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의 전염 -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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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애덤 스미스는 흔히 경쟁적인 시장이 최대 다수에 최대 이득을 안겨준다는 주장을 지지한 인물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스미스의 입장이 아니었다. 그를 특징짓는 통찰은, 편협한 이기심이 흔히 사회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생각들 간의 경쟁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좋은 생각은 대체로 승리를 거두지만, 생각들이 서로 다투는 시장이, 특히 단기적으로는 더 그렇지만, 공공선을 믿을 만하게 촉진한다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내가 이 책에서 힘주어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공공 정책을 입안하는 데서 사회적으로 이로운 밈은 장려하고 해로운 밈은 저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사회적 힘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이 왜 우리에게 이로운지 설명하고, 그러한 정책을 실시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12-3)


1부 도입: 논쟁의 개요


"간접흡연과 재정적 영향으로 초점을 좁히면 흡연자가 타인에게 입히는 피해를 턱없이 과소평가하기 쉽다. 흡연자가 되기로 한 누군가의 결정이 낳는 최대의 해악은 다른 사람들도 담배를 따라 피울 가능성을 높이는 데 따른 피해다. 누군가가 흡연자가 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동료 집단에 흡연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집단의 구성원은 모두 흡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흡연 습관을 들인 이들은 다시 그들 동료 집단 구성원 모두의 흡연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게다가 이 새로운 흡연자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의 흡연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비록 그보다 더 작은 정도이긴 하나 좌우지간 간접흡연으로 인한 진짜 피해도 키워준다. 한마디로 모종의 규제들이 누군가의 흡연을 막아준다 해도 그의 간접흡연 혹은 그가 정부의 의료 예산에 주는 부담으로 인해 타인에게 안기는 피해는 실제로 예방한 전체 피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24-5)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본적 귀인오류'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더러는 더 좋은 쪽으로, 하지만 좀더 흔하게는 더 나쁜 쪽으로 말이다. 분별력 있는 식습관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건강을 증진하는 행동은 대개 습득하기가 어렵다. 좌우간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나며, 인간 역시 대다수 동물과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경향성을 지닌다. 우리는 즉각적 보상과 처벌은 턱없이 강조하고,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는 보상과 처벌은 지나치게 등한시한다. 대다수 사람의 경우, 건강에 이로운 행동은 그러한 행동을 널리 행하는 공동체에서 훨씬 더 습득하기 쉽다."(27-8)


2부 행동 전염의 기원


"사회심리학자들은 사회적 영향력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우리의 일반적 경향성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지만, 정작 그런 경향성이 드러나는 까닭에 대해서는 그만큼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았다. 이러한 불균형이 드러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대개 맥락적 요소보다 사람이 더욱 우리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생하다. 하지만 맥락적 요소는 따분하다. 적어도 사람과 비교해볼 때는 그렇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같은 불균형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힘을 비롯한 기타 맥락적 신호는 대개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지 메커니즘의 해부학적 복잡성 자체와 그것이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속도 때문에 그 메커니즘은 거의 전적으로 의식적인 인식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힘을 비롯한 여러 맥락적 신호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못된다.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51)


"찰스 다윈이 분명하게 규명한 대로, 자연선택은 거친 도구다. 자연선택이 주조하는 인지 체계는 모든 환경에서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보여주는 도구라기보다 폭넓은 적응력을 지닌 장치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착시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인지 체계의 결점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공학적 디자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까다로운 트레이드오프의 증거로서 바라보는 게 옳다." "한마디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평가는 사실상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준거 틀에 기댄다. 특히 중요한 한 가지 준거 틀은 우리가 평가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자극의 절대적 수준이다. 마음과 물체의 관계를 규명하는 정신물리학에서 중요시하는 '베버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자극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지는 원래 자극의 비율로 측정한 변화의 크기에 의존한다. 따라서 변화는 비교의 관점에서 클 때만 크게 느껴진다." "이는 우리가 거리, 온도, 소란도, 음 높이, 무게, 고통, 밝기, 숫자, 다른 수많은 신호 등 그 어떤 것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57-9)


"무리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예는 주식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회사의 현재 및 미래 수입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이론은 공공 증권거래소에서 사고파는 한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의 현재 및 미래 이익에 대해 매긴 현재 가치에 비례해 오르내린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어떤 기업의 미래 이익이 정확히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므로, 투자자들은 추정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추정치는 잘 추론된 시장 분석 결과에 크게 의존하는 게 보통이지만, 투자자들은 한 기업의 주가가 더러 전반적 낙관론이나 비관론 신호에 반응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과거에 말한 바와 같이, 증권 컨설턴트의 과제는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실적이 좋을 것 같은 기업을 가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이 최고 실적을 낼 거라고 여기는 기업을 예측하는 작업이다."(77)


3부 행동 전염의 사례


"다른 사람들로부터 힌트를 얻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적응성 있는 전략이다. 과거 철학자들은 노예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와 관련한 격정적 논쟁에 참가했지만, 오늘날 그런 논의의 세부 사항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잘못임은 거의 보편적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 역사적 해결책에 이르게 된 논쟁을 신중히 연구한 뒤 그러한 견해에 다다른 게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다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아는 거의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날 그 문제에 기울인 상당한 에너지를 오늘날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문제, 혹은 다른 좀더 유용한 일에 쏟아부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신념 유형이 흔히 시공간에 따라 왜 그토록 변화무쌍한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95)


"동성 간 결혼이나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지지와 관련해 여론 궤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실질적 논쟁은 사실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관점에 더욱 힘이 실림을 알 수 있다. 동성 간 결혼에 대한 반대 근거는 주로 동성 커플은 오랫동안 결혼이 금지되어왔다는 사실이었다. 보수적인 철학자이자 정치인인 에드먼드 버크가 주장했을 법한 대로, 그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입증 책임을 부여한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달리 제공해야 할 게 별로 없다. 특히 그들은 동성 간 결혼을 왜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신중한 논리를 담은 논쟁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동성 간 결혼 지지자들은 수고스럽게도 그런 결혼이 왜 공동체의 이익에 하등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실제로 수많은 긍정적 결과를 내놓는 데 기여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일단 사람들이 그러한 논의에 귀 기울이고 토론을 시작하게 되면서 동성 간 결혼 지지자들은 꾸준히 호응을 얻었다."(111)


"행동 전염과 전통적인 경제 유인이 서로를 강화해주는 현상을 '조세 순응(tax compliance)'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책 영역은 없다. 사람들이 자국이 세법에 어느 정도 복종하는지 조명하는 전통적인 경제 모델은 거의 전적으로 협소하게 정의된 물질적인 유인에만 주목한다. 법과 규범의 집행은 이러한 모델 상황에서조차 중요하지만, 그 중요함의 정도는 우리가 행동 전염의 효과까지 고려할 때보다 훨씬 적다." "높은 수준의 조세 순응은, 대다수가 다른 사람이 정직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상대적으로 유지하기 쉽다. 이때 동료 영향을 무시하는 전통적인 모델들은 조세 집행을 완화하면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해도 처벌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여기므로 탈세가 늘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느슨한 조세 집행의 간접적 영향은 그로 인한 직접적 영향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 남들이 조세와 관련된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순식간에 폭발적인 피드백 과정이 뒤따른다."(150-3)


