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품절


저녁이 다가오면 쓸쓸해지는 짐승은 인간만이 아니라고 한다. 저녁이 오면, 재자연의 모든 식물과 짐승들의 눈빛이 순해지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의로운 그 눈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26쪽

기쁨과 행복은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는 것에 있다.
-30쪽

우리가 진정 만나고 싶어 하는 그 인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우리가 지금 시간의 강을 건너며 우리의 어깨에 지고 가는 사람들의 무게가 아닐까. 우리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이 되어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 인생의 인연들을 숱하게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사람이 우리 생에 절말 중요한 인연이란 걸 모르고 지나쳐왔을 뿐.
-52쪽

살아가다 보면 슬픔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슬픔의 손아귀가 너무나 단단하여 우리를 꽁꽁 붙잡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 슬픔 앞에 조금 더 겸허해질 수 있다면 슬픔은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희망의 여린 불빛으로 피어날지도 모른다.
-66쪽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붓인가, 아니면 무기인가? 우리는 지금 타인의 삶에 아름다운 색채를 그려주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가?
-97쪽

적막이란 가슴에 새 소리가 쌓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104쪽

사랑은 지금 당신 곁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 속에 있다. 그 사람의 환한 미소 속에 있다.
-122쪽

겸손은 겸손이 없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다. 우리 모두 낮은 자리로 돌아가 사랑이라는 작은 몸짓 하나를 배울 수 있다면 세상엔 겸손이란 단어 또한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127쪽

하지만 가족 사랑에 팔불출이란 없다. 가족은 나의 영원한 동지이자 우군이자 나의 어깨뼈이며, 나의 척추와 내 머리에서 자라나는 검은 머리카락이자 나의 눈동자, 내 몸을 이루는 그 모든 기관이기 때문이다.
-236쪽

우리가 살았던 고향의 풍경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오래전 우리들 마음속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사람이 이사를 하면 그 사람과 살았던 풍경들도 그 사람을 따라 이사를 간다. 모름지기 풍경과의 인연이 모두 그러하다.
-300쪽

열매가 오기 전에 꽃들이 먼저 온다. 그리고 꽃들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꽃이 되어 꽃들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수많은 길 위에서 꽃들은 우리와의 인연을 기다리며 한 송이 꽃잎들로 피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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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07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어요????

gimssim 2010-02-07 06:58   좋아요 0 | URL
네. 며칠간 조용한 곳에 갔었거든요. <인연> <쓸쓸해서 머나먼> <오늘도 걷는다> 다 읽고, <불안>은 가져갔지만 못읽었어요. 짬을 내서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학년 아줌마의, 반란이거나 반항이거나   

지난 학기부터 여성문화회관에서 사진을 배우고 있어요.
강좌를 여는 곳이  '문화회관'이잖아요. 그러나 적당히 즐기며 배우는 '문화'의 수준이 아니랍니다.
젊은 선생님이 새로 오셔서 숙제를 내주었어요.
꽃잎이나, 풀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작은 그릇에 물을 부어 얼려오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소재로 삼아 조명장치를 해서 사진찍기 실습을 하신다는 거에요.
상상력이 빈곤한 아줌마라 실습이라면 무조건 야외로 나가야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방법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 이줌마는 좀 답답해졌어요.
이렇게 좋은 가을날임에도 불구하고 만사가 심드렁한게 의욕이 없었어요.
'이 나이에 내가 숙제를?'
나이를 앞세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제가 바로 그러고 있더라는 거지요.
아니 그것보다는 학창시절을 결석이나 지각은 물론 조퇴한 번 하지 않고 모범생으로만 살아오지 않았겠어요?
물론 학교가는 날이 아닌 날엔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영화관에도 가곤 했지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저보다도 더 모범생인거 있죠?
여행은 커녕, 영화관도 별로 가본 사람이 아니에요.
두 범생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더니 이 딸, 아들 역시 '원조'범생이는 '저리가라'였어요.
그렇게 몇 십 년을 살아왔는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어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다는 것이지요.
'범생이'인 우리의 가치관이나 시각으로 보니까
약간의 일탈이나 게으름, 불성실, 무책임을 도무지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거지요.

