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고지훈 지음, 고경일 그림 / 앨피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모두에 언급된 메트릭스의 ‘데자뷰’ 운운은 역사에 대한 비유 혹은 은유로써 나름으로는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이미 나타난 현상이 다시 또 나타나는 메트릭스에서의 데자뷰 현상은 일종의 시스템 오류현상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역사가 계속 순환 반복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시스템은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만 역사를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를 바로 세워 볼려는 시도는 전 세대, 전 세기를 걸쳐 줄기차게 이루어져 왔고 약간의 진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역사는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순환사관이 비관주의가 되고 허무주의로 흐르는 까닭일 것이다.


단군 기원으로 말하자면 올해가 4339년이니, 본인이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귀가 뚫리고 글을 깨칠 때부터 우리 배달민족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라는 말을 숱하게 듣고 또 보아왔던 것이다. 4300년만으로도 충분히 유구할진대 굳이 700여년을 더해 반만년을 채우는 것은 조금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992년을 연명한 신라를 천년왕국이라 하고, 519년을 버틴 조선을 가리켜 흔히 조선왕조 5백년이라 한다. 이정도의 가감은 양해가 되는 것이지만 에누리가 심하면 신뢰를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유구한 반만년 역사와 더불어 소싯적부터 줄기차게 들어왔던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것들이 차차 나이가 들고 견문이 넓어지면서 점점 초라하게 느껴지게 되는데, 말인즉슨, 석굴암 건축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듯이 말하지만 수많은 천재 장인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그 어느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엔들 그 정도의 신비함이나 정교함이 없겠는가 이 말이다. 최고인줄로만 알았고 믿었던 빛나는 우리의 문화유산이, 좋게 말하자면 여러 최고들 중의 하나였거나 아니면 그 버금이었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우수한 숱한 것들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외적의 침략과 집안 싸움으로 점철된 유구한 그 반만년 역사중에 어느 때인들 함포고복하며 강구연월을 구가한 때가 있었겠나만은 해방전후의 현대사를 생각해보면 실로 답답한 마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 현대사의 모모한 인사들의 인생유전을 보면서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서글픔, 열불남, 성질남 같은 감정들만 들끓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사흘이 짧다하고 터지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서의 미군 등에 대한 자살 폭탄테러, 그들의 물불 가리지 않는 과격한 저항운동을 보면서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이라는 것이 너무 초라했던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한일합방 초기의 근왕주의적 의병운동이 끝나고 국내에서는 일제에 대한 이렇다할 테러나 습격사건 별로 없었고 해외에서의 임시정부의 활동이나 외교적인 독립 노력들은 파벌싸움으로 얼룩덜룩 지지부진 했으니, 일제 침략군과의 변변한 전투 한번 없이 얼떨결에 맞이한 해방조국은 이념분쟁과 권력투쟁으로 또갈라지고.....안타깝다는 생각뿐이다.


어릴 때는 최고이고 대단한 줄로만 알았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라는 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자긍심과 자존심이 상처입고, 어떨 때는 우리나라가 견딜 수 없이 작게 느껴지는 그런 아픔을 겪게도 되는데, 그러한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조국에 대한 애뜻한 감정이 생겨나고 그 애뜻함에서 뜨거운 애정이 솟아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굳이 비유하자면 못난 자식 더 생각하는 부모 마음 같은 것이리라. 



추신 : 참고로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사의 모모한 인물들의 호를 알게 되었다. 가외의 소득이라 할 만하다. 백범은 말할 것도 없고, 우남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박정희의 호가 중수(中樹), 김종필의 호가 운정(雲庭, 기생이름 같기도 하다), 박헌영의 호가 이정(而丁) 이란다. 독설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반면 한국컨텐츠 진흥원의 우수만화 기획부문 선정작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만화는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