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토마스 수사님이 거름더미에서 죽은 요한 신부의 시신을 안고 '왜 하느님, 대체 왜? 하고 불렀을 때부터 그러고 싶었다. 창가에서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보니 토마스 수사님은 오랜 이야기가 힘에 겨운 듯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그맣고 파란 눈을 아이처럼 찡그리면서 또 웃었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 옥사덕을 만났어요. 박정희가 해방신학에 대한 책을 인쇄한다고 우리 인쇄소를 압수했을 때, 그때 우리 독일 사람들은 차마 못 건드리고 한국 수사님들, 직원들 데려갔을 때,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을 자주 찍는다는 이유로 최민식 작가의 사진집을 압수했을 때, 나는 옥사덕을 보았지요. 남미의 로메로 주교의 학살에서 옥사덕을 보았고, 80년 5월 도륙당하던 광주....에서 다시 옥사덕을 만납니다. 한국적 민주주의...이런 말들, 잘 살아보세 이런 언어의 왜곡에서 다시 옥사덕을 만납니다.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끼게 하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  (P.238~ 239 )

 

 

 

 "나무가 참 많네요?"

 내가 묻자 이사악 신부님이 대답했다.

 "여기 수도원의 주 수입원이 크리스마스용 트리를 파는 거래. 아무래도 뉴욕도 가깝고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그제 도착해 여기 수사님께 설명을 들었는데 500에이커, 한국식 표현으로 치면 61만평? 워낙 땅이 넓어서 그런가 말이야, 이게 다 참나무 숲이라는군.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란 건 없다는 거 말이야."

 뜻밖의 말이었다.

 "그래요?"

 "응. 나도 여기 와서 알았네.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자료를 좀 찾아보니까 수피를 잘라내어 굴피집의 지붕으로 썼다는 굴참나무- 우리 수도원에서 순교자를 여럿 냈던 옥사덕의 지붕 자재도 아마 이 굴참나무였을 거야- . 떡을 상하지 않게 감싸주었다는 떡갈나무, 예전에 신발 깔창으로 대기 좋았다는 신갈나무, 묵을 쑤어 먹으면 제일 맛있는 열매를 맺는다는 졸참나무, 거기서 열린 도토리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도토리묵을 쑤었다는 상수리나무.... .한마디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가 다 참나무라는 거야. "

 참나무 숲속의 그늘은 서늘했다. 우리의 발소리는 그 고요한 숲의 침묵을 가르고 있었다. 가을 냄새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쌉싸름한 내음이 온 숲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지어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  (P.313~314 )

 

 

 

                                                        -공지영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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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01 18:51   좋아요 0 | URL
나무를 생각하고 품에 안을 수 있으면
삶이 새롭고 아름답게 열리리라 느껴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스스로 나무와 동떨어지면서
새롭거나 아름다운 삶과 자꾸 멀어지지 않느냐 싶어요..

appletreeje 2013-11-02 09: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이
나무에게서 받은 온갖 선물로 가득차 있는데, 어느덧 사람들은
그 생각을 잊는가 봅니다.
문득,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니..@.@

2013-11-01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2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3-11-01 22:16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습니다~*^^*
좋은 책 선물로 보내 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전 요즘 건강이 좀 안 좋아서 집에서 약 먹으면서 쉬다가 책 읽다가 그러고 있어요.ㅎㅎ

appletreeje 2013-11-02 09:34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이 책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며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후애님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아요~*^^*

요즘 또 건강이 안 좋으시다니 걱정이 많이 드네요..ㅠㅠ
후애님, 맛있는 것도 드시고 약도 드시고 천천히 몸조리 잘 하시며
즐겁게 책도 보시며 편안하고 좋은 주말 되세요~*^^*
 

 

 

 

 

 

 

                        차오프라야 도서관

 

 

 

 

 

                           도서관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린다

                           몇 년 동안 쓸까 말까 망설이던 편지

 

                           봄마다 담배를 끊는 당신께

                           의자에 앉기 전 인사부터 하는 당신께

                           소한(小寒)에 이삿짐을 싸는 당신께

                           엉킨, 비밀의, 눈물 고인, 캐스터네츠, 어쿠스틱 기타,

                        짙은

 

                           경계성 자폐를 앓고 있는 당신 때문이다

                           도서관 딱딱한 나무 의자처럼 서러워진다

                           입 밖으로 내보낸 적 없는 밀어들

                           종신형으로 서 있는 나무를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혼자 등불을 들고 가는 여자가 있는

