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숲에서 나온 계간지 <인문의 향연> 2호와 3호를 구입했다. 1호도 구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연락했더니 재고가 없다고 한다. 도리 없다. <인문의 향연> 제2호의 제언이 “일리아스를 읽자”이다. 제언을 읽어보니 역시 <일리아스>가 읽고 싶어진다. 영화나 여러 판본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이런저런 다이제스트판으로 읽어서 대충 내용은 알고 있지만 원본을 읽은 적은 없다. 책은 사놓고 있다. 호메로스 뿐만아니라 희랍 3대 비극작가의 작품까지. 소생 서재의 책장을 볼 때마다 압박을 받고 있지만 오늘의 압박은 강도가 다르다.

 

서양 문학의 원류가 되는 일리아드의 내용인 트로이 전쟁의 시작은 이렇다. 바다의 신 테티스가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 사이에서 훗날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태어난다. 테티스의 결혼식에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이 초대되었는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대를 받지 못했다. 테티스로서는 당연하겠지만 에리스로서는 화가 나는 일이다. 불청객으로 결혼식에 나타난 에리스는 황금으로 된 사과 하나를 던지고 사라진다. 이 사과를 ‘파리스의 사과’라고 명명한다면, 이 사과는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 잡스의 사과와 더불어 인류 문명사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키는 엄청나게 유명한 사과가 된다.

 

에리스가 무심하게 던진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심사위원도 없는 가운데 ‘미스 올림포스 선발 대회’가 열렸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지혜의 여신 아테나, 결혼의 여신 헤라가 서로 자기가 사과의 주인이라고 우기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결론이 날 리가 없다. 그래서 최고신인 제우스에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청하게 되는데 제우스인들 용빼는 재주가 있을 리 없다. 후보 중에 자기 마누라도 있는 판에 이런 골머리 아픈 일에 연루되기는 싫었을 것이다. 헤르메스에게 떠 넘긴다. 이걸 결정할 인간을 물색해보라고 한다. 헤르메스가 찾아낸 인간이 이다산에서 양을 치고 있던 양치기 소년 파리스다.

 

파리스는 그냥 양치기 소년이 아니다. 원래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인데 어릴 때 버려졌다. 파리스가 어머니 헤카베의 뱃속에 있을 때 파리스의 누이인 카산드라가 아이가 태아나면 트로이는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했다. 카산드라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여 불행을 자초했다. 앞 일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만 아무도 그 예언을 믿어주지 않는 저주를 동시에 받은 여인이다.

 

그건 그렇고 파리스 앞에 나타난 세 여신은 각자가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주장한다. 파리스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미스 올림포스’의 왕관이 탐난 세 여신은 급기야 대가를 제시한다. 헤라는 부와 명예를, 아테네는 지혜와 용기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파리스의 심판이 공정할 리 없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낙점했다. 아! 어리석은 파리스여~ 부와 명예나 혹은 지혜와 용기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건만. 뭐 이건 소생이 한탄한 일은 아니다.

 

당시 희랍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은 여인은 헬레네였다.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간에 헬레네가 최고의 미녀였는데 문제는 유부녀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다. 메넬라오스는 후일 트로이를 공격하는 그리스 연합군의 사령관이 되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다. 헬레네의 족보도 복잡하다. 공식적으로는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와 왕비 레다의 딸이다. 하지만 사실은 신의 핏줄이니 레다에게 반한 제우스는 백조로 변해 레다와 교접하였고 레다가 낳은 백조알에서 나온 여러 아이들 중에 하나가 헬레네다.

 

헬레네가 결혼 적령기가 되자 구혼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45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 중에는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같은 이들도 있었다. 신랑뽑기 오디션이 과열되자 틴다로오스는 혹시 탈락한 구혼자들이 흥분하여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난동이라도 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이 때 오딧세우스가 “남편감이 정해지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승복하고 끝까지 그의 명예를 지켜준다.”는 맹세를 모든 구혼자들에게 받으라는 조언을 해준다.

