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희랍인 조르바>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의식 밑바닥 한구석에 가라앉아 처박혀 있어서 오래도록 잊고 지내다가 얼마전 하루키의 그리스 터기 여행기를 읽게 되면서 다시 수면위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하루키는 그의 여행기에서 대책없이 호탕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전형으로 조르바를 상정하면서 그리스인을 두가지 유형로 나눈 바 있다. 일명하여 조르바형 그리스인과 비조르바형 그리스인 되겠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호쾌함과 자유로움은 결코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운명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일종의 천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조르바형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격이 소심하고 꼼꼼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부류의 사람은 뼈를 깍고 살을 베는 수행을 거듭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조르바형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이 본인의 어줍고 한심한 지론되겠다. 살리에르가 지랄용천을 해도 결코 모차르트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살리에르처럼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 되어 스스로를 학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맹자께옵서는 절차탁마하여 호연지기 키울 것을 누차 강조하셨고 공자께옵서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으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꼴리는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렸다. 자유로운 삶이란 눈물 피땀의 댓가로 성취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언사가 없지는 않으나 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성격이 조금 소심하고 내성적이라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굳이 폭포아래 찬물을 뒤집어 쓰면서 고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는 것도 자유로운 삶의 한 방법 되겠고, 프로그램된 유전자 정보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 결국은 자유로운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이런 생각도 조르바적인 사고일지 모르겠다. 여하간에 조르바형 인간이 매력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르바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크레타에 있는 카잔차키스 기념관에는 조라바가 작가에게 보낸 친필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고. 조르바의 딸(아마도 시베리아에서 얻은)이 크레타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무덤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조르바의 딸이 벌써 육십을 넘은 노인이라 하니 과연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이었던가 다만 인생이 무상함을 새삼 느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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