"행동 전염은 흡연, 과음, 불건전한 식습관, 낮은 조세 순응, 그리고 수많은 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의 피해는 동료가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친 데 따른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사람이 정부 관료보다 좀더 세심하게 자신의 돈을 소비한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사적인 소비 결정은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로 합리적이라고 인정하자. 하지만 개인적 합리성이 곧바로 집단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잘 보려고 모두가 일어서면 다들 앉아서 편하게 볼 때보다 더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처럼 말이다. 개인적 합리성과 집단적 합리성은 소비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서도 그와 유사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동료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연속적인 상호 상쇄식 소비를 촉발하고, 그 결과 훨씬 더 필요한 다른 부분에 쏟아부어야 할 자원을 부족하게 만든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정책은 엄청난 이득을 낳을 것이다."(177-8)


"작고한 영국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주로 절대적 특성보다 상대적 희소성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재화를 기술하기 위해 위치재(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내가 받은 교육의 가치는 내 직업 전선에 종사하는 선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는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범주에 속한 다른 재화들과의 상대적 비교에 거의 좌우되지 않는 재화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비위치재(non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어떤 영역에서 다른영역보다 상대적 소비에 더욱 신경 쓰는 경향은 소비와 관련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왜곡한다. 그에 따라 내가 말한 이른바 위치재적 군비 경쟁(positional arms races), 즉 위치재에 중점을 둔 점증하는 소비 패턴을 초래한다. 이것이 낳는 역학은 군비 경쟁을 추동하는 역학과 매우 비슷하다. 양쪽의 경우에서 낭비적 소비가 발생하는 까닭은 일부 소비 범주가 다른 소비 범주보다 더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180-2)


"밀턴 프리드먼은 어떻게 소득과 안전 간의 트레이드오프를 따져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노동자들에게서 앗아간다며 안전 규정에 반대했다. 또 다른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에게서 자유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헬멧 착용 규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는 둘 다 군축 협약이 각국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많은 무기르르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정확히 그들의 논리다! 각국이 기꺼이 군축 협약에 서명하는 까닭은 그들이 무기와 관련해서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놔두면 결과적으로 무기에 쏟아붓는 지출이 과도해질 것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의 안전 규정도 같은 이치다. 작업장의 안전에 관해 개별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존중하게 되면 그와 동일한 결정을 집단적으로 내리도록 해주는 법률을 지지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는 부정당한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규정을 '위치재적 군축 협약'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186)


"불평등의 증가는 우리가 목격한 소비 폭포 효과의 유일한 원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중앙값 소득자가 점점 더 살만해졌기 때문에 소비 폭포 효과가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미국 남성의 현재 시급 중앙값은 실제로 1980년보다 더 낮아졌다." "노역지수(toil index)는 중간 소득자가 그 그 목표를 이루기에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매달 일해야 하는 시간을 나타낸다. 소득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모든 계층에서 대략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고 있을 때, 노역지수는 거의 완전하다 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중간 소득자는 중간 가격의 주택에 쓸 월세를 벌기 위해 매달 일주일 남짓만 일하면 됐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중간 임금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했다." "워런과 티아기는 《맞벌이의 함정》에서 맞벌이 부부의 제2의 소득이 그저 수지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것이 되었음을 확인했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98-200)


4부 행동 전염의 정책적 함의


"행동 전염에 기반한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그러한 규제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면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시한다. 사람들의 행동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은행을 털었다고 강도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우려가 널리 퍼져 있음에도 그 우려의 논리적 기반은 취약하다. 자유 의지를 부정한다고 해서, 혹은 우리 행동이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받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모든 행동은 원인이 낳은 결과라는 의미일 뿐이다." "우리의 선택이 흔히 외부적 힘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사회가 그러한 선택에 책임을 묻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게 정당하다는 믿음은 분명 양립 가능하다."(246-7)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즉 규제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 때문에 입는 피해를 무시해야 한다는 관점─을 채택한다고 가정해보자. 심지어 그런 관점조차 규제자가 행동 전염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행동 전염으로 인한 흡연은 새로운 흡연자 자신뿐 아니라 그 피해에서 벗어날 실질적 방도가 없는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이 간단한 문장에는 사회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합의가 담겨 있다. 즉 우리는 성격이나 인성 같은 개인적 특성을 살펴보기보다 사회적 환경을 들여다봄으로써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공 정책을 활용해 사회적 환경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주조해야 할 만한 근거는 다분하다."(251-5)


"환경 오염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사람이나 기업이 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저 깨끗한 생산·소비 방법이 더러운 생산·소비 방법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관찰에서 비롯된다. 만약 깨끗한 생산·소비 방법이 더 싸다면 오염은 애당초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오염이 일어나는 과정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다. 오염원 배출에 따른 피해가 주로 남들에게 가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는 환경 외부성을 억제하기 위한 과세 접근법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다. 그는 자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후생경제학》에서, 더러운 과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배출하는 오염에 과세함으로써 그 과정을 더욱 비싸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부과된 세금을 흔히 피구세(Pigouvian taxes, 혹은 Pigovian taxes)라고 표현한다."(265)


"행동 전염은 에너지 집약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경향성을 증폭시키므로, 이산화탄소세 채택은 그러한 선택을 한층 비싸게 만들어 에너지 집약적 행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피드백 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부적(negative) 측면의 예로는 가령 SUV를 모는 일을 한층 비싸게 만들어 SUV 구매자 수를 점점 더 줄이고, 이것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SUV를 훨씬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적(positive) 측면의 예로는 태양 전지판 설치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늘려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도록 이끌고, 다시 다른 사람이 그 추세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엄격한 이산화탄소세를 채택하는 데 따른 가장 큰 이득은 그 세금이 촉발한 기술적 혁신을 이루려는 추세에서 온다. 우리 행성이 계속 살아남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아마도 이러한 기술적 혁신의 출현에 달려 있을 것이다."(275-6)


"1942년 경제학자 어빙 피셔와 그의 형 허버트 피셔는 그들의 책 《건설적인 소득 과세─개혁을 위한 제안》에서 현재의 소득세 제도를 간단히 손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위치재를 대상으로 하는 이상적인 소비세 과세에 근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현재의 소비세를 각 가정의 연간 소비 지출에 대한 좀더 과감한 누진세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각 가정이 조세 당국에 소비 실태를 입증하기 위해 영수증 수천 개를 챙겨야 하는 곤혹스러운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피셔 형제가 지적했다시피, 일단 우리가 한 가족의 총소득이 소비와 저축,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성은 사라진다. 따라서 그 가족의 전체 소비액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오직 연간 소득과 총저축액에 추가된 연간 저축애, 이 두 가지 수치만 알면 된다." "다만 저소득층 가정은 저축률이 낮은 경향이 있음을 인정해 상당 규모의 표준 공제액을 빼고 계산한다."(286-7)


