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내야 할 백 살


지난 연말 여고동창 모임에 갔더니 제 옆의 한 친구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얘, 우린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산대.”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지금부터 다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지금처럼 장성하기까지 키워내고도 세월이 남는다는 거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결혼은 됐거든” “남자도 됐거든” 이야기들을 했어요.
부부의 속사정이야 부부만이 알 터이지만 친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만하면 남편들이 괜찮은 편이고 또 자기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터인데도 이구동성으로 “남자는 됐고” 하는 겁니다.

저는요?
저도 우리 남편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저도 그만 “됐고”입니다.
여자인지라 우리나라 정서상 결혼한 여자들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여 끌어가기가 힘듭니다. 더구나 우리 남편은 잔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어서 불교식으로 말해 다시 태어난다면 혼자 살아서 일에 한 번 마음껏 올 인하여 살고 싶은 소망이 있지요.

얘기가 잠깐 옆길로 빠졌군요.
친구의 얘기를 듣고 몇 달이 흘렀는데도 늘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것이 저의 화두입니다.
그저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면 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건조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여유를 갖게 하고, 이해의 폭도 넓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되게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점점 더 열정이 없어진다는 데 있어요. 이게 요즘 저의 고민입니다. 맛난 음식도, 좋은 옷도, 좋은 구경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저께 ‘찍사’의 자격으로 어느 모임에 갔었어요,
‘어르신 마을’이라는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한국무용을 배워 그 시설의 어르신들 앞에서 한 달에 두 번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지적 장애우들이 사물놀이를 배워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 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얼굴에는 제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정과 기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가볍기도 하고 또 한 편의 마음은 무겁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얻었는데, 얻은 답대로 살기 위해서 피곤한 팔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야 하는 데...지금 너무 힘이 없다는 겁니다.
아, 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 할까 봅니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0-07-1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부터의 저의 오랜 지기 하나가 엊그제 아기를 낳았습니다. 마흔 다섯에 첫 아이를 낳은 것이지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아이들이 고등학생이고,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있는 제가 그나마 기억할 거라면서 이것 저것 아기에 대한 것을 묻는데 저도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시간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어요.
열정이 사라져감은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전 가끔 다행스럽게도 여겨지네요. 그런데 꾸준히 사진을 찍으시고 올리시고 글을 쓰시는, 이것도 중전님의 열정아니신지요? ^^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못하겠다, 저는 자주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존경스러웠거든요.

식사 든든하게 하시고 힘을 회복하세요.
오늘도 사진 잘 보고 갑니다.

gimssim 2010-07-12 19: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냥 '씩씩한 열정'이라면 또 어찌 주체를 하겠어요.
조금 내리막이면 내리막인대로 조심하며 천천히 걸어야겠지요.
그래요. '밥씸'으로 버텨야지요. 이 여름엔...

마녀고양이 2010-07-1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됐고" 랍니다. ㅎㅎ
하지만 다시 태어나두 결혼을 한번쯤 할거 같아요, 다만 두번은 안 하겠습니다.
훌훌 여행가고 시퍼서요.

gimssim 2010-07-12 19: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동지가 계시니 좋습니다.
근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결혼도, 남자도 됐고 했지만
사랑은 됐고가 아니라는 거지요.
세월이 더 흘러 '물좋은 노인대학'에 단체입학하게 되는 건 아닌가 몰라!

프레이야 2010-07-12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어간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네요.
지금 다시 새롭게 누군가와 산다면 완전히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장수가 고문이 되지는 않으려면 건강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고
몸과 마음이 잘 맞는 동반자, 경제적인 면 등.. 두루 필요한 게 많을 거 같아요.
마냥 오래 살고만 싶진 않은데.. 모순이지요.^^
저렇게 늙으신 분들 뵈면 복잡한 마음이에요.

gimssim 2010-07-12 19:2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누구와 다시 산대도 다르게 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환경이나 상대에 따른 변화가 있기는 하겠지만 '나'인 것이 어디 가겠어요?
저의 문제는 연세드신 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있어요.
서서히 마음운동을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비로그인 2010-07-1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열정(passion)이 중요하지요. 하하
열정이 없으면 이미 죽은 것. 좀비죠.


gimssim 2010-07-12 19: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열정...어디가면 파나요?

비로그인 2010-07-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정말 좋아하고 오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중전님은 이미 찾으신 듯?!
열정과 기쁨을 가지고 있다면...힘이 따라붙을거예요!!!!!

gimssim 2010-07-12 21:24   좋아요 0 | URL
네 찾긴 했어요.
근력이 붙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라로 2010-07-12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은 삼계탕을 먹고(계속 먹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다는,,) 기운차려서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어요,,,제가 쏟아 붓고 싶은게 과연 뭔지에 대해서도,,,

gimssim 2010-07-13 06:55   좋아요 0 | URL
그래요. 아마 초복이 다 되어가지요.
잘 먹는 놈이 힘도 셉니다.(! 너무 터프한가요?)

BRINY 2010-07-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건가요?

gimssim 2010-07-14 07:35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