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살기님 서재에서, 서울시에서 '헌책방 지도'를 만들었다고 서울 도서관 누리집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가 나와 있다는 글을 읽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헌책방 '책 백화점'엘

   다녀왔다. 상계역 1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눈앞의 약국 지하라 찾기가 너무 쉬웠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빽빽하게 책이 쌓인 좁은 통로를 지나 비닐막이 쳐진 입구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어서 오세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 한 사람이 겨우 지날만큼의 통로 사이에서

   주인장의 얼굴은 여전히 안보이다, 또 서가를 하나 돌아가니 50대 후반의 주인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니 "어떤 책 찾으세요?" 하신다.

  " 예~구경좀 해보고요~" 여쭙고 또 좁은 서가를 돌아가 보았다.

 

 

 

 

    

 

 

 

    가장 먼저 관심있게 눈에 띄인 미술서가에서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와 화집들을 열심히 펼쳐보

   고, 그 다음으론 바로 앞 서가에 있는 그림책들을 반갑게 이 책 저 책 펼쳐보다 몇 권을 고르고

   시집들이 꽂힌 서가도 보고, 입구쪽으로 나오니 그래도 요 몇년 전의 눈에 띠는 소설이나 산문집

   도 보였다.

 

 

 

 

 

 

 

   헌책방은 어렸을 때, 을지로 평화시장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들을 다니고는 그후론 아주 드물게

   가보곤 정말 실로 오랫만이라...느낌도 새롭고 헌책들이 솔솔 풍기는 헌책냄새도 기분좋게 맡으

   며 책들을 고르는데 오늘은 첫날이라 그런지 너무 많은 책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골라야할지

   도 막연했고, 아주 좁은 통로에 의자 하나 없어 한 시간 쯤 고르려니 다리도 좀 아파오고, 그리고

   책정가를 알 수 없었는지라. 오늘은 그냥 그림책만 다섯 권 고르고, <느림보 2011>이라는 느림보

   에서 나온 4호 크기의 180쪽 짜리 책도록을 한 권 사 가지고 나왔다.

 

 

 

 

 

 

 

 

 

 

 

 

 

 

   참, 도날드 달의 '맛'이 입구에 있길래 값을 물어보니 6000원이라 해서 왠지 좀 센듯하여 그냥

   두고. 주인 아주머니의 말씀이 이 헌책방은 19년이 되었는데 교통이 편하고 찾기 좋은 곳은

   책방 임대료가 높아 점점 헌책방들이 줄어가고 있다 하시며, 자주 놀러오라 하셨다.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젠 '헌책방'의 '아름다운 진정한 의미'를 하나 둘 알아가고, 즐거운 나들이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덕분에 '서울 시내 헌책방 지도'에 대한 글을 올려주셔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다녀왔다.  

 

   역시 '헌책방'에 가서 오래된 책들을 펼쳐보고 고르는 일은

   '새책방'에서 새로 나온 빠릿한 책들을 고르는 맛과는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헌책방'도 '새책방'도 '알라딘 중고서점'도 다 좋다.

   그곳이 어디든 책이 있는 곳이라면~ㅎㅎ

 

 

 

   오늘 우선 맛보기로 사온 그림책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오래된 안경 속에 숨어 있는 핏줄간의 따뜻함과 손때가 묻은 물건이 풍기는 정겨운 향기를 맡게끔 하는 그림동화이다. 어떤 강요나 직접적인 설교보다는 조그만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쓰여졌고,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사실적인 삽화들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개구쟁이 해리-바다 괴물이 되었어요》는 해리가 가족과 놀러 간 바닷가에서 한바탕 벌이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려 내고 있다. 해리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가족의 파라솔과 아이들이 만든 모래성에 들어가지만 금방 쫓겨난다. 그래서 뚱보 아줌마의 널찍한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지만, 결국엔 그마저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 더위에 지친 해리는 몰아친 파도에 휩쓸려 온 바닷말을 뒤집어쓰고 바다 괴물로 변신하게 된다!
바닷말을 뒤집어쓴 해리가 귀여운 강아지가 아닌 바다 괴물로 오해를 받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물이나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뜨거운 햇살을 싫어하는 해리를 위해, 그리고 또다시 길을 잃을 경우 가족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리를 닮은 파라솔을 준비한 해리의 가족. 다음 해에 바닷가로 놀러간 온가족이 해리와 함께 커다란 파라솔 아래에서 쉬고 있는 모습에 아이들은 함께 기뻐할 것이다. 가족 간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따뜻한 그림책이다.