"과세되는 소비에 대한 한계 세율은 낮게 시작될 것이다. 저소득층 가정이나 중산층 가정이 현행 소득세에서와 같거나 더 낮은 세금 고지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한계 세율은 과세되는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꾸준히 올라갈 것이다." "누진 소비세를 처음에 이처럼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하면 고가품 소비의 증가율이 소폭 감소하고, 그에 따라 저축액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어 투자가 늘어나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누진 소비세가 꾸준히 소득세를 대체해가면, 국민소득에서 사적 소비에 쓰이던 몫은 점차 줄고, 민간과 공공 양자의 투자에 할애되는 몫은 늘어난다. 하지만 높아진 투자는 국민소득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므로, 누진 소비세 아래서는 결국 절대적 소비 수준이 소득세에 기반한 과거 경제에서 볼 수 있던 절대적 소비 수준을 능가하게 된다. 따라서 누진 소비세로의 전환은 사실상 모든 이에게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동시에 안겨주는 정책적 변화다."(287-9)


"소득세를 누진 소비세로 대체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 불평등이 줄어드는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더불어 부의 불평등은 되레 늘어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부자들은 누진 소비세 제도 아래서는 많은 재산을 남기고 사망하는데, 그 때문에 강력한 상속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생을 마무리할 때쯤 부자가 되어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이 인생 말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직업 이력을 막 시작할 무렵 상속세에 대해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그에 따른 세수 덕에 가능해진 향상된 공공 서비스를 평생 누릴 것이다. 그들 혹은 그들의 상속인 가운데 거의 누구든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다. 상속세를 낼 정도로 충분히 운 좋게 인생 말년을 맞은 극소수 사람들은 하등 불평할 이유가 없다. 소송에서 승리한 원고가 자신이 의뢰한 변호사에게 성공 보수를 지불하는 데 대해 불평할 까닭에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290-1)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진척을 이루어온 전략을 찾아냈다. 이런 전략은 대부분 〈무슨 일인가 해보라(do something)〉고 듣는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피한다. 그들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론 내리도록 해주는 대화를 시작하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간 대화의 내용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드러난 일관된 결과는 질문하기가 대화 파트너들이 공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유일하게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에서 여러 상이한 유형의 질문이 많지만, 후속 질문은 유독 특별한 힘을 지니는 듯하다. 이 분야를 선도하는 하버드 경영대학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와 레슬리 존이 썼다시피 〈후속 질문은 대화 파트너에게 당신이 듣고 있으며 마음을 쓰고 있으며 더 알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후속 질문을 많이 던지는 파트너와 상호 작용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 경향이 있다〉."(320-4)


"물론 질문하기가 중요한 정책적 이슈에 관해 더욱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도록 촉구하는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매슈 볼드윈과 요리스 라메르스는 시간 프레이밍(temporal framing)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상이한 환경 정책 옵션을 평가하는 방식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작업은 보수주의자는 과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유주의자는 미래에 더욱 주목하는 것 같다는 관측으로부터 시작한다. 과장되었지만 이러한 둘 간의 차이에 대한 이같은 특성 묘사가 시사하는 대로, 보수주의자는 현재가 과거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는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보수주의자를 상대로 환경 보호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람은 과거보다 현재 환경의 질이 더 나빠진 측면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준다."(335-7)


"사람들은 본인의 성공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흔히 후대에도 비슷한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투자에 쓰일 세금을 지지하는 데 덜 적극적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 운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려는 시도는 적대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나는 순전히 우연찮게 이와 같은 장애물을 가장 빠르게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성공한 친구들에게 그들 역시 운이 좋았음을 상기시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그러는 대신 그저 정상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누려온 행운의 예를 떠올려볼 수 있겠냐고 묻자, 그들은 전혀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눈을 반짝이면서 관련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본인의 기억을 반추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예를 생각해내면 그것에 대해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 사례를 소개하는 과정은 흔히 또 다른 사례를 떠오르게 만들고, 그들은 역시 그것에 대해서도 열심히 들려주었다."(345-6)


"만약 당신의 시간 가운데 최소한 일부만이라도 당신과 모든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가장 중요한 인지적 편견 가운데 하나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다. 훌륭한 과학자는 자신의 가정이 잘못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우리 대다수의 자연스러운 욕구는 우리가 애초에 가진 믿음을 확실하게 해주는 정보에 대해 더욱 수용적이다. 그와 모순되는 정보에 눈감는 경향은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믿어야 한다는 동기가 강할 때 특히 커진다. 그 아이디어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제가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반면 그 아이디어가 잘못이길 바라는 사람은 〈제가 그것을 믿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적어도 우리 시간의 일부만이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투자한다면 우리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한층 커질 것이다."(348)


맺음말


"나는 오랫동안 개인의 소비 결정만으로는 온난화 위협을 저지할 가망이 거의 없다는 월러스웰스의 견해를 공유해왔다. 우리에게는 공공 정책의 대담한 변화 역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행동 전염의 위력을 연구하면서 의식적인 소비도 내가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책 전선의 진보를 촉진할 수 있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행위,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 혹은 좀더 기후 친화적인 식이법을 선택하는 행위는 비단 다른 사람이 그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가능성만 키워주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 행위자의 기후 변화 옹호론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기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 행위자가 강력한 기후 관련 입법에 찬성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당선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이웃을 설득하러 나서도록 이끌어준다. 온난화 저지는 대대적인 사회 운동이 없으면 정말이지 무망한 일이다."(361-2)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라는 가장 시급한 두 가지 당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못하면 현재의 교착 상태를 뚫고 나가기 위한 폭넓은 정치 연합체를 꾸리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대한 반대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너무 감당하기 벅차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두 영역 다에서 실패할 게 뻔하다며 반박한다. 여기에 불평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필요한 누진세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부유한 유권자에게 고통스러운 희생을 요구한다고 가정하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에게 높은 최고 세율을 부과해도 입찰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부자들의 상대적 능력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해준다면, 유권자 대다수는 아무런 실질적 희생도 따르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양면전이 올바른 길이다. 경제 불평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완화해주는 바로 그 같은 정책들이 동시에 탄소 중립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다."(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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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미래 - 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월터 카우프만 지음, 이은정 옮김 / 동녘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는 글


#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1. 인류의 위대한 작품들을 보존하고 양육한다.

2. 인간 실존의 이유와 궁극 목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3. 비전을 가르친다.

4. 비판 정신을 기른다.


1장 네 가지 유형의 마음가짐


"인문학과 관련한 마음가짐에는 먼저 통찰가visionaries와 사변가scholastics 유형이 있다. 이 구분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우선 통찰가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일반적인 상식과 단절되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계속 시도한다. 대개 이들은 현실의 언어가 불충분하다고 여기며 그로 인해 때때로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를 겪기도 한다. 통찰가의 이미지를 종교계에서는 예언자나 교부 성직자로, 철학이나 문학, 역사, 예술계에서는 천재로, 과학계에서는 미친 과학자로 부여해왔다. 반면 사변가는 자신의 엄격함과 전문성에 자부심이 있으며, 자기 분야의 공론이나 공통의 노하우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닌다. 보통 이들은 자기 시대의 통찰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가 속한 분야의 통찰가들을 과거 통찰가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적대시한다."(43-4)


