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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전염 -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1년 4월
평점 :
머리말
"애덤 스미스는 흔히 경쟁적인 시장이 최대 다수에 최대 이득을 안겨준다는 주장을 지지한 인물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스미스의 입장이 아니었다. 그를 특징짓는 통찰은, 편협한 이기심이 흔히 사회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생각들 간의 경쟁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좋은 생각은 대체로 승리를 거두지만, 생각들이 서로 다투는 시장이, 특히 단기적으로는 더 그렇지만, 공공선을 믿을 만하게 촉진한다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내가 이 책에서 힘주어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공공 정책을 입안하는 데서 사회적으로 이로운 밈은 장려하고 해로운 밈은 저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사회적 힘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이 왜 우리에게 이로운지 설명하고, 그러한 정책을 실시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12-3)
1부 도입: 논쟁의 개요
"간접흡연과 재정적 영향으로 초점을 좁히면 흡연자가 타인에게 입히는 피해를 턱없이 과소평가하기 쉽다. 흡연자가 되기로 한 누군가의 결정이 낳는 최대의 해악은 다른 사람들도 담배를 따라 피울 가능성을 높이는 데 따른 피해다. 누군가가 흡연자가 되면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동료 집단에 흡연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그 집단의 구성원은 모두 흡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흡연 습관을 들인 이들은 다시 그들 동료 집단 구성원 모두의 흡연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게다가 이 새로운 흡연자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의 흡연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비록 그보다 더 작은 정도이긴 하나 좌우지간 간접흡연으로 인한 진짜 피해도 키워준다. 한마디로 모종의 규제들이 누군가의 흡연을 막아준다 해도 그의 간접흡연 혹은 그가 정부의 의료 예산에 주는 부담으로 인해 타인에게 안기는 피해는 실제로 예방한 전체 피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24-5)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우리가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본적 귀인오류'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더러는 더 좋은 쪽으로, 하지만 좀더 흔하게는 더 나쁜 쪽으로 말이다. 분별력 있는 식습관이나 규칙적 운동처럼 건강을 증진하는 행동은 대개 습득하기가 어렵다. 좌우간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나며, 인간 역시 대다수 동물과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경향성을 지닌다. 우리는 즉각적 보상과 처벌은 턱없이 강조하고,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는 보상과 처벌은 지나치게 등한시한다. 대다수 사람의 경우, 건강에 이로운 행동은 그러한 행동을 널리 행하는 공동체에서 훨씬 더 습득하기 쉽다."(27-8)
2부 행동 전염의 기원
"사회심리학자들은 사회적 영향력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우리의 일반적 경향성을 오래전부터 지적해왔지만, 정작 그런 경향성이 드러나는 까닭에 대해서는 그만큼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았다. 이러한 불균형이 드러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대개 맥락적 요소보다 사람이 더욱 우리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생하다. 하지만 맥락적 요소는 따분하다. 적어도 사람과 비교해볼 때는 그렇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같은 불균형이 드러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힘을 비롯한 기타 맥락적 신호는 대개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지 메커니즘의 해부학적 복잡성 자체와 그것이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속도 때문에 그 메커니즘은 거의 전적으로 의식적인 인식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힘을 비롯한 여러 맥락적 신호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못된다.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51)
"찰스 다윈이 분명하게 규명한 대로, 자연선택은 거친 도구다. 자연선택이 주조하는 인지 체계는 모든 환경에서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보여주는 도구라기보다 폭넓은 적응력을 지닌 장치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착시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인지 체계의 결점이라기보다 거의 모든 공학적 디자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까다로운 트레이드오프의 증거로서 바라보는 게 옳다." "한마디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평가는 사실상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준거 틀에 기댄다. 특히 중요한 한 가지 준거 틀은 우리가 평가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자극의 절대적 수준이다. 마음과 물체의 관계를 규명하는 정신물리학에서 중요시하는 '베버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자극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지는 원래 자극의 비율로 측정한 변화의 크기에 의존한다. 따라서 변화는 비교의 관점에서 클 때만 크게 느껴진다." "이는 우리가 거리, 온도, 소란도, 음 높이, 무게, 고통, 밝기, 숫자, 다른 수많은 신호 등 그 어떤 것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57-9)