 

 

 

 

 

 

시인 백석이 시와 동화를 하나의 틀 속에 조화시켜 낸 동화시.'귀머거리 너구리', '개구리네 한솥밥', '집게네 네 형제'등 4편이 실렸다. 평등하고 올바른 세상을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시인이 쓴 글답게 우리말의 리듬과 운율이 아름답다.

한국 어린이 문학의 대표 작가들의 동화를 모아 놓은 '빛나는 어린이 문학' 시리즈로, 지난 2000년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100년 전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그 때도 학원이나 학교가 있었을까? 요즘처럼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오락기는 없었을텐데, 지겹지 않았을까? 그 때 아이들은 간식으로 무엇을 먹었을까? 어린이날에는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아니 어린이날이 있긴 했었나?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길어진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과자, 빵, 케이크 같은 새로운 음식이 유행하게 되고, 양말, 석유 램프, 양잿물 같은 새로운 생활품도 등장하게 되었다. 전화와 전기, 전차도 이때 들어왔다. 이런 눈부신 변화 속에서 조선은 암흑의 시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변화와 쇠퇴하는 국운이라는 서로 상반된 요소가 급격히 뒤섞이던 100년 전, 변화와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은 밝게 자라났다. 사극 속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은 어린이의 생활이나, 교육, 놀이 문화에 대해 다룬 책. 10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책표지에는 4-4 오수민, 이라고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다~)

 

 

 

 

 

 

 

 

쌍둥이 남매는 도시 생활을 하며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쌍둥이 남매를 따라 농장을 지나 늪으로 가면서, 마치 생태 현장학습을 하듯 자연스럽게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쌍둥이가 메뚜기를 잡으려다 흠칫 놀라는 장면이나, 조랑말이 물까 봐 먹이를 주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 등에서는, 실생활 속에서 자연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낯설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비가 왜 오는지, 비가 오면 동물은 어떻게 피하는지, 무지개는 어떻게 생기는지 등 어린이들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호기심을 그림과 이야기, 정보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서 풀어 주는 그림책이다.

 

 

 

 

 총 5권을 15,500원에 샀다.

 손글씨 영수증도 받았고, 다음에는 상봉역의 '좋은책 많은데'를 다녀와야겠다.~

 새로운 이번 가을은 내게 아마 서울의' 헌책방 나들이'로

 더욱 한층 풍성하고 즐거운 가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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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7 0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3-09-05 20:09   좋아요 0 | URL
품절되거나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찾는 즐거움에다가,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잊고 지나간 책을 만나는 재미가 있어,
또 여러 가지 아름다운 웃음을 베풀어 주는 헌책방 나들이
틈틈이 즐겨 보셔요.

저는 서울 시내 헌책방을 머릿속에 다 담아 놓았기에
어디를 가든 꼭 들르는데,
약속이 있어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그곳 둘레에도 헌책방 있나?' 하고 살피면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돌아보면,
동무한테 선물할 재미난 책도 만나곤 한답니다~

appletreeje 2013-09-07 08:15   좋아요 0 | URL
예~그래야겠습니다~
벌써부터 함께살기님께서 일러주신
헌책방 나들이에 무척 설레고 즐겁습니다~
감사드려요. ^^

블루데이지 2013-09-06 09:23   좋아요 0 | URL
아~너무 멋스러운 나들이를 하셨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14   좋아요 0 | URL
즐거운 나들이였어요~
책들의 또 다른 세계!
블루데이지님께서도 기회되시면
인근의 헌책방 함 나들이 해보셔요~*^^*

보슬비 2013-09-06 17:04   좋아요 0 | URL
가까운곳에 헌책방이 있었네요. 서울에서 헌책방하면 청계천 헌책방만 떠올랐는데, 헌책방이 근처에 있다는것이 무척 신기해요.