"통찰가들은 장인정신을 가진 어떤 인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통찰가와 자신만의 위대한 비전이 없는 사변가를 대립적인 것으로만 맞세운다면, 이런 이분법은 한쪽에만 모든 좋은 특질을 부과하는 마니교Manichaean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통찰가의 범주를 광인crackpots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통찰가와 사변가는 모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통찰가는 기발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아이디어들ideas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그들은 강박적이거나 편집증적일 수도 있으며 아주 빈번하게는 두 경우 모두일 수도 있다. 가령 뉴턴의 예처럼 가장 위대한 통찰가조차도 때때로 어떤 시기에서는 이런 광인의 유형에 속했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광인들이 뉴턴과 같은 천재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비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의 세부 사항들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는 엄청나게 많은 사변가들의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52-3)


"소크라테스는 사변가가 아니었다. 그는 외톨이였으며 자기 시대의 만연한 상식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비전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통찰가가 되려하기보다는, 사변가-반대주의자antischolastic가 되고자 했다. 그는 시대가 품고 있는 신념과 윤리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일반적 합의에 무비판적으로 기대고 있는 지식인들의 주장을 비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며, 혼란스러운지, 또한 유명한 교사와 정치가, 대중 연설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유형을 구현한 인물이다. 세 번째 유형의 인물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줄기찬 비판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가critics는 예술이나 음악, 문학이나 영화 분야의 평론가들이 아니다. 사실 이들 중 몇 명은 사변가이며 대다수는 (통찰가와 사변가들이 경멸했던) 저널리스트이다."(63-4)


"저널리즘과 사변주의는 대립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변가는 엄격함과 견실함에 가치를 두고, 저널리스트는 신속함과 관심을 끄는 것에 가치를 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자의 구분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의) 에토스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급하게 서두르는 이런 일이 30년 후에도 존속될 수 있는 것인지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의 에토스가 '모든 시대를 위한 소유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던 투키디데스나 '사후에 태어나기'를 희망했던 니체 같은 철학자의 에토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많은 사변가들이 학문적인 저널을 위해 엄격함을 과시하면서 시의적절한 주제들로 글을 써내려가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의 출판물이 30년을 버티리라는 아니면 적어도 10년이라도 버티리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의 엄격함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그것들은 겉으로만 그럴 듯해 보일 뿐이어서 처음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조잡한 작품인 경우가 많다."(73-4)


"비평가에 대해 논할 때 우리는 이를 소크라테스 유형과 저널리스트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 두 가지는 아주 분명하게 반대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사명 중 하나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무지와 그들이 주장하는 지식의 허위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정의를 빌려보면, 저널리스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 더 관심을 끌기 위해 인용부호를 추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경건하고 믿을 만한 신념이라도 혼란스럽거나 잘못된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 유형은 검증받지 않고 널리 공유되고 있는 확신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는 한 시대의 신념과 도덕을 엄밀하게 따져보려고 시도한다. 이 유형이 주요하게 문제로 삼는 것은 일반 여론과 특권적인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지식이다."(75-6)


"당연한 것이지만 소크라테스적 유형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나의 관심은 다양성의 측면이 아닌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깊은 숙고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점은 예전에 우리가 지녔던 것보다 적은 한 가지 유형만을 갖게 된 것이 유감이라는 뜻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유형이 필수불가결하게 속해 있는 하나의 혼합물을 인문학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적 에토스를, 만일 그것이 없다면 음식의 맛이 밋밋해지고 무미해지는 소금이나 후추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소금이나 후추로만 만들어진 음식은 훨씬 더 최악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많은 점에서 잘못이 있다. 독일의 예가 보여준 것처럼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한 맛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두 사람의 소크라테스적 교사가 참여한 대규모의 교수진은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비판적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비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많은 소크라테스적 교사가 필요하다."(85)


2장 독서의 기술


"(고전을 읽는) 첫 번째 독서법에서 저자에 대한 독서가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 "경전의 수호자들은 텍스트에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용한 지식이 있다는 인상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강하게 남겼다. 경전의 출처는 신비에 싸여있거나 성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전의 의미는 어떤 부분에서는 평이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극단적으로 모호한 것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많은 난해한 구절들에는 그에 대한 주해註解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제자들은 해석을 할 줄 모르지만 자신은 할 수 있다는 소위 권위자들의 주장을 사실로 믿게 했다. 주해는 전형적으로 처음에는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그 생각에 다시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와 같은 독서 방식을 '성서 해석적exegetical' 이라고 부른다."(116)


"이런 독서는 거의 대부분 자기-기만을 포함하고 있다. 성서 해석적 독서가는 자신이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한 후에,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고 다시 이 생각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성서 해석적 독서가는 텍스트의 저자가 이런 방식의 읽기와 사고방식, 그리고 존재양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 도전은 심지어 미연에 제지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령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성서 해석적인 독서를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에게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았으며 고대의 시에 자신의 생각을 보여하지도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들 중 몇몇은 위대한 시인에 대해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획기적인 태도 덕분에 그들은 서양 철학의 정초자가 될 수 있었다."(123-4)


"첫 번째 독서 방법을 '우리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는 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독서 방법은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는 모른다'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두 번째 방법은 독단적이다." "독단적인 독서 방식의 세 가지 변형들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불평을 늘어놓을 때 쓰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X에 대해 알았다면(가령, 키르케고르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었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둘째 형태는 약간 다른 방식의 불만으로, 다음과 같다. '그에게 우리처럼 뛰어난 기술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셋째 형태는 다소 품위 있는 불평으로, 다음과 같다. '그는 완전히 형편없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점은 우리 같은 부류에 근접해 있어.'" "독단적인 독서가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기피하며, 대안과 단점에 대해 눈을 감고, 그 텍스트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들여다보기를 거부한다. 기껏해야 그들은 근시안적인 태도로 거만을 떨고 있을 뿐이다."(128-31)


"세 번째 독서 방식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진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자.' 이와 같은 독서법은 불가지론적agnostic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서 방식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독서가의 관심은 다른 것에 있다." "첫째는 '골동품수집가antiquarian' 형태로, 이들은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으며, 오래되고 희귀한 것을 선호한다. 둘째는 '미학적인aesthetic' 형태로, 이들은 키르케고르나 플라톤의 텍스트를 미학적인 방식으로 읽을 수 있으며,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 종교 경전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려고 든다. 셋째는 '현미경적microscopic' 형태로, 이들은 한 작가의 작품 전체oeuvre는 말할 것도 없고 책 한 권조차도 몇 번씩 읽어낼 수 있을 만한 호흡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저자는 지워져버리며, 도전적으로 '너'와 만나는 것은 회피되고, 분해될 수 있는 작은 파편들만 다루게 된다."(131-2)


"네 번째 독서 방식인 변증법적 독서는 그 안에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요소를 나는 '소크라테스적'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찰되지 않은 삶the unexamined life'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불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독서가들은 문화 충격을 회피하기보다는 그것을 기대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믿음, 그리고 가치를 점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텍스트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의 통설에 대해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변증법적 독서가는 자신이 길들여져 온 다양한 통설의 외부에 있는 관점을 추구한다. 텍스트는 그가 자유롭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텍스트는 자기-해방autoemancipation의 보조물이다." "그는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누군가의 권위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적인 관점을 추구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 놓여 있는 거시적인 대립 지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다."(137-8)


