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기덕감독의 영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본인이 그의 영화를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일렁일렁 오다가다 주워 듣고 보기에 그렇다고 하더라. 그의 작품들은 과도한 폭력성과 변태적인 분위기, 여성비하적인 시각으로 항상 논란을 일으켜왔다는 이야기인데, 대개 그렇듯이 코쟁이들이 이런점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대하고 또 관심도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고 보면 김감독의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소식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던 것이다(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종상은 절대 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고 하니, 목하 김훈의 소설을 열심 통독중인 본인이 그의 소설들(칼의 노래, 화장, 현의노래)을 읽으면서 일부분에 있어서 다소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김감독의 수상소식이 전해져서 본인이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일부 관객들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에 비슷한 점이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비슷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뿐더러 보리밭에서건 뽕밭에서건 아무 관계 상관도 없는 것 같기도하고 하다는 그런 생각들이 뜬금없이 왔다갔다해서 몇자 끄적여 보는 바이오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우리 여성동무들을 다소 비하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또 생명을 약간은 가볍게 다루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죽음을 너무 무심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혐의를 품어보기도 했던 것인뎁.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여성이나 생명,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작가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 이입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도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인간에 대한 편애없이 정녕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만 인간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본인 멋대로 분석도 해보고 하고 했던 것인데 어쨋건 그런 생각들이 오락가락 들락날락 했다는 이야기

야로의 행위는 과연 무슨 개똥철학을 품고 있는 지 요령부득이고 - 우륵의 소리에 대한 대척점으로 야로의 쇠를 너무 부각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 비화가 꼭 뱀에 물려 죽어야만 했는지, 순장궁녀가 잡혀 죽는데 그를 보호한 우륵과 니문이 무사한 점도 의문이고, 이런저런 점에서 내가 소설을 소화해내지 못한점이 많아 통석의 념을 금할 길 없다. 일언이폐지하자면 칼의 노래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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