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법은 어떤가요?

*** 며칠 전 글샘님의 서재에서 ‘사랑법’에 관한 페이퍼를 읽었어요.
학창시절 공부하다 지치면 앞부분을 무던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 침묵할 것 //
또는 꽃에 대하여 / 또는 하늘에 대하여 /
또는 무덤에 대하여 //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 //
그대 살 속의 /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
흐르지 않는 구름 /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
쉽게 꿈꾸지 말고 / 쉽게 흐르지 말고 /
쉽게 꽃피지 말고 //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
잠들고 싶은 자 / 홀로 잠드는 모습을 //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 뒤에 있다//

이런 사랑법은 어떤가요?

몇 달 만에 아들이 왔어요. 방학을 해도 바로 ROTC 훈련을 받느라 이제사 왔지요.
그런데 185센치 키에 73킬로의 몸으로 왔군요.
목표를 세웠어요. 하루에 1킬로씩 살 찌우기.
무던한 아이라 어미가 이것저것 해 주는 대로 잘 먹습니다.
집에 있을 시간이 일주일 밖에 없다니 어미인 저는 애가 탑니다.
옆에 있는 남편도 거듭니다.
맛있는 콩국수를 먹으러 가자는군요.
그리고 산중턱에 있는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구요.
친구들끼리 갔었는데 아마 마음에 들었던지 저나 아들에게 콩국수 맛보이고 찻집도 구경시켜주고 싶은가봐요.
저는 그렇게 이해하는데 아마 아들녀석은 아닐 겁니다.
한 달 내내 뜨거운 햇빛 속에서 딩굴다 왔는데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가 사랑법이 아니겠는지요.
좀 쉬도록 가만히 두는 게 아들을 위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남편의 ‘사랑법’을 누가 말리겠어요.
남편도 눈치가 보이는지 주방에 있는 저에게 와서 자꾸만 옆구리를 찌릅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총대를 매었습니다.
“아들, 십 분 뒤에 출발!”
속이 깊은 아이라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겠지요. 별 말없이 따라 나섭니다.
그렇게 해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한 시간을 달려 오천 원 짜리 냉콩국수를 사먹고 아슬아슬 산중턱에 놓여있는 찻집으로 갔습니다.

그 찻집에서 딸아이가 빠진 이런 가족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런 사랑법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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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7-2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시예요. 강은교 님 시였던가.. 가물가물하네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에서 항상 가슴이 뭉클해져버려염.

언니, 사진 너무 좋네요. 글두 너무 좋고.
아침마다 읽는 소소한 행복인지라 기쁩니다.

gimssim 2010-07-28 14:42   좋아요 0 | URL
네 강은교의 <사랑법>이지요.
글쎄요...요즘 같으면 사실 하루에 한 편 정도 소소한 행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꿈꾸는섬 2010-07-2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샘님 서재에서 보고 제가 좋아하던 시를 만나 반가웠었는데 중전님 서재에서도 보네요. 아드님이 너무 멋지게 잘 자라주었네요.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도 느껴지는걸요. 일주일동안 아드님 맛난거 챙겨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시겠어요.^^

gimssim 2010-07-28 21:17   좋아요 0 | URL
으흠~~제가 세상에서 잘한 일 중 하나가 딸, 아들 낳은 거, 운전 배운 거라면 말...되나요?
요즘 더운줄도 모르고 열심히 요리 만들고 있어요.

순오기 2010-07-2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창밖에서 저렇게도 찍을 수 있는 거군요.^^
맛난 거 먹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모의 사랑법을 헤아려주는 아름다운 청년이네요.
소소한 행복... 이런 맛에 사는 거겠죠.^^

gimssim 2010-07-28 2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복은 절대 거창하거나 크고 무거운 게 아니에요.
가끔 창에다 카메라 드리밀고 자화상을 찍기도 합니다.

blanca 2010-07-2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시... 저 사진....너무 너무 너무 좋아요. 순오기님이랑 중전님이랑 보면 저는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gimssim 2010-07-29 07:21   좋아요 0 | URL
blanca님, 순오기님은 몰라도 저는 함량미달일지 몰라요.
나중에 책임 안집니다.

순오기 2010-07-31 07:47   좋아요 0 | URL
헉~ 별 말씀을요.
중전마마는 알라딘 아줌마들의 룰모델이구만요.^^

라로 2010-07-2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이 두분의 장점만 닮으신거 같아요!!!!

마주 앉은 부자의 모습이 넘 멋져요!!!!^^

gimssim 2010-07-29 07:2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무릇 아이들은 부모보다는 더 나아야겠지요.

글샘 2010-07-29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 님도 제 서재에 오셨군요. ^^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가 저렇게 간절했던 적은 첨이네요. ㅎㅎㅎ
사진, 참 멋집니다. ^^

gimssim 2010-07-29 10:45   좋아요 0 | URL
시 강의 잘 보고, 듣고 있습니다.
좀 설렁설렁(?) 공부할 수 없다는게 흠이라면 흠이더라구요.
요즘은 집중이 좀 잘 안되서...또 변명을 해봅니다.

비로그인 2010-07-2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ROTC를 하는군요.
나중에 멋진 장교가 되겠습니다.
185에 73이면 늘씬한 체격이군요.
보기에 좋겠어요. 하하

아빠가 보는 아들은 이쁜 딸과는 또 다르지요..


gimssim 2010-07-29 10:47   좋아요 0 | URL
인천공항에 갔었는데 가수 비가 대형브로마이드로 서 있더라구요.
못말리는 순발력으로 이렇게 소리쳤어요.
"아, 우리 아들 갖다좋으면 더 나을텐데..."
그러다가 미운털 박혀 비행기 못탈뻔 했음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