"변증법적 독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를 나는 대화적dialogical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텍스트는 우리가 그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너You'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텍스트가 인도하는 곳으로 우리 자신을 이끌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의 독특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다른 목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전하고 충격을 가하며 불쾌감을 주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이런 독서가들은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고, 옳다는 주장을 펼치려 하지도 않으며, 미리 동의하려고 마음먹지도 않는다. 이들은 텍스트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우리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든 점에서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한다. 변증법적인 독서가는 자신에게 묻는 것을 허용하며, 또한 자신도 텍스트에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독서가와 텍스트 간의 대화를 시작하게 해준다."(139-41)


"변증법적 독서의 세 번째 요소는 '역사-철학적'인 것이다. 독단론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진리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증법적 독서가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전의 독자와 논평, 그리고 해석과도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이런 자료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가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준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실수는 대개 자신의 실수보다 훨씬 더 잘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자료들은 그것의 도움 없이는 간과했을 수도 있을 문제점과 실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변적인 독서가는 자신의 학파에 속한 소수의 정예부대가 제시하는 해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잦다. 이런 독서가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는 동료들이 제시하는 해석만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 독서가는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해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164-5)


# 변증법적 독서의 '역사-철학적' 요소를 구성하는 세 가지 동심원

1. 텍스트 : '텍스트 내적인 증거들에 의존(번역 과정에서 탈락되는 의미 문제를 포함한다)'해서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을 살펴본다.

2. 작품세계 : 작가의 작품 전체와 작품 세계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기질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일정한 상像을 그려본다.

3. 시대배경 : 시대배경을 제쳐두면 텍스트의 의미meaning를 파악하기 어렵고, 텍스트의 의의significance는 전혀 판단할 수 없다.


3장 서평의 정치학, 번역과 편집의 윤리학


4장 고등교육과 종교의 위상


5장 비전은 가르칠 수 있는가


6장 학제 간 연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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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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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당대의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RJR 나비스코의 LBO(차입 매수) 거래 과정을 파헤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군가는 


1. 개척자 정신(the spirit of pioneer) : '야성적 충동'들이 약동하는 개척자들의 무협 활극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짜릿한 흥분을 즐길 수도 있을테고

2. 선진 금융 기법(advanced financial skill) : 시장이 윤허(!)하는 최대 레버리지가 투여된 LBO(차입 매수) 기법의 메커니즘에 매료될 수도 있을테고

3. 자본과 탐욕(capital and greed) : 제것이 아닌 자본과 제것이지만 통제불가능한 탐욕으로 어우러진 금융시장에 경고장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긍정/부정적 견해 어느 쪽도 성립 가능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지점은 바로 


4. 사회의 부재(absence of commonwealth) : 그들의 열정, 그들의 행위, 그들의 포식에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공동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황금을 뒤쫓는 개척자들이 남기고 간 황폐화된 마을처럼, 극도로 복잡한 금융 기법의 허리케인이 강타한 실물 경제는 앞만 보고 달리는 그들의 질주가 피어올린 먼지구름에 잠겨 질식한다.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열정과 고뇌, 회한과 한숨, 절망과 눈물은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그들의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는 인간을 양육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길러진 인간은 자주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공동체의 맥박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홀로 선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들의 신세계를 향해 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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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 한국사회 계층화의 성별 차이는 줄어들었는가?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4
신광영.김창환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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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 문제제기


"학벌이 높은 청년들이 고소득 직업을 갖는 현실에서 능력(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 이념이 팽배해 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리차드 아네손은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요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익이나 불이익을 결과의 불평등에서 제거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고, 이를 〈운 상쇄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불렀다. 개인들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의 결과에 따른 불평등이 아니라 자신들과 아무런 관게가 없는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평등은 부당한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학생들 사이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자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유아기나 아동기 교육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교육 격차는 아동이 책임질 수 없는 불평등이다."(11-2)


"사회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가장 약화된 곳은 교육의 영역이었다. 교육이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고,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교육투자와 교육영역에서 남녀 차별은 크게 약화되었다. 교육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서 성과가 결정되는 영역이다. 그 결과,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들의 교육 기회가 빠르게 확대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젊은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남성들의 교욱 수준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젠더 역전 현상'을 넘어서 '소년 위기(boy crisis)'라는 담론이 등장하였다.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취학률과 학업성취에서 평균적으로 높았지만, 점차 이러한 상황이 역전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 하에서 소년들이 정신적으로 사회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병리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그 결과 미국에서 남학생들의 자살이 여학생들보다 무려 6배 정도 더 많고,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남학생들이 증가하였다."(19-20)


"그렇다면,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와 여성의 대학 진학률 증가 속에서 교육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동일하게 나타는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족의 소득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남성들에게 교육은 직업 활동과 직접 연계된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남편이 경제력을 책임지고,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남성가장가구 모형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90년대 이전까지 교육은 여성들에게 직업 활동보다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높을 수 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교육수준의 남녀가 결혼을 하는 동질혼(homogamy)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결혼을 매개로 한 사회이동의 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최고 교육수준에 영향을 미치지만, 역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정도는 매우 적었다."(29-33)


"대학교육 확대로 인하여,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젠더에 따라서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배경이 아직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에게 교육은 결혼과 관련하여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제한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졸 여성이 관리직이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대졸자수와 대졸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졸자 프리미엄이 약화된 결과 나타나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34-5)


2 젠더 교육격차: 조용한 혁명의 실체


"(1980년대 들어서 여성들의 고등교육 진출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사회적으로 고졸자들에게 제한적으로 허용된 대학 진학의 기회는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에 따라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것처럼, 최근에 와서 큰 변화를 보였지만, 2008년까지도 남자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여고 졸업생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았던 1970년 남자 고등학생들의 대학 진학률도 10.5%에 불과하였다. 그에 비해서,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더 낮아서 3.6%에 불과하였다. 1980년에 이르러서도 그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확대되어 남자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은 16.8%이었던 반면, 여학생 대학 진학률은 여전이 5.6%로 낮은 수준이었다.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던 시절에도,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훨씬 낮았다."(43-4)


"2000년대에 들어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는 젠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의 교육 영역에서 이루어진 젠더 격차의 해소는 소리 없이 이루어진 '조용한 혁명'이었다. 사회 전 영역 중에서 젠더 격차가 가장 빨리 사라진 영역이 바로 교육 영역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구에서 여성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남성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교육 기회가 확장되면서, 여성들이 새롭게 확장되는 교육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던 것이다. 1970년대 서구의 교육 평등은 페미니즘의 대두라는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한국에서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내세운 여성들의 투쟁의 결과라기보다 저출산으로 인한 자녀수 감소에 따른 인구학적인 변화의 산물이다. 평균적으로 자녀수가 줄어들면서, 딸만 있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그러므로 교육에 있어서도 딸과 아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저출산에 따른 변화가 나타났다."(47-8)


"그러나 지난 25년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연령대인 35-44세의 남성과 여성의 학력별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를 살펴보면, 학력을 불문하고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여성의 경우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대졸 남성들이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준 반면, 대조적으로 대졸 여성들은 가장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졸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25년 간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고졸 여성의 경우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중졸 여성의 경우, 여성 가운데 가장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구소득에 기여하기 위한 경제활동 참여로 중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여기에는 여성에게 학력이 취업 이외에 다른 선택지인 결혼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48-9)