                           타로 카드를 새해에 뽑았다

                           여자는 가슴 가득 책을 껴안고 잠들 곳을 찾고 있다

 

                           책은 어디에 있을까 잠은 어디에 있을까

                           공기와 빈 상자가 가득 쌓여 있는

                           차오프라야 도서관은 차오프라야 강가에 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모래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언제나 육체보다는 사랑을 원했다  (P.32 )

 

 

 

 

 

 

                         느낌이 좋은 사람

 

 

 

 

                            봄눈은 바라보는 자의 눈동자에 쌓인다

                            첼로와 하프를 위한 흰 눈의 낙법(落法)

                            저 장엄한 서사의 주인공은

 

                            봄 눈 내리듯 깨끗이 사라지는 이마

 

                            자기 발자국 소리를 천둥처럼 듣는 자

                            나비, 나비의 흰 망령(亡靈)들

 

                            찍히는 자의 혼을 들여다보느라

                            사진 찍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사진작가의 눈

 

                            느낌이 좋은 사람과는 밥을 함께 먹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는 너의 이마 위에 봄 눈이 내린다    (P.38 )

 

 

 

 

 

 

                              물방울 관음

 

 

 

 

                             로프를 잡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

                             여럿이 술을 마시던

                             고색창연은 그 자리에 아직 남아 있을까

                             그곳에서는 매번 무장해제되었다

 

                             매번 탈레반처럼 감정이 격렬해졌다

                             탁자에 엎드려 있던 내게 누군가 노트를 찢어 내밀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너는 누구를 좋아하는 거니

 

                             사리와 나는 멍하니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새끼를 많이 낳아 젖몸살에 시달리던 어미 개 사리는

                             이웃집 닭을 세 마리나 물어 죽이고 위안리치 중이다

                             하루종일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장독대와 맨드라미와 비쩍 마른 사리와

                             나는 하루 종일

                             장맛비 속에 들어앚아 함께 묵언 중이다

                             함께 감정의 형벌을 받고 있다

 

                             어미 개 사리야, 너는 누구를 좋아했던 거니  (P.64 )

 

 

 

 

 

 

                             지원의 얼굴

 

 

 

 

                              붉은 흙을 새긴 마음 때문인지

                              권진규의 조각 <지원의 얼굴>이 좋았다

                              사랑을 받는 것은 얼굴이 살아 있다

 

                              스무 살의 비 오는 날은 노랑 우산의 환(幻) 속에 숨

                           었다

                              벗어버리고 싶은 집, 구석, 언제나 밖이 좋았다

                              신발을 신고 나서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튤립이나 입을 노랑 비옷을 누가 입다 줬을까

                              시간이 흐른 다음, 사람들은 모르는 이를

                              노랑 튤립을 나라고 말해준다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누군가 내 얼굴을 조각끌로 심장에 새겨둔다면

                              진흙으로 남을지라도 패배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

 

                              그가 나간 다음 우리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저자는 왜 저리 고독한 거야

                              내가 나간 다음 등 뒤에 대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저자는 왜 저리 고독한 거야  (P. 88 )

 

 

 

 

 

 

                          해석되지 않는다

 

 

 

 

 

                              늙은 독학자는

                              끝을 본 사람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사람

 

                              독학자의 음악은 하나의 점

                              독학자의 언어는 하나의 점

 

                              점의 정수리를 뚫고 뿌리로 내려가는 깊이

                              그 깊이 앞에서는 누구나 시작하는 사람

 

                              궁극에 가면 모든 것은 모든 것으로

                              색소폰 소리는 바이올린 솔로 소리로

                              시는 호랑이 가죽으로

 

                              남는다, 위태로운 열정에 빠져

                              시작과 끝은 달빛 아래 흰 나무의 뿌리와 함께

                              달아난다 해석되지 않은 빛과 어둠과 함께  (P.119 )

 

 

 

 

 

                                                        -권현형 詩集, <포옹의 방식>-에서

 

 

 

 

 

 

 

 

 

 

 

       시인의 말

 

       감출 수 없는 속의 말들.

       감출 수 없기에 언젠가는

       내 시가 얼얼하게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생의 가닥을 찾을 때가 있다.

       늘 그리운 햇살이 10데시벨의 소음으로

       양철 지붕 위를 두드린다. 쓸쓸 명랑하게.

