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쓴 돼지의 귀환과 제목의 대구(對句)를 이루기 위해 문고의 귀환’, ‘문고의 반격’, ‘문고의 역습’, ‘문고의 환향등 여러 안을 놓고 두문불출하며 절치부심 고심장고를 거듭한 바, ‘문고의 역습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고(典故)를 인용한 점으로 보나 형식상의 댓구로 보나 가장 적절한 것으로 사료되지만 애석하게도 그 내용상에 있어서는 전혀 득의함이 없으니 채택이 난감하여 포기하고 귀환시리즈로 해서 돼지의 귀환에 이어 문고의 귀환으로 제목을 정하였다.

  

모름지기 댓구란 그 옛날 등왕각서의 이 한구절 정도는 되어야 무릎이나 이마 혹은 엉덩이를 아프게 때리며 바보 도 터지는 장탄식을 토해내게 되는 것이니, 다만 높이 우러러 볼뿐 불초 홍돈 따위의 천학(淺學)이 범접할 수 있는 경지는 이미 아니다.

    

落霞(낙하)與孤鶩齊飛(여고목제비)하고,

秋水(추수)共長天一色(공장천일색)이라,

저녁 노을은 외로운 물오리와 더불어 나란히 날고

가을 물빛은 높은 하늘과 함께 한색이구나.

 

  

각설하고, 소생이 비록 삼중당 문고 세대는 아니지만, (소생이 본격적으로 독서에 매진하기 시작했던 그 옛날 고딩시절에 삼중당 문고는 사양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동네 서점에 가면 뱅뱅돌아가는 어른 키보다 약간 작은 사각기둥 모양의 삼중당 문고 전용 책꽂이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저러 무심한 세월은 역시 무심하게 흘러 뭐 동네 서점은 자체가 없어져버렸고 삼중당 출판사 또한 어찌되었는지 이제는 알길이 없다.

 

연이나 근자에 들어 동네 서점도 드물기는 하나 혹간 하나씩 돌아오고 있고 문고본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쏜살문고(민음사), 땅콩문고(유유), 마음산문고(마음산책) 등이 속속 나오고 이와나미 신서 번역 문고본도 나오고 있고, 더하여 3개의 1인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한 아무튼이라는 문고본도 나와있다.

 

아무튼 최근에 아무튼 문고본 5권을 읽었다. 간단한 소감을 남겨본다. 뭐 서평이랄 것은 전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취향이나 호오의 감정을 조금 끄적여 보는 것에 더불어 아무튼 어쨌든 소생이 이 책들을 다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있을 따름이다.

 

 

1. 아무튼 서재

    

 

역시 모범 장서가로서 서재라는 제목이 눈에 확 꼽힌다. 이 책에서는 대단히 소중한 정보를 득하였으니 다름아니라 저 물건너에서 넘어온 물건 중에 에어론 체어라는 기막힌 의자가 있다는 전언이다. 소생같이 연례행사로 허리가 아픈 종자에게는 희소식이다. 미국의 가구업체인 허먼 밀러사에서 만든 의자로 하나에 백만원이 훌쩍 넘는데 네이버 직원들이 이 의자를 사용한다고 해서 일명 네이버 의자로도 알려져 있다고 하고 일전에 문재인 의자로 시비가 있었던 그 의자도 바로 이 허먼 밀러사의 제품이었던 것인데, 견문 일천한 소생이 이제야 알겠되었으니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알았다고 뭐 어쩔수 없기는 맨 한가지라. 다만 언젠가는 소생의 서재에 들이고 말겠다는 다짐만 해보는 것이다.

 

 

  

2. 아무튼 잡지

  

 

소생이 도서를 수집하면서 예전에는 잡지는 취급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이것저것 나름 사다 모으고 있다. 일단 <AXT>는 싼 값에, <미스테리아>는 표지가 예뻐서, <매거진B>는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스켑틱>은 과학에 문외한인 소생 학문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저런이런 잡지를 꾸역꾸역 사모으고 있으나 역시 제대로 펼쳐본 적은 없다는 것이 함정이 되겠다. <에이비로드>, <시리얼>, <그래픽 노블>, <MOVE>도 가끔 사본다. 요즘은 5만원의 2000마일리지를 위해 <샘터>를 많이 사고 있다. 아무튼 잡지 재미있게 읽었고, 뭔들 안그렇겠는가만은 우리가 한번 보고 쉽게 버리는 이 잡지 한권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노고와 열정이 투입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되었다

 

 

 

3. 아무튼 피트니스

 

  

인권 운동(movement) 경력 25년차인 활동가가 운동(exercise)에 대한 책을 썼다. 소생의 생활습관이란 역시 생겨처먹은대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패턴인데, 눈 밝은 사람이 아무리 눈을 씻고닦고부비고  봐도 소생이 운동하는 꼴은 당췌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당연한 이야기로 운동을 전혀 안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리하여 어디 한 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 이런저런 여러 잡병들이 많지만 허리에 문제가 생긴 역사는 오래다. 연례행사로 아프다. 소생의 아픈 허리를 위해서는 에어론 체어가 문제가 아니라 운동을 해야하는 것이다. 올해는 영어공부니 뭐 세계문학전집 완독이니 하는 그 어떤 헛된 작심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올해는 아무튼 피트니스. 정말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생각만 애절한 것이 문제다.

