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도 메인에 떠 있는데 “400년만에 막내린 가문의 대결“이라고. 오랜 시비의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라 역시 벼슬이었다.
학봉으로 말하자면 서애보다 연상이고, 서애도 뭐 퇴계의 적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안동의 분위기는 그래도 학봉을 퇴계의 적통으로 치는 편이고 보면 학봉이 비록 임진년 전란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란중에 진주성에서 순국했으니 쎄미쎄미가 되는 셈이고,
서애로 보자면 서애가 비록 학봉보다 연하이고, 또한 글하는 선비라기 보다는 경세하는 관료라는 측면이 강하지만, 일국의 총리대신으로 국가존망의 중차대한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그 노심초사와 각고면려를 돌아본다면 응당 퇴계의 왼편자리는 서애의 몫일 것이나,
400백년이 지난 지금 퇴계고 학봉이고 서애고 뭐고 다 퇴색되고 유학 자체가 퇴물이 된 이마당 저마당 앞마당 뒷마당에 좌배향 우배향이 뭐가 중요하겠나. 득세하던 시절에야 꼬장한 자존심 대결도 볼만했지만 퇴락한 시절에야 서원 복원만해도 감지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