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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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재미있다. 그 내용에 대하여는 주절주절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하튼 일단은 재미있다. 재미있다는데 이단삼단사단은 어쩌고 저쩌구 구구단을 외울 필요는 없겠다. 머지 않아 곧 영화로도 나오지 싶다. 사만타 스위팅에는 누가 어울릴까. 좌충우돌 가정부 역할로는 르네 젤위거가 어울릴 것도 같은 데, 국제기업전문 엘리트 변호사라는 직책을 덮어 씌우기에는 어째 조금 난감한 것 같기도 하다. 나다니엘엔 누가 어울릴까? 가이역은 빤질빤질한 사람이 어울리겠지. (사실 가이는 사만타에게 얻어터질 정도로 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이로서는 나름으로 사만타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조금 안된 마음도 들었다. 가이의 말대로 사만타의 가정부 생활은 일종의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가이의 말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당했다.)

우리는 보통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을 소설로서 읽지 않고 사실로, 현실로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논란은 항상 여기에서 싹트는 법이니, 선동자들이나 계몽주의자들이 영화나 소설을 이용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논란(뭐 그리 큰 논란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심하다는 신문보도를 본 적이 있다)을 보면서 왜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나 뭐 그런 것들은 학자들에게나 맡겨두고 영화는 그냥 영화로 재미있게 보면 된다. 댄브라운은 저명한 성서학자가 아니다. 그냥 소설가이고 미스터리 작가일뿐이다. 


영국의 유명 로펌 엘리트 변호사의 생활이라는 것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스캐줄이 6분 단위로 짜여져 숨쉬고 고르기 어렵고, 몇 년동안 휴가 한 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근지사이고, 하얗게 뜬 얼굴로 며칠밤을 지새우는 것도 여사며 다반사고, 자신의 생일을 두 대의 전화기와 함께 해야 하는 일도 감내해야 하고, 모든 주말을 기꺼이 반납해야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자리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소설에서는 그렇지만 사실은 그들의 생활이라는 것이 세계 유수의 휴양지에서 멋진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우리같은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산해진미로 만찬을 즐기며, 수시로 또는 때때로 이런저런 모모한 유명인사들과 사교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엄청난 돈을 벌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받는 그런 자리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의 상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후에는 어떻게 될까 책을 덮고 가만 생각해 본다. 길어야 수년, 짧으면 몇 개월만에 그들의 밀월관계는 끝날 것이다. 사만타같은 여성이 시골에서 정원사의 아내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시골에서 자원봉사 변호사(영화 패밀리맨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제2의 삶을 살 때, 마누라 테아 레오니가 했던 그런 역할)같은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국 사만타는 런던으로, 나다니엘을 콘웰로 각자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적한 시골에서 소박한 직업이지만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며,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고, 단추도 달고, 푸른 하늘도 눈에 담아보고 서늘한 바람도 얼굴로 맞아보며 멋진 남자와 사랑도 하며 사는 삶도 한 삶이겠고, 유명 로펌의 엘리트 변호사로 눈코가 어디갔다 붙었는지 모르게 바삐 돌아가며 수천만 파운드를 주무르고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고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하고 선망을 한 몸에 받으며 사는 삶도 한 삶일 것인데, 역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또 그것을 행할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겠다. 국제기업전문변호사가 어느날 문득 가정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가정부가 어느날 자고 일어나 불현듯 국제기업전문변호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수준있는 하이틴 로맨스라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튼 최근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은 기억이 감감하다. 영화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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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6일 처가 식구들과 단양에 있는 대명콘도에 다녀왔다. 5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고주망태기가 되어 쓰러져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콘도에서 바라보는 산과 계곡은 뿌연 안개에 쌓여 사뭇 운치있어 보였다. 두어 해 전에 왔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옛 선인들이 말하는 절경중에는 어디에서 바라보는 낙월(落月)이니, 일출(日出)이니 하는 것들이 꽤 있는데, 나는 이게 볼만한 유적지가 없으니, 팔경이니 삼경이니 하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그런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양팔경에 <비오는 날 대명콘도에서 바라보는 안개 피어나는 계곡>을 하나 더 보태 구경(九景)을 만들고 싶은 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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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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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p15~16)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수다스런 마누라들과 사는 남편들은 모두 간암에 걸려  일찍 돌아가셔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지않은 날들을 고주망태가 되어 보내야 할 것만 같다.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가 아니고 그냥 언어인 것이 다행스럽다.



