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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감상대관
김원중 지음 / 까치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이건 아주 옛날 이야긴데요... 천상에 거하는 신선들도 심심무료할 때 가끔은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씩하고, 아주 드물었지만 운좋게 천상의 선녀와 결혼한 지상의 사내들도 있었던, 인간들이 동아줄이나 선녀의 옷자락 같은 것을 붙잡고 천상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했던, 그런데로 아직은 천상과 지상이 서로 교통하고 있었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 비슷한 이야기입죠..네...
오랜 옛날......중국 강하군이라는 곳에서 辛某라는 사람이 술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다 떨어진 낡은 누더기를 걸쳤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이는 몸집이 큰 선비 한 사람이 와서 외상술을 좀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신모라는 사람이 또 마음이 좋은 사람이어서 거절하지 않고 선선히 외상술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 선비는 매일같이 와서 큰 잔으로 딱 한 잔 술을 마시고는 돈은 한 푼 내지 않고 휘잉~하니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하기를 반 년 넘어 했던 것인데요.....그래도 우리 신사장님은 조금도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 진정으로 복 있을진져!! 공짜술, 외상술 주는 이 세상의 모든 술집 사장님들이여!!)
그러던 그 어느날, 선비는 신사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동안 밀린 술값이 꽤 많을 것인데 내가 본디 돈 같은 것은 없으니 술값 대신으로 그림을 하나 그려 주면 안되겠남?' 신사장이 그러마고 하자, 이 선비는 손님들이 안주로 먹다가 남긴 귤 껍데기로 술집 벽에 학을 한 마리 그리니 이게 곧 '황학'이 되어부렸습니다. 그려~...... 술집을 찾는 손님들이 그 황학을 보고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를라 치면, 하~ 요상하게도 벽 속의 이 황학은 그에 맞추어 춤을 추었던 것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려고 신씨의 술집에 구름처럼 떼거지로 모여든 것은 당연한 일일것입니다. 그러는 수년이 지나는 동안 신사장은 그야말로 수억만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신회장이 되어부렸던 것입니다. (내 공짜술 외상술 줄때부텀 복 받을 줄 알아 봤음다)
그 뒤로 그 선비가 다시 신씨를 찾아오니, 신씨는 은인이라도 만난 듯 무엇이든 바라는 게 있다면 다 들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선비는 잠시 피시시~ 웃더니 누더기 옷소매에서 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했습니다. 천상의 소리에 모두들 넋을 놓은 채 듣고 있자니, 하늘로부터는 찬란한 오색 서기가 내려비추이고.... 벽에 그려 놓았던 황학은 춤을 추며 벽에서 떨어져 나와 선비에게로 사뿐이 날아 왔던 것입니다.....그리하여 마침내 선비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렸으니 신씨는 다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을 멍청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신씨가 그 자리에 루(樓)를 세우니, 이름하여 황학루입니다.
그로부터 무심한 세월은 또다시 흐르고 흘러 이제는 천상과 지상이 서로 교통하기를 그만 두어버린 그 어느 때쯤에 당나라 시인 최호가 여행중에 이 황학루를 와서 보고는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晴川歷歷漢陽樹(청천역력한양수)
春草처처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옛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가 버려
이곳에는 헛되이 황학루만 남았네
한 번 떠난 황학은 돌아오지 않는데
흰 구름만 천년두고 유유히 흐르네
맑은 물에 한양나무들 또렷하고
봄풀은 앵무주에 무성하구나
해는 지는데 고향은 어디쯤인가
강위의 안개 서리어 시름겹게 하누나
송의 엄창랑이라는 사람은 '당인의 칠언율시라고 하면 마땅히 최호의 황학루를 첫재로 꼽아야 한다'고 했다 하며, 이백도 황학루에 왔다가 이 시를 보고는 붓을 던졌다고 전해지나 그 진위를 알 수가 없으며 이 시를 모방하여 등금릉봉황대를 지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