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단연코 당연하게 대도무문 되겠다. 과문한 필자가 글씨 자체의 작품성에 대해 왈가부를 하기는 당치않으나 큰 붓으로 일필휘지 휘갈기는 모습은 일면 대한 남아의 마초적 호연지기가 살짝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통큰 선비의 풍모가 얼핏 엿보이기도 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도둑(大盜)에게는 문이 필요없다’라고 오역되기도 하는 이 사자성어는 글자대로 풀어보자면 말그대로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출전으로 알려진 《무문관》은 중국 송나라때 불서로 《벽암록》, 《종용록》과 더불어 불교계의 대표적인 수행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 무문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무문 천차유로 투득차관 건곤독보) "큰 길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千)이로다.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에 홀로 걸으리라." 불가의 이야기는 바람타고 구름잡는 형국이라 얼른 이해가 어렵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으니 글로는 설명이 어렵고 이심전심으로 알아먹어야 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정도의 뜻으로 쓰여지는 것 같다. 호연지기와 일맥이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1993년 7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방한 당시 통역을 맡고 있던 박진 의원이 이 대도무문을 통역하면서 처음에는 직역으로 “큰 길에는 정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로 해석했다가, 다음에는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로 의역했다가, 그래도 클린턴 대통령이 잘 못알아 듣자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는 의미다”라고 설명하자 그때서야 클린턴 대통령은 박장대소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우리나라 말로도 똑 부러지게 해석하기 어려운데 영어로야 오죽하겠는가. 

 
YS는 ‘용(龍)’자 대작을 주로 쓴 창해 김창환에게 사사했다고 전해진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YS의 글씨체를 가리켜 대도무문을 하도 많이 써서 ‘대도무문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전통적인 필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검사 출신인 구본진씨가 쓴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필적은 말한다》에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글씨는 서법에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글씨체를 구사했다. 그가 즐겨쓴 대도무문은 그의 필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붓만 왔다 갔다 한 듯 필획이 약하다. 여백을 거의 두지 않고 굵은 체로 종이 전체를 메우고 있는 것에서 통 큰 사람임을 드러낸다. 글씨 속도는 매우 빠르다. 매우 빠르게 결정하고 직선적이며 좌고우면하지 않았을 성격이다. 기교가 거의 없고 정확한 정사각형 형태로 쓰고 있는 것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올곧은 사람임을 드러낸다.”고 했다. 호평이다.

 

큰 길에 문은 없어도 휘호 대도무문에 값은 있다. “대도무문” 휘호는 2004년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460만원에 팔렸고, 2009년 2월의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380만원에 낙찰되었다. 가격은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역사성이나 희소성에 더 좌우된다는 분석이고, 구입자들은 정치적 지지자들이나 대통령 휘호 수집 마니아 층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에 소재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를 일방하게 되면 김영삼 전대통령의 친필 휘호 《대도무문(大道無門)》, 《호연지기(浩然之氣)》등을 만나볼 수 있다.  


YS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의 휘호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이었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한다는 뜻인데, 불행히도 그의 집권 말년은 잘 마무리되지 못했다. 문득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사에 유시유종이 썩 드무오”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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