"가부장제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배제를 내포한 비공식적인 사회적 기제를 통해서 또한 공식적으로 제도화된 규칙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에게 각기 다른 방식의 태도와 행동을 요구한다. 대학 진학에서 나타나는 전공 선택의 성별 차이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을 마친 이후에 이루어지는 취업이나 진학 등의 선택에서도 지속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취업을 한 경우, 조직 내에서의 경력과 관련해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결과, 젠더, 교육과 사회이동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 속에서 상호 결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젠더 레짐'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젠더 레짐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법, 제도, 문화와 이데올로기로 구성된 사회 체계로 정의될 수 있다. 젠더 레짐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성에 따른 역할과 행위규범을 포함한다."(63)


"젠더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개인과 가족의 생애 과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교육에서 일자리로 이동하는 이 과정도 젠더에 의해서 크게 달라진다." "고용 격차는 물론이고, 1년 이상 직장 유지비율을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직장 유지비율은 82.2%로 여성의 경우 75.4%보다 6.8% 포인트 더 높았다. 이러한 사실은 취업을 한 이후 대졸자 여성들의 경우가 대졸자 남성들에 비해서 높은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따른 경력의 변화는 신입사원 선발 과정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취업 이후에서도 이러한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업무배치와 승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임금이 낮은 직종이나 직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고, 취직 이후에도 경력이 고려되지 않은 일자리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64-8)


"그렇다면, 한국에서 고학력 여성들의 임금은 고학력 남성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나?"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 자료를 분석한 결과, 먼저 전체 월평균 임금과 비교해서 전공에 관계없이 모든 대졸 여성들의 평균 임금이 대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게 나타났다. 2006년 남성 대졸자의 초임은 196.88만원이었고, 여성의 월평균 초임은 남성의 73.7%에 해당하는 144.90만원에 불과하였다. 의·약학 계열인 경우에도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전체 대졸자 월평균 임금보다 낮았다." "교육계열 졸업자들의 경우, 여성들의 취업률이 남성들보다 더 높았지만, 월평균 임금은 남성에 비해서 훨씬 낮았다. 교육계열 남성 졸업자의 평균 임금이 194만 4천원이었지만, 여성 졸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153만 5천 7백원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대졸 여성들이지만, 월급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68-70)


3 성별전공분리와 20대 대졸자 성별소득격차


"노동경력 초기에 연령을 통제하지 않은 성별 효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20대 때는 1~2년의 작은 연령 격차에도 성실성, 심리적 안정성 등 인간적 성숙도에 큰 차이가 있고, 이러한 차이가 노동시장에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설사 노동시장에 들어온 대학 졸업자 개인의 성격이 고용주에게 직접 관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사담당자들이 경험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알고 있다면 채용 시 연령에 기반한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을 할 수 있다. 고용주가 차별의 의도가 없지만, 누가 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할지, 누가 더 성숙한지 지원자 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여성보다 2~3살이 많은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복학생 출신의 남성을 선호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연령과 군복무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 작동하는 것이다."(79-80)


"다른 가능성은 연장자를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연령차별주의(ageism)가 성차별 기제의 하나로 작동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직접적 차별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연령차별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졸자의 연령에 성별로 체계적인 격차가 있기 때문에 연령을 이용하여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연령과 군복무가 성숙도의 대리변수가 아니라 여성을 배제하기 위한 정당화 기제로 이용된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을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연령 효과가 인간적 성숙도의 대리변수로서 작동한다면, 연령이 같은 경우 성별 격차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연령효과가 성차별기제의 하나로 작동한다면 고연령에서 성별소득격차가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여성의 고연령은 인간적 성숙도의 척도가 되지 않고 남성의 상대적 고연령만 성숙의 척도로 작용하는 것이다."(80)


"각 연령별로 (학교, 전공, 자격증 등의) 모든 인적자본 변수를 통제한 후 여성의 불이익 정도를 측정해보면, 여성의 불이익은 21, 22세를 제외하고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불이익 정도가 연령에 따라 높아진다. 인적자본을 통제한 후 23세에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동일 연령 남성에 비해 평균 14.6%지만, 29세가 되면 불이익은 21.8%로 커진다. 즉,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더라도 남녀가 연령이 같으면 20대 중반보다는 20대 후반에서 성별소득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대학유형에 따라 나눠보면 4년제는 29세 때 동일 연령, 동일 인적자본 남성 대비 여성의 소득 불이익이 22.1%이고, 2년제는 26.7%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는 연령 효과가 성별과 관계없이 중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차별의 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즉, 경력 단절 이전 20대 청년층에서도 여성이 남성 대비 노동시장에서 크게 불리한 위치에 있고 그 원인이 여성차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88-9)


"성별전공분리보다는 같은 전공 내 성별 격차가 전체 성별소득격차를 낳는 주원인이다. 대부분의 성별소득격차는 성차별기제로 작동하는 연령차별주의에 근거한 남성 지원자 선호와 그에 따른 민간부문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할당의 여성차별로 설명된다. 법적 통제가 강한 정부와 교육 부문으로 노동시장을 한정하면 성별소득격차는 2.6%로 크게 축소되고, 성별소득격차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같은 조건의 남성 대비 여성불이익은 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이 비엘리트 대학 출신 여성보다 더 크게 겪는다. 2년제 대학 출신 여성의 소득불이익은 16.9%지만 상위 10위권 출신 여성의 불이익은 21.7%에 이른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완화에 중점을 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성별소득격차의 축소를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진입 초기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100)


4 교육, 결혼과 사회이동


"가부장제 전통이 강한 가족체제에서 교육은 남성의 경제활동과 직접 관련을 맺는다. 남성이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과 사회 이동과의 관계에서 여성의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서구 사회와 다르게 기능한다. 한국에는 아직도 전통적인 가구모형인 남성 가장 가구 모형(male breadwinner model)이 강하게 남아 있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며, 가족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남성에게 교육은 직업을 얻고, 결혼하여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여성들의 경제적 책임이 강조되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은 주로 자녀 양육이나 사회적 자본이라는 또다른 지위재(positional goods)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강조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직업과 관련된 인적 자본이 아니라 현명한 어머니의 자질로서 학력을 강조하였다."(115-7)


"성별 교육수준에 따른 직업분포(1998년)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직업의 분포가 학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대 졸(2~3년제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 남성의 경우, 48.9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였고, 24.14%가 사무직으로 진출하였다. 반면 고학력 여성의 경우 60.89%가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여, 관리직/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았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여성들이 관리직보다는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조직 내에서 권위를 갖는 직업보다는 전문성에 기초한 직업으로 진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8년 대졸 여성의 관리직 비율은 1.36%로 남성 4.37%에 비해서 낮았으나, 전문직 비율은 34.42%로 남성 31.56%에 비해서 더 높았다. 이것은 여성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가 강한 조직문화 대신에 자신의 전문성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 직업을 선호함을 의미한다."(122-4)


"교육이 여성들의 결혼 조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동질혼의 비중이 높은 한국사회의 특징은 여성들에게도 가부장제 결혼관이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고학력 여성들이 저학력 남성들과 결혼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가부장제적 의식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강하게 내면화되어 있어서, 많은 여성들은 당연히 남성의 학력이 여성들과 같거나 혹은 더 높아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수준이 낮은 배우자와 결혼이 이루어지는 강혼(降婚)은 한국 여성들에게서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은 OECD 회원국들의 교육 수준별 부부 분포와 비교하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부 모두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2008년 주요 OECD 회원국에서 13.2%에 불과하였고, 본인의 학력이 배우자의 학력보다 높은 경우(강혼)는 남성의 경우 19.2%(한국 28.15%, 2010년 기준), 여성의 경우 15.4%(한국 8.33%)이었다."(133)


5 한국에서 교육은 성별에 따라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했는가?


