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나 저나 좀 일중독입니다.

남편이 정도는 좀 더 심하기는 하지만...

노랫말처럼 세월이 약이더군요.

요즘은 손에서 일을 놓고

가끔 목적지도 없이 훌쩍 집을 나서곤 합니다.

물론 멀리 움직이지는 잘 못합니다.

이리저리 바람부는 겨울 거리를 배회하는 비행청소년 아니, 비행중년남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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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1-2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비행중년남녀십니다!!!!!!!!!!
근데,,,,남편분이 더 멋져 보인다능~~3=3=3=333=3333=3333ㅎㅎㅎ

gimssim 2010-01-29 22:26   좋아요 0 | URL
으흠~~ 남편이 더 멋져보인다는 건, 분명히 칭찬일텐데 왜 이렇게 배가 살살 아픈지 모르겠어요. ㅎㅎ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의 수없는 발짓이 있어야 하지요.
 






바이칼 호수는 호수이긴 하지만 워낙 넓어서 바다처럼 바도가 칩니다. 그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은 모습입니다.

아! 바이칼, 바이칼

시베리아의 진주‘ ’거룩한 바다‘ 등으로 불리고 있는 바이칼은 

우리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놀라움 그 자체이다.

세계 식수의 80%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양질의 많은 물을 가지고 있고,

총면적은 3만 1500㎢로 세계 호수 중 8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수량은 2만 3000㎦이고 총 길이는 2000㎞이다.

최대수심은 약 1600m이며 최대투명도는 약 40m로 세계 최대이다.

남북길이는 636㎞, 폭은 27-80㎞사이로

남서방향에서 북동방향으로 활처럼 길게 휘어져 있다.

바이칼 호수로는 336개의 강이 흘러들며 그중에 가장 큰 강은 세렌가 강이다.

그리고 바이칼에서 흘러나가는 강은 유일하게 앙가라 강 하나이다.

바이칼에는 22개의 섬이 있으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섬은 알혼섬이다.

오염되지 않아서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울 같습니다.

그 바이칼에 드디어 도착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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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 -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박재동 글.그림 / 열림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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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도 의사들이 청진기를 쓰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병원에 가면 의사는 아이의 윗도리를 들치고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댔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아이의 가슴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진단을 내렸다.

박재동의 짧은 글과 그림을 보며 그 모습을 떠올린 것은 왜일까. 사회의 구석구석을 조망하는 그의 마음의 눈을 감지해서일 것이다.
박재동의 <인생만화>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한겨레신문>에 '박재동의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그림과 글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그의 그림과 글에는 “진짜‘ 사람이 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잘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미리 예행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밥 먹는 자리에 있으면 그저 슬그머니 다가가서 남은 숟가락을 들고 함께 먹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을 그런 사람이 있다.
또 그의 그림과 글에는 꽃도 있고, 꽃게도 있고, 광어도 있고, 너구리도 있고, 한라봉도 있다.

일어서는 도로를 헤치고 ‘퇴근길’을 지나면 다음날, 황금빛 황홀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 나면 꿈결인양 달빛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아마 박재동은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괜찮아, 넌 날 이길 수없어!’

그리고 또 그림을 따라 가노라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도 있고, ‘부처님 말씀’도 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 남편은 보던 지방 신문을 끊고 그 신문을 신청했다. 그동안 여기저기 숱하게 이사를 다녔지만 신문을 바꾼 적이 없다. 하물며 어느 곳에서는 한겨레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배달불가!’의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늦게 받는 것을 조건으로 신문을 보기도 했다. 하루 늦게 보는 신문이 무슨 신문이람!

사실 이 책에 실린 것은 신문에서 거의 다 본 것들이다. 그러나 한권으로 묶여진 책으로 소장할 가치가 있다. 사진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때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사고도 노력하지 않으면, 편식하는 사람이 영양불균형에 걸리듯 외곬수가 되기 싶다. 그전에는 앞만 보고, 내 기호와 소신대로 사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여하한 노력으로도 고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큰 강에 어느 정도의 지류가 있어야 건강한 강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끔 별 용무는 없지만 대여섯 집을 지나서 있는 우체국에 간다. 우체국에서 조,중,동을 훑어본다. 대충 제목을 보고 몇 개의 칼럼을 읽는다. 같은 사안을 그렇게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박재동은 세상을 현미경으로 본다. 그리고 망원경으로도 본다. 나는 그의 그림과 글의 힘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을, 사물을, 또 그 사이의 관계에 왜곡이 없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상이라는 우물에 두레박을 담그고 살아있는 우물물을 퍼내시는 당신께 박수를 보낸다. 






 

 

 

 

 

  

 

 

 

   

욜해 연초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아마 선생의 최근 모습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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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오다가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2층짜리 건물의 벽에 새겨놓은 초상화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MB의 고향도시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 자동차로 십여 분 거리에 MB의 고향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시 산 곳이지요.  

'노사모'였다가 결국 '지못미'의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 살벌한 땅에 이런 용감한 분이 계셨다니요.  