'개구쟁이 해리'는 나무늘보님이 올려주신거 말고 다른 책으로 제가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할때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어요. 귀여운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시리즈였었나보네요.^^

appletreeje 2013-09-07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막연하게 언제 헌책방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곳에 헌책방이 있어서 신기하고 좋았답니다~
이제 첫나들이를 했으니까 차례차례..즐거운 나들이 하려구요~^^

저도 '개구장이 해리'는 한참 전에 '목욕은 정말 싫어요'를 즐겁게 읽었는데
이번에 또 이 '바다괴물이 되었어요'를 보고 반가워서 얼른 집어왔어요.
언제 기회되면 '해리: 꽃무늬 옷은 싫어요'도 꼭 읽고싶어요.^^
 

 

 

 

 

 

                          수종사 뒤꼍에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몸을 합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똑! 똑!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눈물에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는 나뭇잎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며

                        수종사 뒤꼍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니

                        나무 밑동에 단정히 기대고 있는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였지요

                        먼 훗날 우리도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나무그늘 아래서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P.11 )

 

 

 

 

 

 

                       염소 브라자

 

 

 

 

 

                         북쪽에서는 염소가

                         브라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웃으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먹어야 하니까

                         젖을 염소 새끼가 모두 먹을까봐

                         헝겊으로 싸맨다는 것이다

 

                         나는 한참이나 심각해졌다가

                         그만 서글퍼졌다

                         내가 남긴 밥과 반찬이 부끄러웠다  (P.22 )

 

 

 

 

 

 

                        속빈 것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

                       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P.63 )

 

 

 

 

 

                                                        -공광규 詩集, <담장을 허물다>-에서

 

 

 

 

 

 

 

 

 

 

 

 

경계와 구분을 지우는 무소유의 충만함

1986년 등단 이후 줄기차게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을 강렬한 언어로 비판해온 공광규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담장을 허물다]가 출간되었다. 전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를 통해 치열한 현실 비판의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양생(養生)의 시학'을 모색한 시인은 5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순정하고 투명한 서정"(유성호, 해설)이 깃든 웅숭깊은 내면적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통찰과 예지로, 진부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하며 "광학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이재무, 추천사)가 어우러진 견결하고 단아한 시편들이 삶의 그늘 속에 희망의 언어를 지피며 따뜻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자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를 비롯하여 진솔한 삶의 체험 속에서 일구어낸 45편의 시를 수록했다
.

 

 

 

 

어젯밤, 잠자리에 들다 문득 생각했다.

이번 가을엔 아주..조용히...천천히 살아야겠다고.

우리집 민달이처럼, 그렇게 예쁘고 즐거운 산책을 해야겠다고.

그리고 나도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회관에 가면, 정동 길거리에서

맑은 소리 나는 오카리나 두 개 사서, 그대와 나 둘이 오카리나 불며

정답고 환하게 웃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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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04 10:36   좋아요 0 | URL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목청을 거쳐
언제나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나요.

우리는 누구나
'몸 악기'가 있답니다.

가을볕 즐거이 누리는 하루 되소서~

appletreeje 2013-09-05 05:4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께서는 언제나 즐거이 노래 부르시지요!!
저도 그렇게 즐겁게 아름다운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알케 2013-09-04 19:57   좋아요 0 | URL
아...시 좋네요. 공광규 시인...시집 한권 사야겠습니다. <염소 브라자>..아픈 시.

appletreeje 2013-09-05 05:46   좋아요 0 | URL
예, 알케님. <염소 브라자>를 읽다가 마음이 얼얼했습니다..
염소도 사람들도...다...