"적어도 가족과 학교 수준에서 젠더와 관련하여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지만,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젠더는 여전히 전통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 전공 선택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이나 예술에 집중되어 있고, 수학, 과학과 공학을 선택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등교육에서 오랜 기간 동안에 형성된 젠더화된 전공 이미지가 아직까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학 졸업 후 노동시장으로의 진출과 관련해서도 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 않다. 여학생들의 경우, 경제활동참가율이 아직도 낮은 수준이고, 경제활동에 참가한 이후,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경우에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출산 이후에 직장을 계속해서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제도적으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출산 후 직장을 유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낮다."(145-6)


"대학교육의 확대로, 대학 졸업자의 프리미엄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프리미엄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르게 나타났다. 대졸자가 독점했던, 관리직과 전문직에서 대졸 남성의 비율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학교육이 확대되면서 가족 배경의 효과도 약화되었다.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학력은 대졸 남성의 관리직과 전문직 진출에 별다른 차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족 배경이 아직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여성들 가운데 아버지 학력이 높을수록, 관리직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고등교육은 (배우자의 학력이 더 높은) 승혼(昇婚)을 통한 상승이동 수단으로 기능한다. 교육은 여성들에게 결혼을 통해서도 사회이동을 경험하게 한다. 다만 대졸자의 지속적인 양적 증가로 대졸 여성이 관리직과 사무직 배우자를 맞을 가능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47-8)


"그 대신에 대학졸업자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 하는 〈대학의 수준〉이 더 중요해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학입시 경쟁이 아니라 특정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학생들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이유이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어떤 대학을 졸업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노동시장 진출뿐만 아니라 결혼에서도 학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은 여성들에게는 더 중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21세기 한국에서 가시화된 교육 부문의 '젠더 역전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과 여성 배제적 노동시장 사이의 간극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한국의 가부장제에 더 강한 불만과 저항을 낳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부장제 사회에서 동질혼을 통한 대졸자 여성이 누리는 결혼에서의 프리미엄이 유지되는 한, 고학력 여성들의 불만과 저항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주된 이유는 고학력 여성들에게는 결혼이라는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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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 - 한국에서 교육불평등은 심화되었는가?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2
변수용.이성균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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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한국사회는 최소한 초·중등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와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형식적으로 동등하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형성의 시각에서 보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출신배경에 상관없는 기회 평등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본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서 보상받는 사회계층 이동의 수단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교육성취의 격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교육팽창과 교육기회 확대'라는 첫 번째 관점이 역사적 혹은 세대 간 비교의 시각을 반영한다면, '교육기회 및 성취의 불평등'이라는 두 번째 관점은 세대 내 혹은 동일 연령층 내부의 비교 관점에 따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교육기회 및 성취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교육기회 및 성취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부모세대 요인이 자녀세대의 교육성취에 미치는 효과'를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4-7)


2 한국사회의 교육기회 확대


"한국사회에서 교육기회 확대를 낳은 일차적 요인은 국가주도형 교육제도이다. 1953년에 도입된 정부의 의무교육제도는 초등 교육기회의 확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1970년대 실시된 중·고등학교 입시제도 변화는 중등교육의 보편화를 낳았다. 또한 1980년대의 대학졸업정원제도와 1990년대 후반기의 대학설립준칙주의는 고등교육기회를 더욱 확대하였다." "이처럼 해방 후 교육기회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의 순서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 후반기부터 중학생 규모가 급속히 증가하였고, 이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던 1970녀대 초반부터 1990녀대 초반까지 고등학교 학생 규모가 증가하였다. 또한 1970년대 전반기에 일정 규모에 불과하였던 대학생 규모는 산업화 정책에 따른 인력수요가 높았던 1970년대 후반기부터 점차 증가하였으며, 대학졸업정원제가 실시되었던 1980년대 초반에는 좀 더 가파르게 증가하였다."(21-3)


"한국의 의무교육제도 혹은 입시제도 등이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제도적 요인이라면, 공공교육예산은 제도화된 교육기회를 실현하는 재정적 요인이다." "교육재정 확대는 무상교육을 통한 교육기회의 확대를 낳았다. 1959년부터 공립 초등학교의 수업료 등을 국가가 부담하고 이후 농어촌 지역부터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은 과거보다 적은 부담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아울러 정부는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대학의 교육비와 각종 연구개발비용을 지원해 왔으나, 정부의 교육예산에서 고등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10%에도 못미쳤으며, 2012년에도 그 비중은 14%에 불과하였다." "한국의 공공 교육재정은 초·중등교육 팽창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나, 고등교육의 질적 개선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고등교육이 대중화 됨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이러한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23-7)


"다만 고등교육 대중화는 고학력층 부모보다는 저학력층 부모를 둔 가정의 자녀들에게 좀 더 명확히 나타난다. 부모가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집단인 경우에 자녀가 대학졸업자인 사례는 1951~1965년 집단이나 1981~1990년 집단에서 비슷한 수준(68%)이지만, 부모가 중졸 이하의 저학력집단인 경우에 자녀의 대학졸업자 비중은 전자의 연령 집단(10.6%)보다 후자의 연령 집단(24.8%)에서 2배 정도 높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자녀세대는 부모세대보다 더 높은 수준의 학력집단으로 성장하였고 특히 과거에는 고등교육을 경험하기 어려웠던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의 대학교육 경험도 부모세대보다 더 많아졌다. 그러나 (전 국민의 고학력화에도 불구하고) 동일 연령집단 내에서 부모 학력에 따른 자녀의 학력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자녀의 학력은 부모 학력으로 표현되는 가정배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34-6)


3 아버지 학력이 자녀의 교육성취에 미치는 영향 변화: 1950~1982


"3장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 교육(학력)을 절대적 가치로 보느냐 상대적 가치로 보느냐에 따라 아버지 학력이 자녀의 학력에 미치는 영향을 다소 다른 추이를 보였다. 절대적 가치 층면에서는 남성의 경우 아버지 학력이 자녀 학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최근으로 올수록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여성의 경우도 아버지 학력이 자녀 학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영향력의 크기는 1960년 이후로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상대적 가치 측면에서도 남녀 모두 아버지 학력이 자녀 학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영향의 크기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식의 일관된 추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3장은 1982년 이후 출생 코호트에 대한 분석은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연구결과 해석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55)