남편은 리더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불을 보는 듯 뻔한 거지요.
그런데 남편이나 제가 힘든 것도 만만하지가 않아요.
왜 좀 열심히 하지 않느냐, 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느냐, 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느냐, 왜 변명이 많으냐...못마땅한 거 투성이지요.
그러니 인간관계가 원활하지가 않아요.
나이가 드니까 바른 것, 옳은 것, 정확한 것, 완벽한 것에서 좀 놓여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거나, 조금 더딘 것이 무슨 그리 큰 문제가 되겠어요?
비로소 주위의 분들에게 좀 편안하게 대해야겠다는 자각이 생겼어요.
나는 사랑의 방식이지만 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무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도 좀 헐렁하고 느슨하게, 때로 일탈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말하자면 내 주위의 다른 분들과 같은 '패밀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결론은 '숙제 안하기'입니다.
좀 어긋나게 가보자는 거지요.
그런데 범생이가 숙제 안하기는 정말 힘들더군요.
숙제를 안하고 버티는 며칠동안 밤마다 숙제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래도 범생이 특유의 고집으로 숙제 안하고 수업에 갔었습니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해 온 '숙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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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5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학창시절 숙제도 안하고 지냈으면 지금은 후회돼서 열심히 숙제할 텐데 반대로 사셨네요.
그래도 남들이 해온 숙제 덕분에 멋진 작품을 건지셨네요.^^

gimssim 2010-02-06 00:00   좋아요 0 | URL
제가 좀 거꾸로 살고 있죠? 학창시절 좀 적당히 살았으면 지금 적당히 사시는 분들 이해를 할텐데 그게 잘 안되서 제 옆에 사는 사람들이 좀 괴롭지요.

꿈꾸는잎싹 2010-02-0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뜻보기엔 압화작품처럼 보이는데요.ㅎㅎ
저도 사진찍는 것 아주 좋아해요.~~

gimssim 2010-02-06 17:37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는 건...행운이지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요.

2010-02-0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7 0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아 외로움 

일몰 속의  

또 한그루의 나무입니다. 

명상도 끝내고 

속울음도 멈추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가서  

밥 먹고 

담소하고  

잠 잘 것입니다. 

그러나  

홀로여서 더욱 행복할 이 나무는  

다시 일출을 맞이하겠지요.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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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싸게 팝니다'

오래 전, 한 지방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대요.
'남편을 싸게 팝니다. 45세의 건장한 남자. 사업 잘함. 취미 골프. 성수기에는 장기외출도 함. 세일 또는 교환도 가능'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얘긴 아니니까요.
캐나다 벤쿠버는 골프 천국이라더군요. 그래서 남편이 골프에 몰두한 어느 부인이 화가 나서 이런 기사를 실었대요.
사람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전 차라리 골프 과부나 낚시 과부가 부러운 사람이에요.
제 말을 들어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오늘은 저의 답답한 심정을 좀 얘기해야겠어요.

그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어요.
우리는 무슨 연유에선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으르렁대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원숭이 띠, 제가 개 띠여서 그런가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겠어요?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우세하냐?
지금 생각하면 분명하게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말도 되지 않는 이론들을 가지고 나와서 상대를 몰아붙이곤 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짝을 찾을 나이가 되자 고민에 빠졌어요.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 임자가 있는 몸이 되면 어떻게 만나서 남자와 여자 중 누가 우세한가의 결론을 낼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의기투합하여 결혼을 했지요.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들었는지 결혼할 당시 우리는 참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친구처럼 늙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 반듯한 사고를 가졌으니 불의한 일로 마음 쓸 일이 없을 터이고,
책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 다른 취미 때문에 생이별을 반복할 일도 없다 싶었지요.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만날 때마다 다투곤 하던 일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거라고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어요.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몇 시에 오느냐고 묻는 건 기본이고 빨리 오라는 소리를 서너 번은 하지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혼자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기차를 탔어요.
한 시간 남짓 가는 사이 남편에게서 세 번이나 전화가 온 거 있죠.
저는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기차나, 버스, 지하철 안에서는 진동으로 조정해 놓고 잘 받지 않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큰 소리로, 나 어디 가고 있어, 라면 먹지말고 밥 먹어, 따위의 소리를 거의 무방비 상태로 듣고 있어야 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죠.
혹시 급한 일이 있나 싶어 전화를 해 보았더니 남편 말에 기가 찼어요. 어디쯤 가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했대요. 그게 어디 궁금할 일인가요?