블루데이지 2013-09-04 20:13   좋아요 0 | URL
저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배달된 공광규시인 시집 받았어요!
읽기전에 appletreeje님 서재에서 맛보기 시 세편!
더 이 시들이 좋아져요!

appletreeje 2013-09-05 05:47   좋아요 0 | URL
저도 떨리는 마음으로 블루데이지님과 함께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더욱 기쁘고 좋은지요~!!

블루데이지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보슬비 2013-09-06 17:09   좋아요 0 | URL
'염소 브라자' 읽는 순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작가인 셸 실버스타인의 시가 하나 생각나서 웃었어요. (그 시에는 낙타 혹에 브라자를 채웠는데... ^^;; 삽화와 시가 재미있는 시랍니다.)

그런데 저도 읽다가 아기 염소들에게 미안해졌어요... ㅠ.ㅠ

appletreeje 2013-09-07 08:06   좋아요 0 | URL
아 셸 실버스타인의 시에 그런 시가 있었군요~^^
궁금하고 읽고 싶은 책이네요~
염소 브라자, 참 슬픈 시예요...
 

 

 

 

오늘 어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나의 9월을 열고 가을을 준비한다.

그 이야기는 이미 누구라도 다 알고 있는 고려말 조선초의, 맹사성의 이야기다.

19세때 장원급제를 하고 20세에 파주의 군수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맹사성이 파주군수로 나가 그 고을의 유명하다는 고승을 찾아가 어떡하면 좋은 지도자가 되겠냐고

물었더니 그 고승의 말인즉,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을 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에 그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거만하게 일어서자 그 고승이 이왕 오셨으니 차라도 한 잔 하시고 가시라는 말에 못이기는 척 앉았는데, 이 스님이 따르는 차가 잔을 철철 넘쳐 방을 적시자, 맹사성이 "이렇게 차를 따르니 방바닥이 다 더럽혀지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소리를 치자 그 스님의 말씀,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이렇게 넘쳐 흐르면 인품을 망칩니다."  그 말을 들은 맹사성이 부끄러워 벌떡 일어나 방문을 나서다 방문에 걸려 머리를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본 스님이 껄껄 웃으며 하는 말씀, "고개를 숙이면 어디서고 머리를 부딪히지 않습니다."

 

이제 가을이다. 유독 이번 여름은 무지하게 더웠지만 또 절기(자연의 순환)에 따라 밤에는 조금 두터운 이불이 좋은 그런 가을이 거짓말처럼 왔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황금벌판이 넘실거릴 것이다.

문득, 무거운 벼는 고개를 숙인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9월의 첫 번째 밤.

부디 이렇게 가을을 만나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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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3-09-01 23:50   좋아요 0 | URL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하게 실천이 안되는것이 현실같아요...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아야하는데.... 종종 잊어버리니... -.-;;
나무늘보님 글을 읽으면서 반성하며 다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늘보님은 저의 고승이세요. ㅎㅎ

appletreeje 2013-09-03 23:20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이야말로 제게 언제나 고승이신데요. ㅎㅎ
겸손한 삶으로 행복한 사람살이로 살고싶은 가을이에요~

숲노래 2013-09-02 05:57   좋아요 0 | URL
착하게 살면 되지요~
착함, 참다움, 아름다움
이렇게 세 가지인걸요.

appletreeje 2013-09-03 23:20   좋아요 0 | URL
예~정말 착하게 살고싶은 그런 가을입니다.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착함, 참다움, 아름다움으로요~

2013-09-02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03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업장

 

 

 

 

                              1호선 전동차 맨 뒤쪽 운전실

                              사람들 호기심이 기웃거리는

                              내 작업장엔

                              출발을 외치는 부저가 있고

                              안내방송을 하는 마이크가 있고

                              관제실과 통화하는 무전기가 켜져 있고

                              비로소 내 손이 가야

                              출입문이 열리고 열차가 출발하는

                              내 작업장엔

                              이십키로 농협쌀이 있고

                              아내와의 부부싸움이 있고

                              함진애비가 있고 상두꾼이 있고

                              술잔이 기울고 파업이 일어서는

                              25000 볼트 전차선을 100키로씩 달리는

                              한평 남짓 내 작업장엔

                              오병이어인들 왜 없을까  (P.123 )