 

 

 

 

 

      간헐식 단식도 아닌 간헐식 몸살이, 물에 찬밥 말아 먹다가 체한 천사가 가슴을

      주먹으로 치듯 찾아오곤 하는 요즘이다.

      그럴땐 일들을 떠나 곧바로 책상에서 내려 온다.

      마법고양이 펠릭스가 눈꽃송이와 함께  아톰처럼 웃고 있는, 두툼한 회색 극세사이불을

      덮고 잠깐 한 30분이나 1시간쯤 잠을 자고 나면 다시 괜찮아지긴 한데, 아 이젠 내몸이

      내 뜻대로 안되는구나 싶은 마음에...ㅠㅠ

      오늘도 그런날이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마음풀기로 권현형 시인의 <포옹의 방식>

      을 읽는다. 

      새끼를 많이 나 젖몸살에 시달리던 어미 개 사리는, 이웃집 닭을 세 마리나 물어 죽여

      쇠사슬에 묶여 위안리치 중이지만, 문득 오래 전 다니던 산에 있던 암자의 하얀 진돗개

      '보리'는 너무 '발랄난망'하여 절 마당 나무 옆에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보리의 신랑은 누런 빛깔의 잘 생기고 점잖은 진돗개' 삼마'인데 삼마는 산길을 안내해

      주기도 하고 등산객들에게 간식도 받아 먹곤 했는데, 어느 여름 산에 오르다 보니 갑자기

      비가 내려 올라가기도 뭣하고 다시 내려가기도 뭣한 찰나에 어디선가 삼마가 나타나 어서

      암자로 가자는 듯, 앞장을 서 삼마랑 웃으며(개도 웃는 걸, 삼마에게서 보았다~) 드디어

      영원암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그 절의 마루에 앉아 삼마와 둘이 하염없

      이 내리는 장맛비를 보았던 그 기억이 난다. 삼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시인의 스무 살,처럼 나의 스무 살 즈음도 권진규의 테라코타 <지원의 얼굴>을 사랑

      하고, 최욱경의 그림들을 사랑하고, 자꼬메티와 조르주 루오의 <미제레레>를 옆구리에 끼고

      다닌 그 시간들이 문득, 약간 어두운 실내에서 창문처럼 나를 들여다 보는 듯한 지금이다.

      자주빛 싱싱한 사과같은 얼굴을 하고 다닌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 시간으로 되돌아

      가고 싶진 않다. 

      아직은 늙은 독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 시간도 나쁘진 않다.

      지금은 참이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던 마음에서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없다'를 깨닫는 그런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우리가 해석하겠는가. '점의 정수리를 뚫고 뿌리로 내려가는 깊이/ 그 깊이 앞에서는

      누구나 시작하는 사람' 일텐데...

      마법고양이의 마법으로 이제 나는 다시, 싱싱해져 즐겁게 일을 시작한다.

      오늘 장거리운전을 하며 길을 가신, 나의 님께도 이 기운을 함께 나눈다.

      오늘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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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30 19:11   좋아요 0 | URL
시와 함께 하루를 열고, 노래와 같이 달빛 누리는 하루 되소서~~

appletreeje 2013-11-01 18:39   좋아요 0 | URL
예~감사합니다!

2013-10-30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0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1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3-11-01 20:52   좋아요 0 | URL
집근처 도서관이 있어 좋지만, 대출하기 좋은 도서관일뿐 멋지게 책을 읽을수 있는곳이 아니어서 참 아쉬워요. 앉은 공간이 작아서 답답하다고 할까요. 어릴적 집에서 멀리 걸어서 갔던 도서관 정말 넓고 커서 도서관에서 책읽기 좋았었는데...

차라리 책을 들고 야외에서 읽는것이 좋은것 같아요.
책 대출하기도 좋고,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공간이 있는 도서관을 갖고 싶어요. ^^


아.. '옹기꽃게장' 종종 간답니다. 그런데 갈때마다 맛이 다를때가 있더라구요. 변함없이 같은맛이면 좋은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나봅니다. ^^

appletreeje 2013-11-02 09:33   좋아요 0 | URL
정말 도서관에 마땅히 편히 앉아 책 읽을 공간이 적어
저도 늘 아쉬워요. 보람쪽의 정보도서관은 그래도 야외공간도 넓고
주변에 바로 작은 숲이 있어, 가끔 친구네 집에 갈때는 그곳에서
책 빌리고, 나무평상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다 오곤 하지요.^^

