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보를 사고 싶었고 그는 나를 헌책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말수가 적은 주인은 조용히 서가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아래쪽 두 칸에 크거나 작은, 두껍거나 얇은, 오래되거나 그렇지 않은 악보들이 꽂혀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뒤지다가 나중에는 바닥에 앉아버렸다.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찾았지만 뒷부분이 찢겨 나가고 없었다. 마음에 드는 악보가 있었지만 바이올린곡이었다. 서점은 고요하고 동행은 나를 내버려 두었으므로, 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악보를 하나씩 꺼내어 만져보고 다시 꽂아두는 일을 반복했다. 악보 갈피에 꽂힌 누군가의 메모, 음표와 음표 사이의 낙서 같은 것들을, 해독하지도 못하면서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바흐의 칸타타 악보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피아노곡은 아니었지만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오래된 악보의 음표들이 어떤 길을 알려줄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이 지상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주거나, 서른 페이지 남짓 되는 그 악보를 가만히 보던 주인은 2유로를 달라고 했다. 밖은 이미 어둠이고 이미 가을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당신의 악보를 손에 넣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발견한 것은 내 마음 중에 가장 깊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38 )
-황경신, <밤 열한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