 

 

 

 

 

 

                          내 몸만 모른다

 

 

 

 

 

                               들쑥날쑥 출근시간

                               낮밤이 바뀌고

                               밥 먹는 시간 따로 없이

                               손님들의 요구를

                               온몸으로 받아 적어야하는

                               전동차 승무원

                               고객님의 건강이 가정의 행복이라는

                               안내방송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정말 내 몸만 모른다

                               25000 볼트 전차선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만성피로 위궤양  (P.127 )

 

 

 

 

 

 

                          이소선 어머니 장례식장

 

 

 

 

 

                               그가 맨 앞에 있다

                               10년만에 짠하고 나타난 그가

                               제 자리에 있다

                               택시를 몰던 사람

                               가진 것이라곤 핸들뿐이어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택시도 되고 봉고도 되고 트럭도 되었던 사람

                               사연 많은 어머니들의

                               입은 되지 못해도 머리는 되지 못해도

                               주름 깊은 표정은 되었던 사람

                               욕도 잘하고 삐치기도 잘했던 사람

                               사람이 무섭다며 툭하면 잠수타던 사람

                               10년 넘게 안 보이던 그가

                               장례식장

                               저기 맨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르기도 전에 부릉부릉 바퀴가 되어 왔을 사람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전화를 돌리느라

                               느지막히 도착해서

                               내일 더 바쁜 일들을 위해 서둘러 떠난 자리

                               그들이 남긴 밥그릇을 치우고

                               쓰러졌던 소주병을 일으켜 세우며

                               비로소 제 사연을 풀어놓는 사람

                               어디서 빛날 일 없던 그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마당

                               어머니가 펼쳐놓은 하늘 한구석

                               벌겋게 달아오르며 별이 되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 졸다 하던 또 그 누군가

                               꾸벅꾸벅 반짝인다  (P.105 )

 

 

 

 

 

                             고마웠어요 아, 허광만 동지

 

 

 

 

                                이름보다

                                얼굴보다

                                환한 웃음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

                                차에 음료수를 박스째 싣고서

                                만날때마다 건네주던 사람

                                맛난 것 먹을 때면

                                어머니 드리려고

                                조금씩 떼어놓던 사람

                                살고 싶어서

                                정말 죽지 않으려고

                                끝까지 몸부림치던 마지막 절규

 

                                '해고는 살인이다'

                                사람을 가슴으로 안아본 적 없는 너희에겐

                                쓰던 볼펜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이지만

                                하루 일해야 또 하루를 사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단 하루 남은 내일을 빼앗아 가는 것

                                노동자를 적으로 여기는 너희에게

                                100명의 해고는 100개의 전리품이지만

                                우리에겐

                                날마다 100개의 관을 짜는 일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웃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허 광 만을

                                다시 못 보는 일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허광만을 죽인 너희들을

                                잊지 않는 일이다

                                오늘을 잊지 않고

                                꼭 되갚아야 하는 일이다

 

                                지부장하면 결혼할 줄 알았다며 너스레떨던 사람

                                두 손을 수줍게 앞으로 모으고

                                다음에 또 보자며 꾸벅 인사하던 사람

                                가다 뒤돌아보면

                                환하게 그 자리에서 웃어주던 사람

                                받기만 했던 우리가 처음으로 그대에게 드립니다

                                우리를 맞아주었던 환한 웃음처럼

                                우리가 오늘 그대를 웃으며 보내드립니다

                                고마웠어요 아, 허광만 동지  (P.132 )

 

 

 

 

                                                           -이한주 詩集, <비로소 웃다>-에서

 

 

 

 

 

 

 

 

 

 

 

이한주의 한 마디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詩語들을 다시 불러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누가 뭐래도 사람답게 사는 게 좋은 시다. 그래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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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30 09:13   좋아요 0 | URL
모두들 함께 웃고 놀면서 어울릴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다 같이 웃을 수 있다면.

appletreeje 2013-08-30 09:24   좋아요 0 | URL
정말 함께 웃고 놀면서 어울릴 수 있는
그렇게 환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작은사람들과 작은 사람들이 어깨동무 하면서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고 있겠지요?...