학창시절, 수학은 젬병이라도 국어 성적은 괜찮았는데 어쩐 일인지 주제 파악을 잘 못하고 자신은 썩 괜찮은 남편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남편은 별로 자상하지 않고 다소 이기적인 경상도 남자예요. 게다가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아주 우습게 보지요.
신혼 초, 남편이 출근하면서 저에게 하는 말은 으레 ‘놀고 있어’ 였어요.
처음에는 심상하게 들었는데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며칠 간 골몰하다가 드디어 맞불을 놓지 않았겠어요.
여느 날처럼 ‘놀고 있어’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의 등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지요.
"당신도 놀다 와."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에요. 제 말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그런 집에서 자랐지요.
그런데 남편은 유교 전통을 가문의 영광처럼 자랑하는 집안의 장손이 아니겠어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함께 외출을 하실 때도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의 다섯 발자국쯤 뒤쳐져서 걸어가야 하는 그런 집이지요.
서로 다른 그런 환경에서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지내다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으니 어느 하룬들 그냥 넘어가는 날이 있었겠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바람이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한 집에 한 사람씩만 똑똑하자며 입에 거품을 물곤 하지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라면서요.
부모님이 등을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고 제가 우겨서 한 것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어요?

제 친정어머닌 늘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그저 아침 밥 먹고 나가서 저녁 때 들어와야 한다구요.
그러나 사무실이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곤 하지요.
"여보, 어딨어?" 그것도 이삼십 분 간격으로 말이지요.
아무래도 의처증인 것 같다구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게 아닌가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일 때문에 삼사일 씩 집을 비울 때는 집에 전화 한 통 없거든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 방을 따로 써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책 읽고, 글을 쓰고, 음악 듣고, 영화 보기를 즐기지요.
누가 옆에서 얼쩡거리면 답답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 남편은 부부란 항상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올 때가 많아요. 누가 이마에 손 얹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벌써 모임이 끝났어?" 물으면,
"빨리 집에 오고 싶어서 밥 안 먹고 왔어. 밥, 줘!"
누가 우리 남편 좀 말려 주세요.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우리 부부를 보고 전생을 믿는 친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 주었어요.
'아무래도 전생에 너는 별당아씨, 네 남편은 머슴이었나보다.
머슴인 주제에 언감생심 별당아씨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있었겠냐?
그래서 이생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어 그 원을 풀고 있는 것이겠지.
전생에 머슴이랑 사고를 쳤으면 액땜을 했을 텐데 네가 요조숙녀 짓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걸. 그러니 어쩌겠냐? 네가 참고 살아야지.'
그 말을 제게서 전해들은 남편은 정말 가관이었어요.
여느 집의 남편들이었으면 화를 벌컥 내며 "뭐라, 내가 머슴이었다고?" 열을 낸 터인데
우리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면서 "맞아, 그랬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옛날 문헌에서 내 이름과 똑같은 머슴의 이름을 본 것도 같아."
한 술 더 뜨더군요.
맨 처음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소개한 캐나다의 그 남편도 신문에 난 그 광고를 보고는 집에 와서 자기 부인한테 이랬다는 거 아닙니까?
"여보, 아직 안 팔렸어?"