'옹기꽃게장'은 저는 그때 가고는 못 갔는데..아, 그렇군요..
무엇이든 한결같으면 참 좋을 텐데요.^^

보슬비님! 즐겁고 편안한 주말 되세요~*^^*

후애(厚愛) 2013-11-01 22:25   좋아요 0 | URL
이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어요..
곧 겨울이 오겠지요...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은데... 따뜻한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평안한 밤 되세요.*^^*

appletreeje 2013-11-02 09:23   좋아요 0 | URL
요즘 외출을 하면, 알록달록한 낙엽들로 세상이 참 예뻐요~
아마 쇠락하면서도 주변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나무뿐이 없는 것
같고 저도 이렇게 나이를 먹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집니다~ㅎㅎ
예, 벌써 겨울이 저만치 오고 있네요.
그래도 우리에겐 언제나 책이 있으니, 또 함께 즐겁게 책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며 따뜻한 겨울 보내기로 해요~
그러다 보면 또 다시 봄이 찾아 오겠지요~^^

사랑하는 후애님! 예쁘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하늘바람 2013-11-07 23:38   좋아요 0 | URL
늘 덕분에 시를 읽습니다

appletreeje 2013-11-11 08:30   좋아요 0 | URL
읽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회색곰이 자작나무에 한참을 기어오른다.

         아래를 한번 쓱 내려다보더니 이내 몸을 던진다.

         쿵, 로키 설파산이 흔들린다.

         재빠르게 일어나 결린 허리께를 만져보고는 다시 꿀통을

      찾는다.

         쿵, 쿵 자꾸자꾸 떨어진다.

         기나긴 겨울을 먹지 않고 견디려면 살이 더 쪄야 한다. 아

                   픔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회색곰이 드디어 엉덩이를 문지르며 씨익 웃는다. 됐다!

                      오직 몸으로 확인해야 하는 건 회색곰을 닮았네.  / 겨울 채비  (P.30 )

 

 

 

 

                       호숫가로 초대를 받아 낮술을 마셨네. 물무늬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네. 등 젖은 사막이 늙은 어매처럼 누워 있었지.

                       바람이 응어리를 풀어놓으라고 속삭였네. 난 낙타

                    등에 타서 흔들흔들, 설익은 말을 마구마구 게웠지. 그때 천

                    년을 혼자 산 호수가 한마디 하네.

                       쉿 ,  /   낮술  (P.56 )

 

 

 

 

                        글라라 수도원을 가기 전, 나는 그만 이시돌 목장 벌판으

                     로 들어섰다. 양 떼들은 아직 옷을 빼앗기지 않은 풍성한 몸

                     으로 흥미 잃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저희끼리 한

                     몸인 듯 비비대지만 찬서리가 내리면 서로 밀어낼 것을 나는

                     안다.

                        벌판 저 아래서부터 밀고 나오는 여린 것들의 몸부림에 가

                     슴이 떨린다. 채이고 짓밟히고 다시 일어나, 누추한 생이

                     시작하는 순간을 어찌 아무 떨림 없이 바라보겠는가.

                        중산간도로 위 어둠은 망설임 없이 내리고, 글라라 수도원

                     에 닿는 길은 아직 멀다.  /  중산간도로 한가운데서  (P. 33 )

 

 

 

                        검은 머리 여자가 보들레르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다.

                     들썩이는 어깨를 보니 내 마음도 젖는다. 넓은 이마에 퀭한

                     눈, 수척한 그의 사진 옆에는 하얀 튤립 화분이 놓여 있다.

                        묘석 위엔 먼 곳에서 날아온 사람들의 승차권과 편지가 쌓

                     여 있다. 그들은 홀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또 듣고 싶은 말

                     을 듣는다.

                       나는 죽은 시인과 아무런 소통도 못하고 무덤가의 시든 꽃

                     잎만 거두어주었다.

                        실어증과 반신불수로 세상을 떠난 보들레르, 허한 말을 놓

                     아놓고 육신의 자유를 잃어버린 후에야 만난 죽음. 태어날 때

                     도 죽을 때도 불운했던 천상의 시인.

                         그 앞에 내 민망한 허기를 내려놓는다.  /  시인의 집  (P.37 )

 

 

 

 

                          지갑에 참을 인 자 석 자를 넣고 다닌다는 보일러공 시인

                       이면우. 돈을 참고 술을 참고 여자를 참고, 참 잘도 살아냈다.