지난 5월, 추모식장에 갔는데 물어물어 간 곳이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허름한 건물의 3층 다방이었습니다.  인구 50만인 도시에서,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분의 추모식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시민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역 앞 한 쪽 귀퉁이라고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사용불가! 나중에 문화예술회관에 한 곳을 열긴했답니다. 

남편은 서울에 살때 '조순' 서울시장을 찍었는데 당선이 되었지요.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 남편은 좀 단순해서 농담으로 '우리 세상이 오고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진영 봉하마을에 달려가기도 했지요. 그땐 저희가 밀양 근처 청도라는 곳에 살았었거든요. 

그러던 것이 한미 FTA, 북핵문제 등등 소신껏 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실망했드랬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패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정치적인 기반이 없었다고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그를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임기 말, 그분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을 읽을 수 있어야 했었는데 저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차라리 눈과 귀를 막고 사는 편을 택했지요.

지역 이기주의를 없애고, 국토의 균형 발전을 이루고자,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자,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자 하신 그분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단단하고, 너무 세련된 세상이었나 봅니다. 



  

 카메라를 들고 가면 거기에 마음 빼앗길까봐 큰 카메라는 두고 작은 똑딱이 하나를 들고 남편이랑 봉하마을에 갔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햇빛 속에서 기다려서 조문을 마쳤습니다.  

남편 손에 들려있던 국화, 수없는 만장 사이에 펼쳐친 가시는 분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지막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로 사람이 희망이지 않습니까.  

벽에 새겨놓은 초상화를 보면서, 바람 부는 거리에 한참이나 서서 사람이 수단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놓친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기회가 되었습니다. 메스컴에서는 늘 잘사는 것에 대해서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잘 살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그냥 두어야 마땅한 작은 시내 같은 강들도 정비를 하면서 100억의 돈을 쏟아붓습니다. 그러면서 제도적인 보호를 받고, 작은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아, 사람 사는 세상을 꿈 꾸었던 노무현.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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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이런......

gimssim 2010-01-30 18:05   좋아요 0 | URL
다시 그런 대통령을 우린 가질 수 있을까...
마음 저려옵니다.
 

 

한 지붕 두 스타일

동물의 세계에는 개체간의 거리와 관련된 몇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야생동물들은 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도망가지 않는데 이 거리를 '도주 거리‘라고 한다는군요.
침입자가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가 일정거리 이내로 들어서면 공격을 하는데 이를 ‘싸움거리’라고 한다고 해요.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써온 우리 부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군요.
남편이 ‘원숭이 띠’ 제가 ‘개 띠’여서 그럴까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겠어요?
그러나 고사성어에도 등장할 만한 그 ‘견원지간’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봐요.
‘도전과 응전’의 삶이 많이 무디어져서 어떨 때는 너무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가 반문해 보곤 합니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감을 먹습니다.
남편은 껍질을 깎지 않은 쪽, 아내는 껍질을 깎은 쪽입니다.
‘멸공’과 ‘통일’을 제일의 이데올로기를 삼던 때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라 남편은 무엇이든 ‘통일’을 좋아합니다.
비단 우리 집 남편 뿐만은 아닐 겁니다.
중국집에 가서도 ‘자장면으로 통일!’. 아니면 ‘짬뽕으로 통일!’을 외치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러니 한 접시에 두 스타일이라니 그전 같으면 용납되지 않았을 겁니다.
남편은 껍질에 영양가가 많으니 껍질도 먹어야 하는 쪽이고, 아내는 안먹으면 죽는 음식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씹어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껍질까지 먹을 게 무어냐는 것이지요.

그전 같으면 '싸움 거리'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관철시키느라 전쟁도 불사했겠지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젠 그냥 넘어갑니다.
아니 그것보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임계 거리’라는 게 있다는군요.
서로 잘 지내면서 공격행동을 하지 않는 거리하고 해요.

우리 부부는 그 ‘임계 거리’를 터득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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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27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중전님 덕분에 웃습니다.
부군보다 제가 조금 위이군요..

저는 감 깎아먹는 쪽입니다. 하하


gimssim 2010-01-27 21:01   좋아요 0 | URL
웃음, 행복하게 사는 것...이런 것들이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제 글을 보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저도 행복합니다.

라로 2010-01-2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중전님의 글은 읽기도 편하고 재밌어요~.^^
더구나 배우는것도 있고!!!!!ㅎㅎㅎ
저도 님보다는 남편과 산 시간이 작지만 어느새 임계거리를 터득하고 있나봐요~.ㅎㅎㅎ

gimssim 2010-01-27 21:03   좋아요 0 | URL
부부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지혜는 세월하고는 꼭 비례하진 않지요.
읽기 편한글, 재밌는 글 많이 쓰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순오기 2010-01-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우리 부부도 함께 산 세월이 20년이 넘으니 자연스레 임계거리를 터득한 듯합니다.

gimssim 2010-01-28 06:01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아마 개인차가 있을 듯 합니다.
저흰 거리를 잘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에 싸움 거리 안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