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아줌마의, 반란이거나 반항이거나
지난 학기부터 여성문화회관에서 사진을 배우고 있어요.
강좌를 여는 곳이 '문화회관'이잖아요. 그러나 적당히 즐기며 배우는 '문화'의 수준이 아니랍니다.
젊은 선생님이 새로 오셔서 숙제를 내주었어요.
꽃잎이나, 풀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작은 그릇에 물을 부어 얼려오라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소재로 삼아 조명장치를 해서 사진찍기 실습을 하신다는 거에요.
상상력이 빈곤한 아줌마라 실습이라면 무조건 야외로 나가야만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방법도 있더군요.
그런데 이 이줌마는 좀 답답해졌어요.
이렇게 좋은 가을날임에도 불구하고 만사가 심드렁한게 의욕이 없었어요.
'이 나이에 내가 숙제를?'
나이를 앞세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제가 바로 그러고 있더라는 거지요.
아니 그것보다는 학창시절을 결석이나 지각은 물론 조퇴한 번 하지 않고 모범생으로만 살아오지 않았겠어요?
물론 학교가는 날이 아닌 날엔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영화관에도 가곤 했지만.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저보다도 더 모범생인거 있죠?
여행은 커녕, 영화관도 별로 가본 사람이 아니에요.
두 범생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더니 이 딸, 아들 역시 '원조'범생이는 '저리가라'였어요.
그렇게 몇 십 년을 살아왔는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어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다는 것이지요.
'범생이'인 우리의 가치관이나 시각으로 보니까
약간의 일탈이나 게으름, 불성실, 무책임을 도무지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거지요.
남편은 리더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불을 보는 듯 뻔한 거지요.
그런데 남편이나 제가 힘든 것도 만만하지가 않아요.
왜 좀 열심히 하지 않느냐, 왜 시간을 지키지 못하느냐, 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느냐, 왜 변명이 많으냐...못마땅한 거 투성이지요.
그러니 인간관계가 원활하지가 않아요.
나이가 드니까 바른 것, 옳은 것, 정확한 것, 완벽한 것에서 좀 놓여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거나, 조금 더딘 것이 무슨 그리 큰 문제가 되겠어요?
비로소 주위의 분들에게 좀 편안하게 대해야겠다는 자각이 생겼어요.
나는 사랑의 방식이지만 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무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도 좀 헐렁하고 느슨하게, 때로 일탈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말하자면 내 주위의 다른 분들과 같은 '패밀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결론은 '숙제 안하기'입니다.
좀 어긋나게 가보자는 거지요.
그런데 범생이가 숙제 안하기는 정말 힘들더군요.
숙제를 안하고 버티는 며칠동안 밤마다 숙제하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래도 범생이 특유의 고집으로 숙제 안하고 수업에 갔었습니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해 온 '숙제'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