                       쉰을 넘긴 맑은 얼굴. 그가 참으며 빚어낸 저 장한 자식들 눈

                       물겹게 살아서 내 안으로 잠겨든다.

                          아직 한창인 식욕을 참고 사주에 타고난 역마살을 참고

                      대물림으로 받은 한량기를 참으며 예까지 겨우 왔다. 지나온

                      길 돌아보니 내가 마련한 것들 허름하여 미안하다. 이 몸도 쉽

                      게 산 시간 없지만, 몸으로 산 그에게 오늘만은 깊이 엎드림.

                      /  경의를 표함  (P.92 )

 

 

 

 

                          파쇄기에 잘린 새 책, 마르지 않은 먹과 부풀지 못한 종이

                      가 국수처럼 빠져나온다. 윤기 흐르던 얼굴, 잘린 자국마다

                      검은 피 흐른다. 감지 못한 눈 푸르게 빛나는 데, 아직 더 할

                      말이 남아 있는데 오늘, 가차 없이 잘린다.

                         쾌적한 서고書庫 잘 보이는 곳에 당당하게 서 있다가 눈 밝

                      은 이의 손때로 매끈해지고 싶었는데, 책장을 넘기며 잠깐씩

                      고개를 끄덕이고 또 가끔은 눈물도 질금거려서 군데군데 얼

                      룩도 있어야 했는데, 자주 넘긴 흔적으로 살짝 부푼 몸피로

                      오래오래 살아남아야 했는데.  /  冊, 울다  (P.97 )

 

 

 

                                                                       -노정숙, <바람, 바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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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2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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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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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2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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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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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0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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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1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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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9 10:21   좋아요 0 | URL
슬프게 사라지는 책이 있고, 이 사이에서 살아남아 오래도록 사랑받는 책이 있어요.
소로우 님 서재에는 팔리지 못한 이녁 책이 500권 쌓여, 소로우 님 서재 700권을 이루었다 했는데,
잘린 책들은 다시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는 종이로 거듭나겠지요.

appletreeje 2013-10-29 11:11   좋아요 0 | URL
의미 깊은 말씀에 오늘도 따스한 안도감을 만납니다.
아 그렇네요. 잘린 책들은 다시 새로운 책으로 태어나는
종이로 거듭나고 있네요~^^

후애(厚愛) 2013-10-29 12:09   좋아요 0 | URL
제목이 '겨울 채비'라고 해서 나무늘보님이 겨울 채비 하시는 줄 알았어요~ *^^*

즐겁게 재미나게 잘 읽었어요~*^^*
글들이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즐거운 하루 되세요^^*

appletreeje 2013-10-30 07:28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은 저도 마음으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듯 해요.^^
11월부터 동절기로 느끼니, 다가올 긴긴 겨울을 어떻게 동굴같이
따스하고 포근하게 살까, 그냥...ㅎ

후애님께서도,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날 되세요~*^^*

보슬비 2013-10-29 21:05   좋아요 0 | URL
'낮술'을 읽으니 미국에 있을때, 신랑 공부하던 학교에 뒷건물에 멋진 연못이 있었어요. 날씨 좋은날 와인과 안주 들고 마시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신랑과 도봉산 산책하면서 이런날 와인들고 따뜻한 햇살 맞으며 와인 마시고 싶다..이야기했는데... 더 추워지기전에 한번 시도해볼까봐요. ㅎㅎ

산에서는 술마시면 그렇고, 만남의 광장인가 그쪽으로는 장소가 괜찮을것 같아요.^^

appletreeje 2013-10-30 07:42   좋아요 0 | URL
아~정말 멋진 추억이시네요~
요즘 도봉산엘 자주 가시나봐요!
(혹 요즘은, '옹기꽃게장'은 안 들리시는지..ㅋㅋ)

만남의 광장,보다는 산에서 술 마시는 게 더...좋은..데..,ㅎㅎ
어디서고, 두 분의 시간이 참 아름답습니다~

보슬비님!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세요~*^^*
 

 

 

 

 

 

 

 

 

