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末 끝 말
20,430명의 응모자 중 1,077명(5.3%)이 올해의 한자로 ‘말(末)’을 선택했다. 선정 사유로는 도카이무라(동해촌) 핵사고, 무차별 살인사건, 경찰 오직 사건, 잇따른 신칸센 안전사고 등 세기말 적 현상을 상징하는 사건이 빈발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위는 亂(란) 3위는 核(핵) 4위는 崩(붕)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시에 나오는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고 앙골무아 대왕이 부활하리니...어쩌고 저쩌고” 하는 구절을 지구와 혜성과의 충돌을 예언한 것으로 여겨 1999년에 이 세상이 절단나고야 말 것이라고 혹세무민하는 참언들이 횡횡하기도 했다. 1999년이 별일 없이 지나자 다시 2012년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 신종 종말론은 마야달력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마야 달력은 기원전 3114년에 시작해 기원후 2012년에 끝난다는 것이다. 모든 세대에 걸쳐 종말론은 항상 존재해 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십진법상 9는 꽉 찬 숫자이고 그 다음은 무라고 할 수 있는 0이니 9가 세 개나 겹치는 1999에 종말론 이야기가 안 나오면 섭섭한 것이다. 복날에는 개고기나 닭고기를 먹어줘야 섭섭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복날 개나 닭을 먹지 않는 다고 여름 못넘기고 돌연 돌아가시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왠지 먹어줘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Y2K 예방을 위해 각국이 수천억을 지출하는 등 세기말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있었지만 밀레니엄 새천년에 거는 기대와 희망도 무슨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유럽연합의 단일통화인 유로가 화려하게 출범했으며 미국의 다우존스지수는 103년만에 처음으로 10000을 돌파했다. 반면 나토의 보스코 공습으로 1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터기강진, 중남미 홍수로 수만명이 죽기도 했다. 어쩌면 1999는 숫자적 의미밖에 없었다.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백 수천번의 한해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