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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미래 - 왜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월터 카우프만 지음, 이은정 옮김 / 동녘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들어가는 글
#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1. 인류의 위대한 작품들을 보존하고 양육한다.
2. 인간 실존의 이유와 궁극 목적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3. 비전을 가르친다.
4. 비판 정신을 기른다.
1장 네 가지 유형의 마음가짐
"인문학과 관련한 마음가짐에는 먼저 통찰가visionaries와 사변가scholastics 유형이 있다. 이 구분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우선 통찰가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일반적인 상식과 단절되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계속 시도한다. 대개 이들은 현실의 언어가 불충분하다고 여기며 그로 인해 때때로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를 겪기도 한다. 통찰가의 이미지를 종교계에서는 예언자나 교부 성직자로, 철학이나 문학, 역사, 예술계에서는 천재로, 과학계에서는 미친 과학자로 부여해왔다. 반면 사변가는 자신의 엄격함과 전문성에 자부심이 있으며, 자기 분야의 공론이나 공통의 노하우를 지나치게 신뢰하고,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닌다. 보통 이들은 자기 시대의 통찰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가 속한 분야의 통찰가들을 과거 통찰가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적대시한다."(43-4)
"통찰가들은 장인정신을 가진 어떤 인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통찰가와 자신만의 위대한 비전이 없는 사변가를 대립적인 것으로만 맞세운다면, 이런 이분법은 한쪽에만 모든 좋은 특질을 부과하는 마니교Manichaean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나는 통찰가의 범주를 광인crackpots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통찰가와 사변가는 모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통찰가는 기발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아이디어들ideas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그들은 강박적이거나 편집증적일 수도 있으며 아주 빈번하게는 두 경우 모두일 수도 있다. 가령 뉴턴의 예처럼 가장 위대한 통찰가조차도 때때로 어떤 시기에서는 이런 광인의 유형에 속했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광인들이 뉴턴과 같은 천재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비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의 세부 사항들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 있는 엄청나게 많은 사변가들의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52-3)
"소크라테스는 사변가가 아니었다. 그는 외톨이였으며 자기 시대의 만연한 상식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진 비전을 구체화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통찰가가 되려하기보다는, 사변가-반대주의자antischolastic가 되고자 했다. 그는 시대가 품고 있는 신념과 윤리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일반적 합의에 무비판적으로 기대고 있는 지식인들의 주장을 비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며, 혼란스러운지, 또한 유명한 교사와 정치가, 대중 연설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세 번째 유형을 구현한 인물이다. 세 번째 유형의 인물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줄기찬 비판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가critics는 예술이나 음악, 문학이나 영화 분야의 평론가들이 아니다. 사실 이들 중 몇 명은 사변가이며 대다수는 (통찰가와 사변가들이 경멸했던) 저널리스트이다."(63-4)
"저널리즘과 사변주의는 대립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변가는 엄격함과 견실함에 가치를 두고, 저널리스트는 신속함과 관심을 끄는 것에 가치를 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자의 구분이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의) 에토스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급하게 서두르는 이런 일이 30년 후에도 존속될 수 있는 것인지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의 에토스가 '모든 시대를 위한 소유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던 투키디데스나 '사후에 태어나기'를 희망했던 니체 같은 철학자의 에토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많은 사변가들이 학문적인 저널을 위해 엄격함을 과시하면서 시의적절한 주제들로 글을 써내려가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의 출판물이 30년을 버티리라는 아니면 적어도 10년이라도 버티리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의 엄격함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그것들은 겉으로만 그럴 듯해 보일 뿐이어서 처음에는 견고해 보이지만 조잡한 작품인 경우가 많다."(73-4)
"비평가에 대해 논할 때 우리는 이를 소크라테스 유형과 저널리스트 유형으로 구분해야 한다. 두 가지는 아주 분명하게 반대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사명 중 하나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무지와 그들이 주장하는 지식의 허위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정의를 빌려보면, 저널리스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 더 관심을 끌기 위해 인용부호를 추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경건하고 믿을 만한 신념이라도 혼란스럽거나 잘못된 주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 유형은 검증받지 않고 널리 공유되고 있는 확신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는 한 시대의 신념과 도덕을 엄밀하게 따져보려고 시도한다. 이 유형이 주요하게 문제로 삼는 것은 일반 여론과 특권적인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지식이다."(75-6)
"당연한 것이지만 소크라테스적 유형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나의 관심은 다양성의 측면이 아닌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깊은 숙고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점은 예전에 우리가 지녔던 것보다 적은 한 가지 유형만을 갖게 된 것이 유감이라는 뜻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유형이 필수불가결하게 속해 있는 하나의 혼합물을 인문학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적 에토스를, 만일 그것이 없다면 음식의 맛이 밋밋해지고 무미해지는 소금이나 후추에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소금이나 후추로만 만들어진 음식은 훨씬 더 최악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많은 점에서 잘못이 있다. 독일의 예가 보여준 것처럼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한 맛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두 사람의 소크라테스적 교사가 참여한 대규모의 교수진은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비판적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비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많은 소크라테스적 교사가 필요하다."(85)
2장 독서의 기술
"(고전을 읽는) 첫 번째 독서법에서 저자에 대한 독서가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 "경전의 수호자들은 텍스트에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용한 지식이 있다는 인상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강하게 남겼다. 경전의 출처는 신비에 싸여있거나 성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전의 의미는 어떤 부분에서는 평이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극단적으로 모호한 것처럼 여겨졌다. 따라서 많은 난해한 구절들에는 그에 대한 주해註解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제자들은 해석을 할 줄 모르지만 자신은 할 수 있다는 소위 권위자들의 주장을 사실로 믿게 했다. 주해는 전형적으로 처음에는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부여하고, 그 다음에는 그 생각에 다시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와 같은 독서 방식을 '성서 해석적exegetical' 이라고 부른다."(116)