나는 악보를 사고 싶었고 그는 나를 헌책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말수가 적은 주인은 조용히 서가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아래쪽 두 칸에 크거나 작은, 두껍거나 얇은, 오래되거나 그렇지 않은 악보들이 꽂혀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뒤지다가 나중에는 바닥에 앉아버렸다.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찾았지만 뒷부분이 찢겨 나가고 없었다. 마음에 드는 악보가 있었지만 바이올린곡이었다. 서점은 고요하고 동행은 나를 내버려 두었으므로, 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악보를 하나씩 꺼내어 만져보고 다시 꽂아두는 일을 반복했다. 악보 갈피에 꽂힌 누군가의 메모, 음표와 음표 사이의 낙서 같은 것들을, 해독하지도 못하면서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바흐의 칸타타 악보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피아노곡은 아니었지만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오래된 악보의 음표들이 어떤 길을 알려줄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이 지상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주거나, 서른 페이지 남짓 되는 그 악보를 가만히 보던 주인은 2유로를 달라고 했다. 밖은 이미 어둠이고 이미 가을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당신의 악보를 손에 넣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발견한 것은 내 마음 중에 가장 깊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38 )

 

 

 

 

                                                                              -황경신, <밤 열한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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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6 04:51   좋아요 0 | URL
책방마실을 하면서 조용히 책읽기에 사로잡히면
책에 깃든 빛을 누릴 수 있어요.

appletreeje 2013-10-28 04:39   좋아요 0 | URL
예~저도 책방마실 하면서
조용히 책읽기와 책빛 누리고 싶습니다.^^

2013-10-26 1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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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0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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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6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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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8 0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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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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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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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는 저녁

 

 

 

 

 

                            이 세상에 처음 해 보는 것이 많겠지만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발걸음이

                            처음 해 보는 것이 꽃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눈을 감은 채

                            물방울에 손을 집어 넣고

                            꽃 속에 저무는 발걸음과 만나는 것이 처음 해 보는 것이

                         었습니다

                            꽃에 스치는 물방울도 길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온 마음들이 비치는 물방울이

                            바다처럼 맺혀서 보는 이도

                            이 세상에 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저녁인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눈을 감는 일이었습니다

                            가만히 가만히

                            꽃 앞에 무릎을 끓고 있는, 처음인 저녁인 것이었습니다  (P.17 )

 

 

 

 

 

 

 

                           악기를 연주하고 싶은 그런 날

 

 

 

 

                              오랜 서가에 꽂아 둔 낡은 책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썼던 편지를 발견할 때,

                              마치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 것처럼 아릴 때

                              그런 날에는, 정말

                              먼지를 뒤집어쓴 악기를 꺼내어 연주해야 한다

                              가슴에 묻어 둔 사랑의 밀어를 바라보면

                              기억조차 희미해져 제 별자리로 돌아간 듯 하다

                              어느 누군가도

                              나에게 그런 편지를 썼으리라

                              흐릿한 시간의 별자리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어린 무 잎처럼 아린 글씨가

                              빼곡히 들어찬 부치지 못한 편지들

                              먼지와 세월에 얼룩진,

                              뒤틀린 책 속 공명통에서 울리는

                              나의 밀어와 영혼을 간직한 악기여  (P.34 )

 

 

 

 

 

 

 

                           찐빵집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

 

 

 

 

 

                               겨울에 도시로 전학 와 새 학교 갔다

                               처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녁이 오도록 집을 못 찾고

                               비슷비슷한 골목길을 헤매 다녔다

                               시골집에서는 저녁때가 되면

                               무쇠솥을 들썩이는 밥물의 김처럼

                               부엌문을 열고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만으로

                               동네 어디에서 놀고 있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나 혼자의 힘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며,

                               찐빵집 앞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바라보았다

                               겨울 저녁 찐빵집 앞을 지나가다 그때처럼

                               추억의 온도로 부연 찐빵의 김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어

                            진다

                               앙꼬 가득한 찐빵을 뜨겁게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며

                               하얀 김 속에서 그렇게,

                               집에 가다 말고 잠시 서 있고 싶어진다  (P.87 )

 

 

 

 

 

 

                            신발장

 

 

 

 

 

                                버려진

                                냉장고 속에

                                나란히 놓여 있는

                                아기의 꽃신과

                                노인의 털신 하나

 

                                노인과 아기가

                                눈 내리는 날,

                                냉장고에서

                                신발을 꺼내어

                                나란히

                                시골길을 걷는다

 

                                그들의 뒤로

                                찍히는 발자국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까

 