"무리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예는 주식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 기업의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회사의 현재 및 미래 수입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 이론은 공공 증권거래소에서 사고파는 한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의 현재 및 미래 이익에 대해 매긴 현재 가치에 비례해 오르내린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누구도 진정으로 어떤 기업의 미래 이익이 정확히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므로, 투자자들은 추정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추정치는 잘 추론된 시장 분석 결과에 크게 의존하는 게 보통이지만, 투자자들은 한 기업의 주가가 더러 전반적 낙관론이나 비관론 신호에 반응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과거에 말한 바와 같이, 증권 컨설턴트의 과제는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실적이 좋을 것 같은 기업을 가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이 최고 실적을 낼 거라고 여기는 기업을 예측하는 작업이다."(77)
3부 행동 전염의 사례
"다른 사람들로부터 힌트를 얻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적응성 있는 전략이다. 과거 철학자들은 노예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느냐와 관련한 격정적 논쟁에 참가했지만, 오늘날 그런 논의의 세부 사항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잘못임은 거의 보편적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 역사적 해결책에 이르게 된 논쟁을 신중히 연구한 뒤 그러한 견해에 다다른 게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다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아는 거의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날 그 문제에 기울인 상당한 에너지를 오늘날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문제, 혹은 다른 좀더 유용한 일에 쏟아부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신념 유형이 흔히 시공간에 따라 왜 그토록 변화무쌍한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95)
"동성 간 결혼이나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지지와 관련해 여론 궤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실질적 논쟁은 사실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관점에 더욱 힘이 실림을 알 수 있다. 동성 간 결혼에 대한 반대 근거는 주로 동성 커플은 오랫동안 결혼이 금지되어왔다는 사실이었다. 보수적인 철학자이자 정치인인 에드먼드 버크가 주장했을 법한 대로, 그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입증 책임을 부여한다. 하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달리 제공해야 할 게 별로 없다. 특히 그들은 동성 간 결혼을 왜 금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신중한 논리를 담은 논쟁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동성 간 결혼 지지자들은 수고스럽게도 그런 결혼이 왜 공동체의 이익에 하등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실제로 수많은 긍정적 결과를 내놓는 데 기여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일단 사람들이 그러한 논의에 귀 기울이고 토론을 시작하게 되면서 동성 간 결혼 지지자들은 꾸준히 호응을 얻었다."(111)
"행동 전염과 전통적인 경제 유인이 서로를 강화해주는 현상을 '조세 순응(tax compliance)'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책 영역은 없다. 사람들이 자국이 세법에 어느 정도 복종하는지 조명하는 전통적인 경제 모델은 거의 전적으로 협소하게 정의된 물질적인 유인에만 주목한다. 법과 규범의 집행은 이러한 모델 상황에서조차 중요하지만, 그 중요함의 정도는 우리가 행동 전염의 효과까지 고려할 때보다 훨씬 적다." "높은 수준의 조세 순응은, 대다수가 다른 사람이 정직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상대적으로 유지하기 쉽다. 이때 동료 영향을 무시하는 전통적인 모델들은 조세 집행을 완화하면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해도 처벌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여기므로 탈세가 늘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느슨한 조세 집행의 간접적 영향은 그로 인한 직접적 영향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 남들이 조세와 관련된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순식간에 폭발적인 피드백 과정이 뒤따른다."(150-3)
"행동 전염은 흡연, 과음, 불건전한 식습관, 낮은 조세 순응, 그리고 수많은 다른 문제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의 피해는 동료가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친 데 따른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사람이 정부 관료보다 좀더 세심하게 자신의 돈을 소비한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사적인 소비 결정은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대체로 합리적이라고 인정하자. 하지만 개인적 합리성이 곧바로 집단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잘 보려고 모두가 일어서면 다들 앉아서 편하게 볼 때보다 더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처럼 말이다. 개인적 합리성과 집단적 합리성은 소비와 관련한 의사 결정에서도 그와 유사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동료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연속적인 상호 상쇄식 소비를 촉발하고, 그 결과 훨씬 더 필요한 다른 부분에 쏟아부어야 할 자원을 부족하게 만든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정책은 엄청난 이득을 낳을 것이다."(177-8)