 

이 맹세는 결국 그들을 옭아매어 대 트로이 전쟁을 위한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오딧세우스는 그 조언의 댓가로 훗날 틴다로오스의 조카인 페넬로페와 결혼하게 된다. 꾀 많은 오딧세우스는 헬레네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차선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헬레네는 파리스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저지르지만 페네로페는 밤마다 낮에 짠 베를 풀어가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남편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준 댓가로 헬레네와 배꼽을 맞추었고 또 같이 트로이로 도망치게 된다. 오쟁이 진 메넬라오스가 가만히 있을리 만무하다. 옛 구혼자들의 맹세로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하고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으로 추대된다. 아울리스 항에 모인 그리스 연합함대가 여신 아르테미스의 방해로 출항을 못하게 되자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산 제물로 바치고 출전한다. 어찌 피눈물나는 속사정이 없었겠나만은, 아! 비정한 아비여~ 훗날 아내의 불륜으로 비명횡사하더라도 억울하다고는 말 못하리라. 이리하여 향후 10년간 이어지는 트로이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이고 , <오딧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후 귀환하는 오딧세우스가 겪는 모험담이다. 호메로스의 유장한 대서사시들은 기원전 8세기 경에 쓰여졌다고 짐작되는데 그로부터 3~4세기 뒤에 등장하는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은 이와 관련된 수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썼고 그 중 일부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특히 이와 관련된 비극을 많이 남겼다.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간 것은 헬레네가 아니라 헬레네의 환영이라는 전설을 근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헬레네>.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가 아울리스 항에서 그리스군의 출정을 위해 산 제물로 바쳐지는 내용을 다룬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누이인 엘렉트라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린 <오레스테스>

 

트로이 함락후 그리스 연합군의 전리품이 된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가 막내아들의 복수를 하는 이야기 <헤카베>. 프로아모스의 막내아들 폴뤼도로스는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잘 지켜달라고 보물과 함께 트라케 왕에게 맡겨두었는데 트로이가 패망하자 보물이 탐난 트라케 왕은 폴뤼도로스를 죽여 시신을 강에 버렸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아내인 안드로마케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의 첩이 되어 텟살리아에서 살던 이야기 <안드로마케>. 트로이 함락후 전리품이 된 트로이 여인들의 이야기 <트로이아 여인들>. 왕비 헤카베는 오뒷세우스, 딸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에게 배정되었고 또 다른 딸 폴뤽세네는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제물로 바쳐졌다. 헥토로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네옵톨레모스의 몫이 되었다.

 

아이스퀼로스도 여러 편을 남겼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10년만에 고국으로 귀향하던 날, 그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야기 <아가멤논>.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카이메스트라는 헬레네의 언니다. 아가멤논이 살해될 때 구사일생으로 피한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청년이 되어 돌아와 그의 어머니와 정부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이야기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모친 살해자가 된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올림포스 신들과 아테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의 심판을 받는 이야기. 무죄일까? 유죄일까? <자비로운 여신들>. 이른바 <오레스테이아>3부작이다.

 

<오이디푸스 왕>으로 유명한 소포클레스도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그 정부를 죽여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는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엘렉트라>를 남겼다.

 

희랍 3대 비극시인보다 수백년 후대의 로마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는 그 유명한 <아이네이스> 썼다. 트로이 왕족으로 헥토르의 사촌인 아이네아스는 트로이 보다 더 위대한 제2의 트로이를 건설하게 되리라는 신탁을 받는다. 베누스(그리스신화의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아이네아스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불타는 트로이성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파란곡절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다. 로마의 시초다. 예수의 족보가 다윗에 닿아 있듯이 카이사르의 족보는 아이네아스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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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2015-04-1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들 다샀지요. ㅋ 저는 비극에 더 빠져서 `아트앤스터디`에서 `김헌`선생님 강의 들으며 대표 비극들을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일리아스`랑 `소포클레스`의 비극들을 좋아합니다. 한 때 그리스 문학과 역사에 푸욱 빠졌었는데. 그때의 열정적인 독서가 그립네요.

붉은돼지 2015-04-19 20:5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여름님..
사실 뭐 주절주절 써놓았지만 저는 아직 제대로 읽어 본게 없습니다. 더구나 강의 같은 건 들은적도 없구요ㅜㅜ
희랍고전은 옛날부터 관심은 있었으니 이제 찬찬히 함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ㅎㅎ 책도 사놓았는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