"최성수·이수빈(2018)은 대졸 학력을 2년제 대졸, 4년제 대졸, 상위권 대학 졸업 여부 등으로 구분하여 교육 불평등 양상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2년제 대졸을 포함한 대졸 확률에 있어 부모 학력에 따른 격차는 1960년대 코호트에서 최대로 벌어지고 이후에 빠르게 감소하였다. 4년제 대졸 확률에 있어 부모 학력에 따른 격차는 1970년도 출생 코호트까지 증가하였다. 1980년도 출생자들에게서는 정체 또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상위권 대학 졸업 확률에 있어 부모 학력에 따른 격차는 1950~60년도 출생자들에 비해 이후 출생 코호트에서 완만하지만 의미 있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의 결과는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이 최근에 올수록 고졸 여부에서 전문대졸 이상으로, 다시 4년제 대졸 여부로, 그리고 상위권 대졸 여부로 점차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교육 불평등이 양적 차원에서 질적 차원으로 변화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56)


4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 변화: 2000~2018


"아버지 학력과 자녀 학력 간의 연관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추이만으로 한국사회에서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는 1장에서 살펴본 EMI 가설처럼 양적 차원에서 상급학교 진학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상위계층들은 교육의 질적 차별화를 통해 여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는 고등학교 교육이 보편화되어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자녀들은 특목고와 같은 이른바 '엘리트 학교'로의 진학을 통해 대학 진학에 있어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실제로 특목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경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른 유형의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경우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또한 외고와 같은 특목고 졸업자는 일반고 졸업자에 비해 위세가 높은 대학으로 진학할 가능성이 크다."(59-61)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학업성취와의 밀접한 연관성을 고려할 때, 2000년과 2018년 사이 계층 간 학업성취 격차 심화 현상은 결국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되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더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한국 학생들의 읽기점수 누적 분포의 90 백분위수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점수는 2000년 607점이었으나, 2018년에는 639점으로 32점이 높아졌다. 이와는 반대로, 읽기점수 누적 분포의 10 백분위수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점수는 2000년 428점이었으나, 2018년에는 379점으로 무려 50점이나 하락하였다. 결국 한국 학생들의 평균 PISA 읽기점수는 2000년에서 2006년까지 상승 곡선을 그렸으나 이후 계속 하락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과 학업성취가 낮은 학생들의 읽기 점수가 크게 하락하면서 전체 평균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73)


# 질적 측면에서의 교육 불평등 심화 요인

1. 사회경제적 차원 : 1997년 외환 위기로 촉발된 소득 양극화로 가정의 교육투자 수준 격차 확대

2. 인구학적 차원 : 한부모 가정 증가, 출산율 감소, 다문화 가정의 증가로 가정 배경의 차이 심화

3. 교육제도 차원 : 고교평준화정책(1974) 같은 교육평등 정책이 무너지면서 계층 간 격차 확대


5 한국사회 교육 불평등의 기제


"미국의 사회학자 콜먼과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비슷한 시기에 개인 간 혹은 가족 구성원 간의 사회적 연대가 가져다주는 여러 이점들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자본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이 둘은 사회이동(social mobility)에 있어 사회자본의 역할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콜먼은 비록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다 하더라도 자녀와의 강한 연대와 결속을 통해 부모가 자녀의 교육결과에 긍정적이고 독립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자본이 사회이동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구조적으로 자녀와 결속을 다지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자본은 사회이동보다는 계급재생산의 기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자본이 사회이동의 기제로 작동하는지, 교육 불평등(계급재생산)의 기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85-6)


"문화자본은 부르디외의 문화재생산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서구사회에서의 계급재생산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문화재생산이론에 따르면, 세대 간 문화자본의 전수를 통해 계급재생산이 이루어지고, 학교는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교는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공간이다. 즉, 학교는 가치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특정한 언어적, 문화적 형식을 선호하는데 특히 지배계급의 문화를 반영한다.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지배문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됨으로써 학교문화에 친숙한 언어적, 문화적 성향을 입학 전부터 문화자본의 형태로 습득하게 된다. 반대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언어적, 문화적 성향에 친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문화자본의 불평등한 계급 간 분배는 교육 불평등을 초래하고, 이는 다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된다."(87)


"한편, 사교육과 관련한 거의 모든 연구들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사교육 수요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가 사교육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들은 사교육 관련 정보 수집에 더욱 적극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계층 간 사교육 기회 격차가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다. 그러나 사교육 참여가 학생들의 시험 성적이나 대학 진학과 같은 교육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는 일관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교육결과에 대한 사교육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 간에 가정배경을 포함한 학업성취, 동기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94)


#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국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 : 사회자본 〉 문화자본 〉 사교육


6 국제 비교 관점에서 본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


"2000~2018 PISA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과 일본의 경우 지난 20여 년간 계층 간 학업성취 격차가 전반적으로 감소하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빈곤층과 상위층 자녀의 학업성취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는 여러 요인 가운데 각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서로 다른 교육개혁 전략에 주목하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계층 간 학업성취 격차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여 년 간 학교 간 및 학교 내의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추진해 온 정책적 노력의 결과일 수 있다. 반면, 4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계층 간 학업성취 격차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같은 기간 형평성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에서 탈피하여 학교 선택권 확대, 교육과정의 차별화 등 수월성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일 수 있다. 요컨대, 교육정책의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국가 내 학업성취 측면에서의 불평등은 완화 혹은 심화될 수 있다."(119-20)


7 결론: 한국사회, 교육 불평등은 심화되었는가?


"이 책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와의 연관성이 어떻게 변화 왔는지 분석하였다. 이때 자녀의 교육 결과는 교육성취(educational attaintment)와 학업성취(academic achievement) 측면을 나누어 고려하였다. 교육성취는 고졸이나 4년제 대졸과 같이 개인이 획득한 교육 수준, 즉 최종학력으로 측정될 수 있으며, 학업성취는 수능과 같은 표준화된 시험 점수나 학교 내신 성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 교육성취에 있어서 불평등은 상급학교 진학에서의 계층 간 교육기회 격차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수직적(vertical) 또는 양적(quantitative) 측면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반면, 학업성취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같은 학교급 내에서의 계층 간 학업성취 격차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수평적(horizontal) 또는 질적(qualitative) 측면의 교육 불평등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에서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7-8)


"한국사회에서 양적 측면에서의 교육 불평등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모두 존재하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올수록 심화되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육 기회가 팽창하게 되면서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은 상급학교 진학 여부보다 동일한 학교급 내에서의 차별적 교육 기회 향유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의 차별적 교육 기회는 고등학교 진학 단계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대학 진학 단계에서는 2년제와 4년제 대학을 중심으로, 그리고 4년제 대학 중에서도 세칭 SKY 대학, 인서울 대학, 지방 대학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명문대' 혹은 '영어유치원─영재교육원─영재·과학고─명문대'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한국사회의 엘리트 코스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질적 차원의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128-9)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질적 차원의 교육 불평등이 증가한 이유는 4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사회경제적 차원, 인구학적 차원, 교육제도 차원의 요인들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이 책의 결론을 토대로 예측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학교 선택권 확대, 교육과정의 차별화 등 교육의 수월성에 초점을 둔 교육정책 기조가 계속 이어질 경우 미래 한국사회에서 질적 차원에서의 교육 불평등은 낮은 학교급으로 이동하여 더욱 심화될 것이다. 반대로, 공통 교육과정의 강화, 공립학교 교사 순환제 등 학교 간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계속된다면 미래 한국사회에서 교육 불평등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제도나 정책의 변화 만으로 교육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교육 제도와 정책에서 미래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의 해결책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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