근데 정신과 의사인 제 친구 말이 우리 부부가 건강한 부부라는 겁니다.
전생에 머슴이었다고 하는 데 화를 내는 남편이나 신문에 광고를 낸 부인을 나무라는 남편과는 절대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고 해도 사는 것이 이렇게 갑갑한 건 어쩌구요.
저희 친정 부모님은 몇 해 전에 모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남편과 같이 살고 있어요. 아직 막내가 대학생이니 어쩌겠어요.
결혼이라도 시켜놓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수 밖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지내고 있었어요.
소수의 편에 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요.
다수의 쪽에 서서 익명성을 유지하고 살아가기로 작정을 한다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가요.
그러나 남편은 왜곡된 사회현실이나 구조적인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피하지 않고 ‘양심적인 소수’가 되고자 하지요.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온 힘일지도 모르겠어요.
나이 탓일까요?
이제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행동반경을 줄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만 가끔 만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쯤에서 남편과의 소모전도 막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보다 더 시골에 살고 있는 친구네를 방문했어요.
온통 문을 열어 놓은 채 친구는 뒷산에라도 갔는지 집에 없었어요.
친구가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면서 근처를 산책하다가 좁은 신작로를 건너 나지막한 둑 위로 올라섰어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떠올랐어요.
어릴 적 외갓집에서 멱감고 다슬기 줍던 유년의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풀 섶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몇 마리의 염소들조차도 반가웠어요.
그런 시내를 끼고 좁은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어요. 그 길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길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겨우 야트막한 둑 하나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길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그건 인정해야 하지요.
'내 땅은 못 다친다. 네 땅 내놔라.' 하며 상대의 마음에만 내 마음대로 길을 내느라 포클레인으로 온통 파헤치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마음 속에 우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뭔가 달라지기야 하겠어요. 마음의 한 귀퉁이를 조금 비워두어야겠다는 생각 정도지요.
남편이나 저나 우월성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성의 문제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겠지요.
그게 쉽지는 않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하잖아요.

*** 그 별당아씨는 지금은 안방마님이 되어 아직도 그 머슴이랑 살고 있답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길은 여전히 아득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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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
저는 한때 '전생의 웬수'였다보다고 이를 득득 갈며 살았는데,
큰언니가 몇 년만 참으면 '연민'으로 산단다~ 하더군요.
이제는 쉰이 넘어 연민으로 사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gimssim 2010-02-05 01:48   좋아요 0 | URL
저도 천생연분인지 평생웬수인지 하여튼 그 인연과 며칠 쉬러 집을 나왔어요. 내일이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나와서 보니 저는 '자는 것'에 목숨걸고 남편은 '먹는 것'에 목숨거는 거 있죠? 참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1시30분에 육개장으로 점심, 5시에 사발면 하나를 먹고 6시에 배고프다고 밥먹으러 가자네요. 컨디션이 시원찮아 비몽사몽하고 있는 저를 두고 혼자 왕복 40킬로를 운전하고가서 소머리곰탕을 먹었다네요.우리 남편 만세! 이래야 할까요?

순오기 2010-02-05 23:57   좋아요 0 | URL
하하하~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목숨 걸었다.
우리부부는 뭐에 목숨 걸고 살았는가 돌아봐야겠어요.
남편 분 왕복 40킬로~ ^^ 만세를 불러 드려야죠.

gimssim 2010-02-06 00: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저는 며칠간의 가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어요. 남편과 함께 한 가출이라 밥 먹는 거 땜에 좀 귀찮긴 했지만 바람 좀 넣어왔으니 그것 빠질 때까지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자주 들러주시니 고맙습니다. 꾸벅^^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로 우리들을 태운 우아직(우리나라 봉고 정도)이 달립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사람이나 차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고물 차를 우리나라에서 달리라고 한다면 온통 접촉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4륜구동이나 괜찮다고 태클 걸지 마십시오, 그냥 제 생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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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1-31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집니다.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걷고 싶어요.^^
감기 조심하세요~

gimssim 2010-01-31 20:44   좋아요 0 | URL
겨울에는 아무래도 추워야...하다가 올 겨울은 정말 추웠지요.
또 그런 한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봄을 기다립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