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지붕 두 스타일
동물의 세계에는 개체간의 거리와 관련된 몇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야생동물들은 포식자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도망가지 않는데 이 거리를 '도주 거리‘라고 한다는군요.
침입자가 다가가도 가만히 있다가 일정거리 이내로 들어서면 공격을 하는데 이를 ‘싸움거리’라고 한다고 해요.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써온 우리 부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군요.
남편이 ‘원숭이 띠’ 제가 ‘개 띠’여서 그럴까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겠어요?
그러나 고사성어에도 등장할 만한 그 ‘견원지간’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봐요.
‘도전과 응전’의 삶이 많이 무디어져서 어떨 때는 너무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가 반문해 보곤 합니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감을 먹습니다.
남편은 껍질을 깎지 않은 쪽, 아내는 껍질을 깎은 쪽입니다.
‘멸공’과 ‘통일’을 제일의 이데올로기를 삼던 때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라 남편은 무엇이든 ‘통일’을 좋아합니다.
비단 우리 집 남편 뿐만은 아닐 겁니다.
중국집에 가서도 ‘자장면으로 통일!’. 아니면 ‘짬뽕으로 통일!’을 외치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러니 한 접시에 두 스타일이라니 그전 같으면 용납되지 않았을 겁니다.
남편은 껍질에 영양가가 많으니 껍질도 먹어야 하는 쪽이고, 아내는 안먹으면 죽는 음식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씹어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껍질까지 먹을 게 무어냐는 것이지요.
그전 같으면 '싸움 거리'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관철시키느라 전쟁도 불사했겠지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젠 그냥 넘어갑니다.
아니 그것보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임계 거리’라는 게 있다는군요.
서로 잘 지내면서 공격행동을 하지 않는 거리하고 해요.
우리 부부는 그 ‘임계 거리’를 터득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