"작고한 영국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는 주로 절대적 특성보다 상대적 희소성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재화를 기술하기 위해 위치재(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내가 받은 교육의 가치는 내 직업 전선에 종사하는 선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는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적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범주에 속한 다른 재화들과의 상대적 비교에 거의 좌우되지 않는 재화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비위치재(nonpositional goods)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어떤 영역에서 다른영역보다 상대적 소비에 더욱 신경 쓰는 경향은 소비와 관련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왜곡한다. 그에 따라 내가 말한 이른바 위치재적 군비 경쟁(positional arms races), 즉 위치재에 중점을 둔 점증하는 소비 패턴을 초래한다. 이것이 낳는 역학은 군비 경쟁을 추동하는 역학과 매우 비슷하다. 양쪽의 경우에서 낭비적 소비가 발생하는 까닭은 일부 소비 범주가 다른 소비 범주보다 더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180-2)
"밀턴 프리드먼은 어떻게 소득과 안전 간의 트레이드오프를 따져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노동자들에게서 앗아간다며 안전 규정에 반대했다. 또 다른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에게서 자유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헬멧 착용 규정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는 둘 다 군축 협약이 각국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많은 무기르르 확보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정확히 그들의 논리다! 각국이 기꺼이 군축 협약에 서명하는 까닭은 그들이 무기와 관련해서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놔두면 결과적으로 무기에 쏟아붓는 지출이 과도해질 것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장의 안전 규정도 같은 이치다. 작업장의 안전에 관해 개별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존중하게 되면 그와 동일한 결정을 집단적으로 내리도록 해주는 법률을 지지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는 부정당한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규정을 '위치재적 군축 협약'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186)
"불평등의 증가는 우리가 목격한 소비 폭포 효과의 유일한 원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중앙값 소득자가 점점 더 살만해졌기 때문에 소비 폭포 효과가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미국 남성의 현재 시급 중앙값은 실제로 1980년보다 더 낮아졌다." "노역지수(toil index)는 중간 소득자가 그 그 목표를 이루기에 충분한 돈을 벌기 위해 매달 일해야 하는 시간을 나타낸다. 소득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 모든 계층에서 대략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고 있을 때, 노역지수는 거의 완전하다 할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중간 소득자는 중간 가격의 주택에 쓸 월세를 벌기 위해 매달 일주일 남짓만 일하면 됐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중간 임금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했다." "워런과 티아기는 《맞벌이의 함정》에서 맞벌이 부부의 제2의 소득이 그저 수지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것이 되었음을 확인했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98-200)
4부 행동 전염의 정책적 함의
"행동 전염에 기반한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그러한 규제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을 위협하면 타인에게 피해 끼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시한다. 사람들의 행동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은행을 털었다고 강도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우려가 널리 퍼져 있음에도 그 우려의 논리적 기반은 취약하다. 자유 의지를 부정한다고 해서, 혹은 우리 행동이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받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모든 행동은 원인이 낳은 결과라는 의미일 뿐이다." "우리의 선택이 흔히 외부적 힘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사회가 그러한 선택에 책임을 묻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게 정당하다는 믿음은 분명 양립 가능하다."(246-7)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우리가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즉 규제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 때문에 입는 피해를 무시해야 한다는 관점─을 채택한다고 가정해보자. 심지어 그런 관점조차 규제자가 행동 전염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행동 전염으로 인한 흡연은 새로운 흡연자 자신뿐 아니라 그 피해에서 벗어날 실질적 방도가 없는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이 간단한 문장에는 사회과학자들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합의가 담겨 있다. 즉 우리는 성격이나 인성 같은 개인적 특성을 살펴보기보다 사회적 환경을 들여다봄으로써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공 정책을 활용해 사회적 환경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주조해야 할 만한 근거는 다분하다."(251-5)
"환경 오염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사람이나 기업이 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저 깨끗한 생산·소비 방법이 더러운 생산·소비 방법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관찰에서 비롯된다. 만약 깨끗한 생산·소비 방법이 더 싸다면 오염은 애당초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오염이 일어나는 과정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다. 오염원 배출에 따른 피해가 주로 남들에게 가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는 환경 외부성을 억제하기 위한 과세 접근법을 최초로 도입한 선구자다. 그는 자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후생경제학》에서, 더러운 과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배출하는 오염에 과세함으로써 그 과정을 더욱 비싸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부과된 세금을 흔히 피구세(Pigouvian taxes, 혹은 Pigovian taxes)라고 표현한다."(265)