짐에게 술통 제조 기술을 전수한 그의 스승은 하루에 위스키를 딱 두 잔씩 마셨다. 그보다 많이도 마시지 않고, 그보다 적게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흔여덟까지 살았다고 한다.(p49)


       위스키를 이용한 장수비법. 비법을 잘못 시행하여 주화입마시에는 알콜중독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인생 종치는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보기에 이 비결의 요점은 ‘딱 두잔’에 있다. 문제는 절제에 있다는 말이다. 굳이 위스키일 필요도 없다. 와인이면 어떻고 소주면 또 어떻겠는가(소주는 좀 그런가?)



내가 위스키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낭만적인 직업이기 때문이지(p50)


       그 직업이 정말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정말 낭만적이라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장례식에서도 위스키를 마시지”하고 아일레이 섬사람은 말한다. “묘지에서 매장이 끝나면, 모인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리고 이 고장에서 빚은 위스키를 술잔 그득 따라주지. 모두들 그걸 단숨에 비우는 거야. 묘지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춥고 허전한 길, 몸을 덥히기 위해서 말야. 다 마시고 나면, 모두들 술잔을 바위에 던져서 깨 버려. 위스키 병도 함께 깨 버리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그것이 관습이거든.”(p62)


       망자에 대한 슬픔의 표현이라고 해도 술병이나 술잔을 깨어 버리는 것은 조금 아깝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관습이라는 데에야, 뭐라 할 말이 없지. 관습은 우리가 어쩔수 있는 것이 아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설명할 수 없어. 그 매력은 해명할 수 없는 거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지. 무라카미씨, 가장 나중에 오는 건 사람이야.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아일레이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거야(p77~p80)


       위스키의 맛을 만드는 일은 물론이고, 그 어떤 사소한 것이나 그 어떤 중차대한 것이든 그 일을 결국 이루어내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 그 일을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나중에 올 수밖에 없는 까닭일 것이다.



아일랜드를 무대로 한 존 포드의 <아일랜드 연풍>이라는 영화중에서, 상대 배우가 베리 피츠제럴드에게 위스키를 권하면서 “물을 줄까”하고 물으면, “난 말이지, 물을 마시고 싶을땐 물만 마셔. 위스키를 마시고 싶을 땐 위스키만 마시지”하고 대답하는 제법 차밍한 장면이 나온다.(p93)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연풍의 뜻이 세가지로 풀이 되어 있다. 1. 연풍(連豊) : 여러 해를 계속해서 드는 풍년. 2. 연풍(軟風) : 가볍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 혹은 ‘산들바람’의 이전 일컬음. 3. 연풍(年豊) : 풍년이 듦. 그리고 장동건이 나오는 영화제목이 연풍연가인데 이 연풍(戀風)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굳이 풀이하자면 ‘사모하는 바람(?)‘, 존포드의 영화에서 연풍의 뜻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p130)

       지당근하신 말씀이다. 좋은 친구와 좋은 술은 내가 직접 그들을 찾아 가야하는 법이다.



아일랜드의 딩글에 있는 한 바 벽에 걸려있는 세명의 아일랜드 문학가. 브랜단 베한,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p117의 사진)


       브랜단 베한이 누구지. 과문한 본인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았으나 없었다. 야후를 찾아보니 <인질>이라는 희곡을 쓴 아일랜드 작가라는 정도. 생몰년도는 1923-64



 

짧은 글이다. 위스키 산지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서부의 작은 섬 아일레이와 아일랜드 일대를 둘러보는 여행기이다. 읽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듬성듬성한 글씨에  14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거기다가 또 50페이지 정도는 사진이다. 서점에 가서 서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기행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더구나 설상가상으로 이제 막 위스키에 관심을 가져 볼려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서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잘샀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살다보면 호오(好惡)를 떠나 어쩔수 없이 하게 되는 일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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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山島 夜吟 한산도 야음

이순신


한 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水國秋光暮 驚寒雁陣高

憂心輾轉夜 殘月照弓刀


*************



우리 공장에서 전개하는 독서운동의 5월달 선정도서는 김훈의 <칼의 노래>이다. 당근 읽어 보았고, 어줍잖은 서평도 올렸던 것 같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 앞에서 무효였다’라는 제목의(물론 소설중에 나오는 문구다). ‘닥쳐올’이라고 하니..‘닥쳐라’가 문득 떠오른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김훈이 한글 산문 미학의 한 경지에 올랐다는 말은 지당하다고 생각하거니와, 일부 그의 글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인사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재독의 가치가 있다는 나름의 계산이다.


김훈이 그려낸 이순신은 광화문 앞에서 긴칼 옆구리에 차고 떡하니 서있는 시원하게 찢어진 눈매의 위풍당당한 이순신이 아니었다. 소설 속의 이순신은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무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순신은 과연 누구인가.....이순신.........순신, 순신, 순신하고 불러보니 그 이름이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이름 같다는 전혀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그런 생각만 떠오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역시나 잘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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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6-05-0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카즈키의 <레벌루션 No. 3> 등 더 좀비즈 시리즈에 재일교포 주인공 이름이 '순신'이지요. 일본어로 발음하기 어려울 텐데, 묘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붉은돼지 2006-05-0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설마 성도 이씨는 아니겠지요?
 