 

 

4. 아무튼 스웨터

  

 

스웨터로 과연 책 한권을 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우선 고개를 쳐드는데, 일단 읽어보니 스웨터로 책 한권을 쓰기는 썼던 것이다. 알라딘에 올라와있는 출판사 제공 책소개를 보면 출판사 관계자가 쓴 아무튼 스웨트의 작가인 김현의 문재(文才)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21세기 문학>에 실린 김현의 기고문을 보고는 이 사람 산문 진짜 잘 쓰네라고 생각을 했으며, 그후에 이 책 아무튼 스웨트의 초고 1/3분량 정도를 받아 보고는 또 이렇게 외쳤다는 것이다. ‘이 사람 산문 진짜 잘 쓰네!’

 

 

소생은 스웨터에 눈꼽만큼의 흥미도 코딱지만큼의 관심도 없지만 진짜 잘 쓴 산문은 과연 어떠한가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구입했다. 명실공히 자타가 공인하는 대가를 제외하고 어떤 사람의 문재에 대한 지극한 상찬은 칭찬하는 사람의 선의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 주의를 기울여햐 한다는 개인적인 소견이다. 특히 소생처럼 양심에 털이 소복하니 복슬복슬하고 심사가 심히 베베꼬인 종자에게 이르면 이런 극찬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오호 고오래? 어디 한번 볼까아아 얼마나 진짜로 짜짜로니 잘 썼는지이이이?’ 가늘게 찢어진 눈에 시선은 쎄리삐딱한데 기대치는 만땅으로 올라가 있는 그런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그 심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현은 시인이다. (그리고 남자다.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첨언한다.) 상당히 쎄다는 그의 시집 <글로리홀>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세상만사 삼세번. 한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5. 아무튼 쇼핑

 

  

쇼핑도 읽었는데 힘딸려 더 이상 쓰기가 어렵다. 어차피 써봐야 위의 4권과 마찬가지로 책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엉뚱한 소리나 쳐지꺼릴 것이 분명하니 이쯤에서 그만 그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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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19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반가와요!! 지난번엔 많은 분들이 인사를 하서 저는 빠졌어요. ㅎㅎㅎㅎ 이렇게 따로 하려고~~ㅎㅎㅎㅎ 수상도 축하드리고 돼지님의 귀환도 기쁩니다. 근데 돼지님 하니까 좀 이상하죠????풋
어쩌나요~~~저는 허먼 밀러사의 그 의자를 사장님이 사주셔서 사용하고 있답니다. ㅎㅎㅎㅎ 그래서 제 허리가 안 아팠군요~~~^^;;;
그리고 제가 읽고 싶은 죽는 게 뭐라고가 작은 데도 불구하고 눈에 화악 들어오네요~~~~ㅠㅠ
읽으신 책들 다 제 취향같아요~~~ㅎㅎㅎㅎ

붉은돼지 2018-01-19 23:09   좋아요 0 | URL
어머 라로 님~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ㅎㅎㅎ (이건 다락방님에게도 날렸던 멘트 ㅋㅋ)
돼지를 돼지로 부르는 게 뭐 이상할 건 전혀 없습니다.
에어론 체어 쓰신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는 회전의자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파서 식탁의자 같은 의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ㅜㅜ 에어론체어를 사용해 보면 어떨지 정말 궁금합니다만...

cyrus 2018-01-19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으고 있는 문고본은 ‘문지 스펙트럼‘, ‘창해 ABC‘, ‘열림원 이삭줍기‘입니다. 알라딘 서점에 가기 전에 이 문고본 시리즈가 있는지 확인해요. ^^

붉은돼지 2018-01-19 23:11   좋아요 0 | URL
저는 창해 ABC는 예전에 거의 다 모았었는데... 중고로 다 처분해버렸다는 .....ㅜㅜ
지금 가지고 있는 창해문고는 맥주, 와인, 위스키 3권뿐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1-19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문진보를 을유문화사 것으로 갖고 있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요.
성백효 님은 왠지 정이 안가서리, ㅋ~.

전 학급문고로 삼중당 문고를 본 세대예요.
한손에 쏘옥 들어오는 것이 갖고 다니기엔 편했지만,
읽는 눈이 좀 불편했었죠.
지금은 문고본도 세련됐더라구요~^^

붉은돼지 2018-01-19 23:17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문진보는 시편 문편 모두 육문사판입니다.
고문진보에는 알알이 보석같은 문장들이 정말 수두룩빽빽하죠..
옛날에는 적벽부나 귀거래사, 등왕각서, 출사표 같은 문장들을
외우려고 낑낑대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보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른 볼 책들도 많고....

옛날 삼중당문고는 글자가 정말 깨알같았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