송에 출연하고, 이렇게 책도 쓰는 것은 주인공의 삶이어서 바람직한 것인가? 들러리가 없다면 이 사회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방법이라도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페스트를 물리치는 것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페스트가 물러갈 그때를 준비해야만 한다. 변화와 의지를 가지고, 현재의 모습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반드시 찾아 꿋꿋이 살아남아야 한다.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그럴수록 현실에 깨어 있어야 한다. 현실을 피해 숨어들지 말고 두 발로 마주 서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언어로 기록해가며, 자신의 방식대로 페스트와 맞서야 한다. 어떤 모습으로든 이 페스트에 맞서 살아남은 우리가 바로 역사이며, 다음 세대를 열어간다는 것을 믿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위에서 말한 '꿋꿋이 살아남'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저자의 뛰어난 시선에 따르면 기성세대는 다들 외형적으로는 들러리의 삶을 살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가슴 속에 품은 꿈과 이상을 저자가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런 기성세대들의 생존법이 뭐? 20대의 공감을 얻기 위해 기성세대를 바보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저자가 어린왕자에게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그럼 너는 네 별에 가서 네 꽃 하고 둘이서 그렇게 살아. 나는 오늘도 나의 별에서, 별 세는 일의 의미를 찾고, 가로등 불에 책임을 다하며 나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나도 똑같이 말해주고 싶다. 너는 강의실에 가서 네 수강생들하고 그렇게 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그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의도했는지 몰라도, 내가 읽어낸 것은 이전과 동일한 비틀린 시선일 뿐이다. 이 한권의 책을 덮으며 도대체 저자는 사람은 그가 강조하는 고전 읽기를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이며, 그 시선을 사회로 돌려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어떻게 읽고, 감히 인생을 독해했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궁금증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덧1. 본문에서 저자가 밝힌 폐쇄성의 원리는 이러하다. "어찌 되었건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학벌과 성공과의 상관관계가 깨졌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에게 오히려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의 당연한 성공보다는 결점을 딛고 일어난 약자의 스토리가 더 관심을 끄는 것, 이를 테면 마릴린 먼로의 입술 위의 점, 모나리자의 눈썹이 없다는 사실 등이 강하게 기억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나도 혹시 유수연과 위즈덤하우스가 소비심리로 이용한 폐쇄성의 원리에 빠져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듯이 학원강사가 무슨 고전이냐라는 폐쇄성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저자가 굳이 여러 권의 고전을 들먹여서까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있다. 저자의 배경이 아니라 이 책에 드러나는 모순과 자가당착은 단순히 하나의 점이나 눈썹의 부재로 생각할만한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덧2. (좋은 느낌으로 이 책을 접한 분들도 많겠지만) 앞으로는 호감이 가지 않는 저자의 책은 정말 읽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괜한 시간을 들여 비판만 적어 놓는 감상평은 나 스스로에게도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좋은 책을 읽을 시간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 말이다. 


덧3. 나는 누구에게 보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내가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이곳에 끼적끼적 감상을 쓰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많은 고수들의 글을 읽으면서부터는 어디에 가서 함부로 '책을 좀 읽는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게 되었다. 저자와 같이 처절한 독서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는 독서를 통하여 겸허함을 배운다.

내가 생각하는 통찰력이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스스로 나의 주변을 재배열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연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외부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적시적소에 자신의 의도를 풀어냄으로써 전체 흐름을 타는, 혹은 이끌어가는 능력.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통찰의 힘이다. - 9쪽

바꿀 수 없는 선택지라면, 내게 주어지지 않은 선택에 연연하기보다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 53쪽

공감이란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공감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즉 이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외롭게 한다. 공감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나와 타인, 나와 세상과의 다리이며, 그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내 안의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생각의 깊이가 없고 고민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정만 있을 뿐이지, 공감을 할 능력은 없다. 자신만의 고민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공감을 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 69쪽

만약 전염병이 돌지 않았다면 모든 거리는 밤새 불을 밝히며 흥청거렸을 것이다. 전염병이 오기 전 세상은 누구나 자유롭게 외출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더 넓은 바깥 세상과 비교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옆 사람과 오늘만을 비교하며 불평할 뿐이다. 전염병이 끝나고 마을이 개방되면 사람들은 또다시 바깥세상의 기준으로 또 다른 차별을 찾아내 불평할 것이다. 인간이란 하나의 페스트가 사라져도 또 다른 페스트를 찾아내고, 자기 기준의 차별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 79쪽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선택이 있다면 삶의 태도를 정하는 것뿐이다. 이 시대의 페스트와 차별을 극복할 것이냐, 아니면 각종 차별에 대해 불평하며 계속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갈 것이냐의 선택이 삶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타루의 말대로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더욱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 84쪽

그저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단순한 몇 마디 비판이나 마치 제삼자의 입장에서 내뱉는 겉핥기 식의 평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학생들은 항상 이런 얘기를 한다. "수업을 들으면 이해는 가는데, 혼자서 풀면 못 풀겠어요."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이 말이, 바로 아는 것과 응용하는 것의 차이다. 혼자서 써먹을 수 없다는 것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강의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말 역시 "많이 본 것과 아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라는 것이다. 지식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응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나’라는 상황에 맞춰 자생력 있게 운용할 정도로 소화해내야 그 지식이 의미 있는 것이다. 똑같은 지식을 습득해도 개인마다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모두 다르다. 즉, 지식은 누구에게 가느냐, 어떻게 응용되느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진다. -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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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1 1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붉은눈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자는 차별화를 위한 깊이없는 독설을 담은 책을 낸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셔서 타인의 헛된 시간을 방지하게 해주신 붉은눈님께 감사드려요^^:

붉은눈 2016-08-21 15:20   좋아요 1 | URL
이 글을 다쓰고 다른 리뷰들을 보니 저 말고는 이 책이 좋다고 한 서평이 더 많네요. 이렇게까지 길게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혹시나 제 괜한 편견과 삐딱한 시선으로 엄한 책을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기에 저자의 글 인용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 같네요. 격려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겨울호랑이님 포스팅을 자주 읽는데 그 깊이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차마 댓글은 못남기고 있습니다. ^^;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6-08-2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닌게 아니라 요즘 유명인들이 유명세를 배경으로 큰 차이없는 책들을 내는 것 같습니다. 붉은눈님 견해에 동감합니다.. 제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는 이제 겨우 내용 정리 수준이고 깊이있게 이해는 못하고 있습니다..같이 대강의 내용을 공유하고자 예습한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좋은 의견 주시면 제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붉은눈님^^

cyrus 2016-08-2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밖에 나가면 책덕후 티를 안 내려고 합니다. 책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리고 책 얘기하면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취급해요.

붉은눈 2016-08-23 19:44   좋아요 0 | URL
네, 아는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이렇게 책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