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를 읽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할복에 대해서. 자기 배를 자기가 푹~ 찔러 쭉~ 째면 피바다야 뭐 말할 것 도 없겠고, 아프기도 엄청 아플 것이고, 창자나 내장 같은 뱃속에 있던 것들이 배밖으로 흐믈흐믈 기어나오기도 하고 하는 것인데, 혹은 까칠한 넘 중에는 기어나온 자기 창자를 집어 던져 분사(憤死)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정말 눈알이 튀어나올 일이다. 자결하는 사무라이가 배를 떡 갈라놓은 채 헐떡거리고 있으면(아시다시피 배쨌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사무라이가 배 짼 무사의 목을 한 칼에 댕강 잘라 주는 것인데 이른바 가이샤쿠라고 한다.

이 가이샤쿠라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 전언에 의하면 그 이름도 빛나는 미시마 유키오가 큰 마음 먹고 할복할 때 가이샤쿠한 아무개씨는 검도가 몇단이나 되는 유단자 임에도 다리를 덜덜 떨다가 단칼에 유키오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키지 못해 여러차례 칼질을 했다고 하니 자결하는 자의 고통을 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배가 시키는 것이 되고 보면 그 칼질에 실수가 있어서는 무사의 수치라고 할 만한 그런 것인 것이다.(역시 전언에 의하면 아무개씨는 자살방조무시기죄인지 살인방조거시기죄인지로 징역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계속해 보자면,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통이 다다미 장판위로 뚝 떨어져 이리저리 구부르기도 했을 것이고, 그 머리통을 잃어버린 원통한 목아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는 또 어떠 했을 것이며, 그 유혈낭자함과 그 피비린내하며....... 이른바 주신구라 운운하는 40여명이 떼거지로다가 동시 할복을 할 경우 그 비장장엄한 장관은 실로 두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인데, 일본 개항초기에 서양 코쟁이들이 이 할복하는 광경을 목도하고는 기절초풍 놀래 자빠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거니와 아마도 꿈에 다시 볼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할복이라는 것이 되나마나 퍼질러 앉아 배만 째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자기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일종의 허가사항이었고 말하자면 무사만의 특권이랄 수도 있는 것이니 참말로 무섭고도 대단한 특권인 것이다.(농민이나 상인에게는 할복이 허용되지 않았다)


할복하기 전에는 ‘지세이(辭世)’라고 하는 하이쿠 비슷한 짧은 글을 남겨야 하고,(자기 일생을 한두줄에 요약하는 일종의 유언이랄 수 있는데, 그 파란 많은 삶을 한두줄에 줄이자면 글 재주 없는 넘은 고민도 참 많았을 것이다) 배째는 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어쩌고 저쩌고 해야하고, 가이샤쿠하는 무사가 있어야 하고(가이샤쿠라는 것이 무나 호박 자르듯 댕강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본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힘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함과 정밀함이 요구되는 대단히 기술적인 작업인 것이다.) 가이샤쿠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무사를 대기시켜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절차와 법도가 나름으로 복잡했던 것이니, 참으로 궁금하다. 이러한 전통은 과연 어디서 유래하여 어떻게 진화 발전되어 왔는지, 일본역사는 정말 흥미롭다. 친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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