"행동 전염은 에너지 집약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경향성을 증폭시키므로, 이산화탄소세 채택은 그러한 선택을 한층 비싸게 만들어 에너지 집약적 행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피드백 효과를 창출하기도 한다. 부적(negative) 측면의 예로는 가령 SUV를 모는 일을 한층 비싸게 만들어 SUV 구매자 수를 점점 더 줄이고, 이것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SUV를 훨씬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적(positive) 측면의 예로는 태양 전지판 설치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늘려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도록 이끌고, 다시 다른 사람이 그 추세를 따르도록 유도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엄격한 이산화탄소세를 채택하는 데 따른 가장 큰 이득은 그 세금이 촉발한 기술적 혁신을 이루려는 추세에서 온다. 우리 행성이 계속 살아남을 것이냐 말 것이냐는 아마도 이러한 기술적 혁신의 출현에 달려 있을 것이다."(275-6)
"1942년 경제학자 어빙 피셔와 그의 형 허버트 피셔는 그들의 책 《건설적인 소득 과세─개혁을 위한 제안》에서 현재의 소득세 제도를 간단히 손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위치재를 대상으로 하는 이상적인 소비세 과세에 근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현재의 소비세를 각 가정의 연간 소비 지출에 대한 좀더 과감한 누진세로 대체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각 가정이 조세 당국에 소비 실태를 입증하기 위해 영수증 수천 개를 챙겨야 하는 곤혹스러운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피셔 형제가 지적했다시피, 일단 우리가 한 가족의 총소득이 소비와 저축,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런 절차를 거쳐야 할 필요성은 사라진다. 따라서 그 가족의 전체 소비액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오직 연간 소득과 총저축액에 추가된 연간 저축애, 이 두 가지 수치만 알면 된다." "다만 저소득층 가정은 저축률이 낮은 경향이 있음을 인정해 상당 규모의 표준 공제액을 빼고 계산한다."(286-7)
"과세되는 소비에 대한 한계 세율은 낮게 시작될 것이다. 저소득층 가정이나 중산층 가정이 현행 소득세에서와 같거나 더 낮은 세금 고지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한계 세율은 과세되는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꾸준히 올라갈 것이다." "누진 소비세를 처음에 이처럼 점진적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하면 고가품 소비의 증가율이 소폭 감소하고, 그에 따라 저축액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어 투자가 늘어나면 생산성이 증가한다." "누진 소비세가 꾸준히 소득세를 대체해가면, 국민소득에서 사적 소비에 쓰이던 몫은 점차 줄고, 민간과 공공 양자의 투자에 할애되는 몫은 늘어난다. 하지만 높아진 투자는 국민소득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므로, 누진 소비세 아래서는 결국 절대적 소비 수준이 소득세에 기반한 과거 경제에서 볼 수 있던 절대적 소비 수준을 능가하게 된다. 따라서 누진 소비세로의 전환은 사실상 모든 이에게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동시에 안겨주는 정책적 변화다."(287-9)
"소득세를 누진 소비세로 대체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 불평등이 줄어드는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더불어 부의 불평등은 되레 늘어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부자들은 누진 소비세 제도 아래서는 많은 재산을 남기고 사망하는데, 그 때문에 강력한 상속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생을 마무리할 때쯤 부자가 되어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이 인생 말년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직업 이력을 막 시작할 무렵 상속세에 대해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그에 따른 세수 덕에 가능해진 향상된 공공 서비스를 평생 누릴 것이다. 그들 혹은 그들의 상속인 가운데 거의 누구든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다. 상속세를 낼 정도로 충분히 운 좋게 인생 말년을 맞은 극소수 사람들은 하등 불평할 이유가 없다. 소송에서 승리한 원고가 자신이 의뢰한 변호사에게 성공 보수를 지불하는 데 대해 불평할 까닭에 전혀 없는 것처럼 말이다."(290-1)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진척을 이루어온 전략을 찾아냈다. 이런 전략은 대부분 〈무슨 일인가 해보라(do something)〉고 듣는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피한다. 그들로 하여금 행동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론 내리도록 해주는 대화를 시작하는 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간 대화의 내용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드러난 일관된 결과는 질문하기가 대화 파트너들이 공유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유일하게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에서 여러 상이한 유형의 질문이 많지만, 후속 질문은 유독 특별한 힘을 지니는 듯하다. 이 분야를 선도하는 하버드 경영대학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와 레슬리 존이 썼다시피 〈후속 질문은 대화 파트너에게 당신이 듣고 있으며 마음을 쓰고 있으며 더 알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후속 질문을 많이 던지는 파트너와 상호 작용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신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 경향이 있다〉."(320-4)