 

 

 

 

이번 달 특강에는 <연어>의 저자 안도현이 초청되었다. 경북예천이 고향이고,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시인 자신만큼 상을 많이 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한다. 온갖 백일장이며 문예공모에 당선되었다고 하니 이른바 소년 문사로 일찍부터 문명을 휘날렸으며 수많은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고 한다. 문학을 하게된 데에 대하여 뭐 이렇다할 특별한 계기나 동기는 없었던 듯 하다. 몇 년간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전교조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했다. 그후 교직을 떠나 전업작가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우석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북쪽에 나무를 보내는 일을 하고 있으며, 지난주에 평양에 다녀왔다고 한다. 대구만큼 사과로 유명하다는 황주(처음 들어본다)의 3만평의 부지에 사과나무를 심는 일이란다. 시인의 근황이다.


연어는 일명하여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한다. 본인의 입장을 말하자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임금은 임금다워야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어쩌고 저쩌고....(내가 뭐 고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맹자나 공자같은 것을 읽다가 보면 옛경전의 한구절에는 너무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어 일면으로는 대단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일면으로는 바람타고 구름잡는 허황한 소리같기도 하니 연하여 또 해석상에 온갖 구구한 억측을 낳기도 하는 것이니 뜻글자인 한문의 매력이 여기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슨 멍멍 개 짖는 개소리냐 하면 이런 이야기다. 동화는 마땅히 아이들이 읽어야 하고 어른들은 어른들에게 어울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본인 생각이니, 단도직입적으로다가 그러니까 단도로 배때기를 곧바로 찌르듯이 말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니 뭐니 하는 것들에 본인은 반대한다는 그런 말이다. 특강중에 시인은 <연어>의 모델은 <어린왕자> 인데, 어린왕자 서문에 “이 책을 어린이가 아닌 어른에게 바치는 점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는 말이 나온다고 하면서 쥐빼리도 그런 걸 썼잖아~ 뭐~ 하면서 변명 비슷한 소리를 하고, 또 전업작가 시절에 이 책 한권 때문에 그래도 그럭저럭 배채우며 버텼다고 하니 어린아이도 아닌 어른인 본인이 양해를 안해줄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특강중에 몇 번 시인이 언급하였지만 인터넷에 한창 떠돌아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는 연탄재 시(제목은 너에게 묻는다.이고 내용은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내 생각에 시가 아니고 일종의 아포리즘이다. 그 내용에야 십분천백분 공감동감하지만, 그건 일종의 금언이나 경구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땅히 감흥이나 감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니, 부끄러움이나 참담함을 느끼게 한데서야 그게 성경, 불경, 사서삼경의 경전이 아닌가 이 말이다.


시인의 시 중에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시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시가 그나라 국어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과연 얼마만한 영광인가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역시 잘 모르겠더라) 중학교 다니는 시인의 아들이 어느날 아빠에게 이 시를 언급하면서 이 시중에 대비를 이루는 단어 몇 개 찾아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시인이 조금은 황당한 마음에 대충 다섯 개를 찾았는데 그중 하나는 틀렸다고 한다. 허 참!! 시를 소개해 본다.(시인은 이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 중학생의 나이에 어울리는 시라서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단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우리 공장의 직원 중 한분이 특강 말미에 시인의 시 중에서 시인이  암송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음에 들어하는 시가 있다면 한 편 멋지게 낭송해 줄 수 없느냐고 하자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시를 낭송해 보였다. 시낭송에 뭐 특별한 것은 없었다. 고은처럼 흐느껴 울며 쌩똥폼 잡고 쑈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시를 소개해 본다.(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같은 시를 썻던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쓰는 시인으로 변했는지 - 이런 종류의 시가 나쁘다거나 시인이 뭐 변절했다는 둥둥의 그런 의미가 아니다 -  궁금했지만 손들고 물어보기가 부끄러워 그냥 어쩌다 살다보니 그리 되었겠지 내 멋대로 혼자 짐작하고는 그냥 참았다. 나는 떵이 매려워도 대충 잘 참는 편이다...꿍)


사랑한다는 것 -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 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 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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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 2008-08-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디를 '四宜齋'라는 한자로 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자교육 不在로 한문학 전적을 제대로 번역해 읽을 수 있는 분도 점점 사라져 가는데 한문과 우리 古代史를 공부하는 이로서 모처럼 한자로 표기해 주신 분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