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시대의 빛과 그늘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1
박한제 지음 / 사계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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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맹자에 나온다는 이말은 아마도 한번 크게 다스려지면 한번은 크게 어지러워진다는 뭐 반복 순환의 이야기가 되겠고, 역사란 것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을 거듭 반복하는 인생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라고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결국 개개의 인생사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일진대, 반복무상한 것이 인생사이며 곧 역사가 아니던가?

중국 고대 하은주시대가 일치(一治)라면 주나라 말기 춘주전국시대는 일란(一亂)이 되겠다, 진한(秦漢)과 대당(大唐)은 일치의 시대가 되겠고 삼국 위진남북조와 오대십국은 일란이 되겠다. 어지러운 시대라도 춘추전국시대는 문화와 사상이 만개한 이른바 백화만발 백가쟁명의 시절이니 오늘날에도 동주 열국지라는 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삼국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중국 고사성어의 대부분이 여기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지러운 시기라도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란은 일치를 위한 준비와 충전의 전단계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일 것이다.

조조를 일러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효웅이라 했듯이, 물론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 내겠지만 새 시대를 여는 것 또한 그 영웅이리라. 저자는 이른바 다섯종족 오랑캐(흉노, 선비, 저, 강, 갈족)가 중원을 섭렵한 이시대가 중국역사에서 폄하되고 소외된데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편에서 기술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오호를 비롯한 중국 주변민족들이 - 고구려와 발해를 포함하여 - 모두 그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어 기록을 남겼다면 오늘날 중국역사해석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저자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조조가 아방궁에 버금가는 궁전을 세웠으며, 화려 찬란하기가 당시 중국에서 으뜸이었다는 업도가 오늘날에는 한낱 옥수수밭으로 변해버려 흙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다니...아! 진실로 상전벽해란 말이 옛시인의 허사만은 아니로고! 그 옛날 빛나던 영광과 번영의 도성이 이제는 아무런 흔적도 자취도 없이 먼지가 바람에 날려가듯,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삼국지 애독자의 한사람인 나로서도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云云하는 두보의 시 '春望'과 '옛 궁궐터에는 보리만이 무성하고 벼와 기장도 기름졌구나...'하는 맥수지탄(麥秀之嘆)의 고사가 떠올라 허허로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인생도 무상하고 역사도 무상하다. 다만 먼지묻은 서책을 뒤적이며 쓸쓸히 옛 시절을 그리워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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