"물론 질문하기가 중요한 정책적 이슈에 관해 더욱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도록 촉구하는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매슈 볼드윈과 요리스 라메르스는 시간 프레이밍(temporal framing)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상이한 환경 정책 옵션을 평가하는 방식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작업은 보수주의자는 과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유주의자는 미래에 더욱 주목하는 것 같다는 관측으로부터 시작한다. 과장되었지만 이러한 둘 간의 차이에 대한 이같은 특성 묘사가 시사하는 대로, 보수주의자는 현재가 과거보다 더 나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는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보수주의자를 상대로 환경 보호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람은 과거보다 현재 환경의 질이 더 나빠진 측면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준다."(335-7)
"사람들은 본인의 성공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흔히 후대에도 비슷한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투자에 쓰일 세금을 지지하는 데 덜 적극적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 운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키려는 시도는 적대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나는 순전히 우연찮게 이와 같은 장애물을 가장 빠르게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 성공한 친구들에게 그들 역시 운이 좋았음을 상기시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그러는 대신 그저 정상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누려온 행운의 예를 떠올려볼 수 있겠냐고 묻자, 그들은 전혀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눈을 반짝이면서 관련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본인의 기억을 반추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예를 생각해내면 그것에 대해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 사례를 소개하는 과정은 흔히 또 다른 사례를 떠오르게 만들고, 그들은 역시 그것에 대해서도 열심히 들려주었다."(345-6)
"만약 당신의 시간 가운데 최소한 일부만이라도 당신과 모든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가장 중요한 인지적 편견 가운데 하나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다. 훌륭한 과학자는 자신의 가정이 잘못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우리 대다수의 자연스러운 욕구는 우리가 애초에 가진 믿음을 확실하게 해주는 정보에 대해 더욱 수용적이다. 그와 모순되는 정보에 눈감는 경향은 당신이 어떤 아이디어를 믿어야 한다는 동기가 강할 때 특히 커진다. 그 아이디어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제가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반면 그 아이디어가 잘못이길 바라는 사람은 〈제가 그것을 믿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적어도 우리 시간의 일부만이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투자한다면 우리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한층 커질 것이다."(348)
맺음말
"나는 오랫동안 개인의 소비 결정만으로는 온난화 위협을 저지할 가망이 거의 없다는 월러스웰스의 견해를 공유해왔다. 우리에게는 공공 정책의 대담한 변화 역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행동 전염의 위력을 연구하면서 의식적인 소비도 내가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책 전선의 진보를 촉진할 수 있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행위,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 혹은 좀더 기후 친화적인 식이법을 선택하는 행위는 비단 다른 사람이 그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가능성만 키워주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 행위자의 기후 변화 옹호론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기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 행위자가 강력한 기후 관련 입법에 찬성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당선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이웃을 설득하러 나서도록 이끌어준다. 온난화 저지는 대대적인 사회 운동이 없으면 정말이지 무망한 일이다."(361-2)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라는 가장 시급한 두 가지 당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못하면 현재의 교착 상태를 뚫고 나가기 위한 폭넓은 정치 연합체를 꾸리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대한 반대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너무 감당하기 벅차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두 영역 다에서 실패할 게 뻔하다며 반박한다. 여기에 불평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필요한 누진세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부유한 유권자에게 고통스러운 희생을 요구한다고 가정하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에게 높은 최고 세율을 부과해도 입찰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부자들의 상대적 능력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해준다면, 유권자 대다수는 아무런 실질적 희생도 따르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양면전이 올바른 길이다. 경제 불평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완화해주는 바로 그 같은 정책들이 동시에 탄소 중립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다."(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