2013-08-30 13: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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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1 05: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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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2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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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1 0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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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

 

 

 

 

                  내가 행복을 느끼는 때는

                  오후에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을 때다

                  햇빛은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 찾아와

                  아이들이 적어놓은 글자 한 자 한 자를

                  환히 비쳐 보인다.

                  그러면 그 글자들은 모두 살아나

                  귀여운 병아리가 되고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기 염소가 되고,

                  여울을 헤엄치는 피라미가 되고

                  별 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된다

                  오후에 해님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내가 보는 책장이 더욱 환하게 되면

                  아,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P.96 )

 

 

                   1991. 3. 21 밤2시

 

 

 

 

 

 

 

                   말과 글이 있기에

 

 

 

 

 

                    이른 봄 담 밑에 돋아나는 냉이, 민들레

                    잔디밭을 물들이는 할미꽃, 제비꽃

                    온 산이 붉게 타는 진달래꽃

 

                    그 모든 풀꽃이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여름날 시냇물에 헤엄치는 고기들.

                    피라미, 버들붕어, 모래무지, 미꾸라지

                    산과 들엔 꾀꼴꾀꼴 뻐꾹뻐꾹, 뜸북뜸북

 

                    그래 그 새들 이름도 소리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파란 하늘에 달려있는 감, 대추

                    가을날

                    머루, 다래, 으름, 알밤.

 

                    그 빛깔 그 이름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지요.

 

                    겨울날 산과 들에 피는 눈꽃

                    찬바람 속에 띄워 올리는 연

                    밤늦도록 듣는 할머니 옛이야기

 

                    그 그림 노래 그 이야기 아름다워라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가 있어요  (P.122 )

 

                    (1990년대)

 

 

 

 

 

                       -이오덕 선생님 10주기 추모 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에서

 

 

 

 

 

 

 

 

 

 

 

 

마음 속에 꽉 찬 것을 토해 놓은 시

도서출판 고인돌은 우리 겨레와 인류의 희망인 아이들 삶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평생을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내 놓은 교사들이 우리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실천 한 삶을 올곧게 담아낸 시를 골라서 <우리시대 교사시선>으로 펴냅니다. <우리시대 교사시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교육 현장에서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올바른 교육을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애 쓴 교사들 마음을 풀어놓는 멍석마당입니다.
< 우리시대 교사시선> 두 번째 시집으로 참교육자 이오덕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추모시집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을 펴냅니다. 이 시집의 원고는《이오덕 유고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고인돌, 2011)에서 뽑았습니다. 《이오덕 유고시집》은 이오덕 선생님이 1950년대부터 2003년 돌아가실 때까지 쓴 발표하지 않은 시 341편을 모아 983쪽 양장본에 담아냈습니다. 이 추모시집은 이오덕 연구가 이주영 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즐겨 낭송하는 35편을 골라 엮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10주기를 맞이하면서 선생님이 토해낸 시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작은 시집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1부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애기를 봐줄까요>에는 학교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쓴 시에서 골라 넣었습니다. 2부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에는 ‘어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나 ‘어린이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표현한 시를 추려 실었습니다. 3부 <우리들의 이름을 말해다오, 바람이여!>는 자연을 비롯한 여러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마음을 담은 시를 모아놓았습니다.
평생을 우리 겨레와 겨레의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았던 한 사람이 ‘마음 속에 꽉 찬 것을 토해 놓은 시’를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이 만남으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열쇠를 얻을 수 있고, 첫걸음을 올바르게 내딛을 수 있는 물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살펴보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하는 슬픈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겨레와 우리 겨레의 희망인 어린이들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기 위해 이 시집이 작은 밑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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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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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1 0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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