"이런 독서는 거의 대부분 자기-기만을 포함하고 있다. 성서 해석적 독서가는 자신이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한 후에,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고 다시 이 생각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성서 해석적 독서가는 텍스트의 저자가 이런 방식의 읽기와 사고방식, 그리고 존재양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런 도전은 심지어 미연에 제지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령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성서 해석적인 독서를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에게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았으며 고대의 시에 자신의 생각을 보여하지도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들 중 몇몇은 위대한 시인에 대해 가차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획기적인 태도 덕분에 그들은 서양 철학의 정초자가 될 수 있었다."(123-4)
"첫 번째 독서 방법을 '우리는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다'는 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독서 방법은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는 모른다'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두 번째 방법은 독단적이다." "독단적인 독서 방식의 세 가지 변형들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불평을 늘어놓을 때 쓰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X에 대해 알았다면(가령, 키르케고르가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었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둘째 형태는 약간 다른 방식의 불만으로, 다음과 같다. '그에게 우리처럼 뛰어난 기술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셋째 형태는 다소 품위 있는 불평으로, 다음과 같다. '그는 완전히 형편없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점은 우리 같은 부류에 근접해 있어.'" "독단적인 독서가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기피하며, 대안과 단점에 대해 눈을 감고, 그 텍스트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들여다보기를 거부한다. 기껏해야 그들은 근시안적인 태도로 거만을 떨고 있을 뿐이다."(128-31)
"세 번째 독서 방식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진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자.' 이와 같은 독서법은 불가지론적agnostic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서 방식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독서가의 관심은 다른 것에 있다." "첫째는 '골동품수집가antiquarian' 형태로, 이들은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으며, 오래되고 희귀한 것을 선호한다. 둘째는 '미학적인aesthetic' 형태로, 이들은 키르케고르나 플라톤의 텍스트를 미학적인 방식으로 읽을 수 있으며,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 종교 경전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려고 든다. 셋째는 '현미경적microscopic' 형태로, 이들은 한 작가의 작품 전체oeuvre는 말할 것도 없고 책 한 권조차도 몇 번씩 읽어낼 수 있을 만한 호흡을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저자는 지워져버리며, 도전적으로 '너'와 만나는 것은 회피되고, 분해될 수 있는 작은 파편들만 다루게 된다."(131-2)
"네 번째 독서 방식인 변증법적 독서는 그 안에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요소를 나는 '소크라테스적'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찰되지 않은 삶the unexamined life'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불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독서가들은 문화 충격을 회피하기보다는 그것을 기대한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믿음, 그리고 가치를 점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텍스트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 시대의 통설에 대해 저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변증법적 독서가는 자신이 길들여져 온 다양한 통설의 외부에 있는 관점을 추구한다. 텍스트는 그가 자유롭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텍스트는 자기-해방autoemancipation의 보조물이다." "그는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누군가의 권위를 기대하기보다는 자신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적인 관점을 추구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 놓여 있는 거시적인 대립 지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다."(137-8)
"변증법적 독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를 나는 대화적dialogical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텍스트는 우리가 그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너You'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텍스트가 인도하는 곳으로 우리 자신을 이끌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의 독특한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다른 목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전하고 충격을 가하며 불쾌감을 주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이런 독서가들은 텍스트에 권위를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고, 옳다는 주장을 펼치려 하지도 않으며, 미리 동의하려고 마음먹지도 않는다. 이들은 텍스트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우리의 관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모든 점에서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한다. 변증법적인 독서가는 자신에게 묻는 것을 허용하며, 또한 자신도 텍스트에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독서가와 텍스트 간의 대화를 시작하게 해준다."(139-41)
"변증법적 독서의 세 번째 요소는 '역사-철학적'인 것이다. 독단론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진리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증법적 독서가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전의 독자와 논평, 그리고 해석과도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이런 자료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가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준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실수는 대개 자신의 실수보다 훨씬 더 잘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자료들은 그것의 도움 없이는 간과했을 수도 있을 문제점과 실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변적인 독서가는 자신의 학파에 속한 소수의 정예부대가 제시하는 해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잦다. 이런 독서가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는 동료들이 제시하는 해석만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변증법적 독서가는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해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164-5)
# 변증법적 독서의 '역사-철학적' 요소를 구성하는 세 가지 동심원
1. 텍스트 : '텍스트 내적인 증거들에 의존(번역 과정에서 탈락되는 의미 문제를 포함한다)'해서 저자의 주된 문제의식을 살펴본다.
2. 작품세계 : 작가의 작품 전체와 작품 세계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기질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일정한 상像을 그려본다.
3. 시대배경 : 시대배경을 제쳐두면 텍스트의 의미meaning를 파악하기 어렵고, 텍스트의 의의significance는 전혀 판단할 수 없다.
3장 서평의 정치학, 번역과 편집의 윤리학
4장 고등교육과 종교의 위상
5장 비전은 가르칠 수 있는가
6장 학제 간 연구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