                                언젠가, 나도

                                저런 냉장고 한 대

                                갖고 싶다  (P.88 )

 

 

 

 

                                                         -박형준 詩集, <불탄 집>-에서

 

 

 

 

 

 

 

 

 

 

 

[시인의 산문]

어머니는 ‘불탄 집’이다. 어머니는 평생 심화(心火)를 가슴에 안고 사셨다. 이제 그 집은 불타 사라졌지만 그 심화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속의 불, 어머니의 가슴에 타는 그 불을 누가 꺼뜨릴 수 있었겠나. 내가 시를 쓰는 것은 그런 어머니의 가슴에 팔찌를 하나 놓아 드리는 일이었다. 자식과 가족을 짝사랑하여 언제나 가슴에 불을 품고 사는 여인, 그 여인의 가슴에 시라는 팔찌를 내려놓은 일은 그 불을 다스리고자 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여자 지귀(地鬼)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시를 쓴다 하여 무슨 왕족이 될 수 있는 것도, 더구나 여자 임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상력이 한계가 없다 한들 현실의 뿌리까지 바꿔 낼 수 있겠나. 다만 그 뿌리에서 피어난 꽃을 조금은 아름답게 허공에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쉬페르비엘의 시를 일컬어 조르쥬 뿔레는 “보존된 수천의 기억보다 재발견된 추억 하나에 더 많은 기쁨이 있다”라고 평을 내렸다는데, 내가 어머니의 가슴에 놓아 드리려 했던 시라는 팔찌도 그 말과 먼 것 같지는 않다. 내 시의 팔찌는 어머니의 수천의 심화가 하나의 추억으로 재발견되기를, 그리하여 가족과 나를 짝사랑한 그녀의 인생이 조금은 찬란해지기를 바라는 답례품이다. 이제 시라는 팔찌가 된 어머니의 추억은 세상의 만물을 비추어 준다고 시를 쓰는 한은 믿고 또 믿어야만 할밖에 나로서는 도리가 없다.
어쩌다 보니 지난 시집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이번 시집은 또 하필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씌어진 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두 시집은 그걸 기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팔찌 한 쌍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시집은 지난 시집에 이어 조금은 일찍 내는 시집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돌이킬 수 없이 가깝고 가장 멀기도 한 여정으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빛도 태양도 더 이상 없을 때에 어머니의 가슴에, 그리고 그녀의 무덤 위에 놓인 그 팔찌가 비추어 주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그 팔찌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 이유를 조금은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아들이 이승에서 고생만 하다가 저승으로 간 어머니에게 주는 답례품이 시라는 팔찌라면―이승에서 수천의 고생의 기억만 가진 그녀의 재발견된 추억 하나―어머니의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나 어쩌겠나.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심화를 아로새길 팔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나 또한 내 심화로 불타 버렸을 것이기에, 어머니를 위한 팔찌는 결국은 나를 위한 팔찌이기도 한 셈이다.
이제는 어머니와 나의 심화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심화가 승화된 불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시를 쓰고 싶다.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은 망각의 변방에서 승승장구 돌아올 밝은 시를 쓰는 것은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열렬하게 지귀의 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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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0-25 16:1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좋은 시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 드려요~*^^*

행복한 오후 되세요~^^

appletreeje 2013-10-25 21:27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드리는데요~*^^*

후애님!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옷 따뜻히 입으시고,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3-10-25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3-10-26 02:22   좋아요 0 | URL
이런 서정적인 시들 참 좋아해요!
appletreeje님이 저만을 위한 시들을 제 귀에 읊어주시네요?
저도 이시집 사서 곁에 두고 아껴 읽어야겠어요!
또 appletreeje님과 함께 읽는시집이 생겼네요..ㅋㅋ 좋아라!

처음 보는 저녁을 읽고있으니 자꾸 제 막내아들 하는 요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면서 나중엔 찡한 눈물이 살포시 맺히네요...ㅋㅋ 주책이죠?

appletreeje 2013-10-28 04:51   좋아요 0 | URL
저도 블루데이지님과 함께 읽는 시집이 또 생겨서
너무너무 기쁘고 좋습니다~^^
막내아드님의 예쁜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시며 웃으시고
또 찡한 눈물도 살폿 맺히시는, 데이지님을 생각하며 제 마음까지
물들어가는 그런 아름다운 가을이에요. ^^

블루데이지님! 오늘도 행복하시고 고운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